<녹두장군> 8권에서는 어사 이용태의 만행이 심해지며 주변의 군수들도 다시 이전처럼 백성을 수탈한다. 이용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잡아들여서 문초를 하고 심지어 효수한다. 며칠 사이로 다시 양지가 음지가 돼버린 환경에서 농민들은 서서히 동학농민군으로 들고일어난다.
양가집 규수가 정조를 빼앗기면 정조를 빼앗긴 바로 그 순간 혈육 간의 윤기도 깡그리 끊어져버렸다. 정조를 잃은 여자는 아내도 아내가 아니고 딸도 딸이 아니고 누이동생도 누이동생이 아니었다. 한낱 허섭스레기일 뿐이었다. 정조를 잃고 기생으로 들어갔던 자기는 오빠 눈에는 그 몸뚱이 크기만큼 커다란 치욕의 덩어리일 뿐이었다. 사람이 죽어 송장이 되면 몸뚱이만 사람 형용이듯 옛날 연엽이와 정조를 잃은 연엽이는 사람과 송장의 거리만큼 오빠에게는 머나먼 저편이었다. (9)
7권에서도 나왔던 여성의 정조 개념의 부당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남성과 다른 차별과 구속을 받는다. 지나친 남성 중심의 사고가 반영된 개념이 정조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간을 당해도 정조를 잃었다는 사유로 정상적인 삶에서 멀어진다. 감싸주는 가족이 아니라 철저히 소외된다. 그런 시절을 살았던 여인들의 고난을 생각해본다.
나무에 물이 오르자 아이들은 밥숟갈만 놓았다 하면 부엌칼이나 낫을 챙겨 들고 산으로 달려가서 송기를 발라먹고 진달래꽃을 따먹었다. 송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어른들도 똥구멍이 막혀 찢어지기 십상이었다. (187)
한국전쟁을 겪었던 세대는 뼈저린 가난을 알고 있다. 먹을 것이 없어 주변 산천을 헤매던 시대, 땔감을 구하기 위해 마을에서 먼 곳까지 원행을 하던 시대였다. 1890년대는 관료들의 수탈까지 심했으니 농민의 삶은 훨씬 힘들었을 게다.
"그러나 우리는 버러지 같은 역졸들을 상대로 일어선 것이 아닙니다. 조병갑이와 이용태, 그리고 조필영이와 김창석이 같은 조무래기들은 물론이요, 이 나라를 좀먹고 있는 민가 일당을 비롯한 썩은 권귀들을 몽땅 쓸어버리고 나라를 대의의 반석 위에 올려놓으려고 일어섰습니다. 우리가 지금 들고 나선 총과 창으로 나라를 깨끗이 하여 우리들이 피땀 흘려 가꾼 곡식을 우리들이 먹고, 우리들이 손끝 짓무르게 짠 베로 우리 옷을 해 입으며 만백성들이 모두 편하게 발 뻗고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일어섰습니다. 우리들 의로운 깃발이 닿는 곳마다 의로움이 강물처럼 흘러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나서기 전에 만천하에 의로운 깃발을 들고일어나는 우리의 뜻을 포고하겠습니다." (245)
고부봉기에서 위세를 보여줬던 농민군이 군수 박원명의 우호적인 모습을 믿고 해산했다. 그러나 곧바로 어사 이용태의 무지막지한 태도에 전라도 전체에서 다시 일어났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명분이 중요하다. 농민들은 눈앞에서 가족과 지인들이 역졸들에게 당하는 잔인성에 분노하고 바로 보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봉준은 나라 전체가 잘 사는 의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큰 그림을 보여주며 설득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자신을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것이 눈앞의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농민군 전체 임직은 최경선이가 소개한 대로였다. 그러나 총대장을 비롯한 총관령 등 임직들 권한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다. 우선 총대장인 전봉준이나 부대장 격인 손화중과 김개남도 각각 자기 부대를 독자적으로 거느리고 실제 전쟁을 할 때는 그 부대만을 지휘했다. 따라서 농민군 전체 조직은 총대장의 명령 한마디에 한 덩어리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체계가 아니라 각 부대가 독자성을 가지면서 서로 협력하는 일종의 협의체제라 할 수 있었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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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573_녹두장군⑧_송기숙_1994_창작과비평사(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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