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5권의 중심은 동학도들이 고부 군수 조병갑을 중심으로 탐관오리들을 잡아 징계를 하는 부분이다. 안타깝게도 조병갑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숨어서 목숨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권세를 자랑하던 풍채를 사라지고 살고자 정신없이 도망치는 모습은 통쾌하다.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하며 곳곳에 시대상황을 읽을 수 있는 장치들을 배치했다.
동헌 마당에는 총, 칼, 창, 활 등이 잔뜩 널려 있었다. 무기를 본 두령들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무기들이 모두가 너무도 험하게 녹이 슬어 있었기 때문이다. 총뿐만 아니라 칼과 창 등 모두 어디 땅속에 묻어놨다가 캐낸 것같이 퍼렇게 녹이 슬어 있고, 활에는 허옇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총은 총열이 삭아버려 시늉만 남아 있는 것도 있었고 칼이나 창도 마찬가지였다. 무기가 이렇게 햇볕이나마 본 것도 몇 년 만이 아닌가 싶었다. (173)
구한말에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면 군사력을 유지하고 무기를 잘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동학도들이 무기를 탈취해서 보니 백성의 세금을 들여 구입한 총, 칼 등은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바로 나라의 상태다. 나라를 이끌어야 할 관리들이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고 본연의 역할은 소홀했다. 결국 주변 열강들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 풍물은 꽹과리, 북 등 풍물잡이와 조리중에 포수와 거지가 들어가야 제대로 구색이 짜였다. 이 세상에 가지가지 모양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저 산속에 혼자 돌아다니던 포수까지도 다 모아서 하나로 얼려 똑같이 신명 나게 살자는 것이 풍물판이었다. 조리중은 파계를 하고 절에서 쫓겨나 조리를 도는 중이었다. (218)
일판은 주인이 아흔아홉 몫이고 풍물판은 상쇠가 아흔아홉 몫이라는 말이 이럴 때 보면 본때 있게 맞았다. 상쇠는 풍물 솜씨도 솜씨지만, 구변이나 익살도 구성져야 하고, 여럿을 거느리자니 그만한 두름성이나 너름새도 있어야 했다. (220)
시골마다 풍물패가 있었다. 시골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재는 풍물을 놀 사람이 없어 장구와 꽹과리, 북 등은 마을회관에 방치된 상태다. 구한말에 무기가 녹슬듯이 우리의 전통문화들이 단절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도시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일부 유지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마을 중심으로 응집되었던 공동체의 모습은 사라졌다. 도시인들은 모래알과 같다. 수는 많으나 서로 간에 교류가 없다. 그냥 많다. 함께 풍물을 즐기며 흥겹게 놀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 바른 길에 대한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수령은 처음 도임하면 아전 등 임직들한테서는 임뢰라는 것을 받았고, 부자들은 부자들대로 그들한테서 뜯어내는 관례가 있었다. 임뢰는 글자 그대로 자릿값으로 주는 뇌물이었으나 그것은 내부적으로 거의 공식화되다시피 했다. (243)
농부들한테는 그들이 일군 땅이 자기가 난 자식만큼 사랑스런, 아니지, 자식만큼 사랑스런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가 난 자식이다. 그 사랑스런 땅을 주물러 땀 흘려 가꾼 곡식도 그것은 자신들이 먹고 살 식량이기 전에 자기가 난 사랑스런 자식이야. (...) 그런데 그 땅은 누구의 땅이며 그 곡식은 또 누가 가져가느냐? 내 사랑스런 아내도 지주 것이고 내가 난 사랑스런 자식도 지주들의 것이다. 그 지주들에게 그 땅과 그 곡식은 무엇이냐? 그들에게 땅은 곡식이 나오는 덤덤한 땅바닥일 뿐이고, 그 곡식은 돈으로 바뀌어질 단순한 재화일 뿐이다. (280)
먹거리가 다양해서 쌀 소비가 매년 줄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에는 흰쌀만 있는 밥을 먹는다는 것은 부자들만의 호사였다. 그 쌀을 생산하는 논은 농부들에게 그만큼 소중했다. 농업기술이 부족하고, 하늘을 보고 농사를 지어야 했던 시대 그리고 부자들이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어 상당 부분을 땅을 빌린 대가로 부자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열악한 농부들의 삶이다. 그들에게 한 평의 땅이라도 자신의 땅은 소중하다. 부자와 지주들에게 땅에 대한 인식과 농부들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현재의 우리들에게 130년 전의 모습을 상상하게 도와준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런 데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은 따지고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역모나 민란에 가담했다가 도망쳐 온 사람, 아니꼬운 관가놈 작살내 놓고 튄 사람, 주인 몰래 내빼온 종, 제대로 짝을 지어 살기 어려운 남녀, 여기 와서 산다는 달주 동네 사람들처럼 세금이나 환자 또는 남의 빚에 몰려 밤봇짐을 싼 사람, 하여간 거개가 평지에서 볕바르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일 겝니다. (282)
옛날이라고 향회가 그렇게까지 크게 맥을 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기서 한 마디씩 떠들면 수령들이 마음을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근자에는 향회 자체를 열어볼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런 낌새만 보이면 앞장설 만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작살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 수령들이 향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무작정 깔아뭉갤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조정이나 감영에 등소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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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570_녹두장군⑤_송기숙_1991_창작과비평사(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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