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권유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봤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3학년이던 1997년 여름에 기아자동차에서 인턴을 하는 중에 회사가 법정관리 상태가 됐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한여름인데도 에어컨을 가동하는 시간을 대폭 단축하는 현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해 12월 IMF 외환위기가 왔다. 다행히 98년에 취업이 결정되고 99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에 취업시장의 급격한 냉각을 경험했다. 주변에서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다.
이런 경험을 했던 세대에게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편부터 감정이입이 되었다. 백이진의 가족처럼 한순간에 부의 사다리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사연이 많았다. 그래서 백이진이 집안의 가장이 되어 대학을 그만두고 신문배달부터 착실히 시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바를 몇 가지로 요약해서 정리해보자.
첫째,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이 재미있다.
현재의 중학생 딸이 엄마의 일기장을 보며 과거로 함께 여행한다. 1990년대의 통신수단이었던 삐삐와 막 나온 휴대폰, 시디플레이어의 등장은 당시를 경험했던 이들에게 과거를 회상케 한다. 발레에 적성이 없다고 포기한 딸이 엄마 나희도가 펜싱을 시작하게 된 배경부터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며 메타인지를 키운다. 결국 딸이 발레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현재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둘째, 다양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숨겨두었다.
3회에서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면 마음이 좀 나아지거든'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나희도와 백이진는 모습을 본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비극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희극화 하며 극복해 보고자는 힘을 얻는다. 또한 7화에서 나희도의 아빠가 딸에게 '실력은 사선으로 느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늘어난다'라고 하는 부분도 여러 분야에서 정체된 자신의 실력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아빠가 나희도에게 나희도가 딸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언제나 유효한 진리다. 운동이든 어학이든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본다.
셋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
대표적인 것이 전교 1등을 하는 아이가 학생 체벌에 당당히 맞서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실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과거에 교권은 학생의 인권보다 훨씬 위에 있었다. 교사에게 반항하는 것은 매를 버는 일이었다. 전교에서 성적이 일등 하는 친구는 교사와의 관계가 원만했다. 학교는 잘 챙겨줘서 학교의 자랑으로 삼았고 학생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온순한 양이되었다. 그런 사회적 배경을 거치며 현재는 학교 체벌이 사라졌다. 도리어 교사가 학생들에게 끌려가는 시대가 아닌가 걱정도 된다
넷째, 펜싱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늘었다.
나희도와 고유림이 펜싱부에서 연습하는 장면이나 대회에서 시합하는 장면에서 수시로 나오는 용어들, 그리고 그들이 착용하는 펜싱 복장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펜싱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안가르드(준비자세)', '플레이(준비완료)', '알레(시작)'은 언제나 반복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유머, 눈물이 보는 이들에게 재미를 더했다.
고유림과 나희도의 갈등의 해소, 나희도와 엄마와의 서로 간 이해, 나희도와 백이진의 감정의 골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사례들이다. 특히 초반에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백이진에게까지 빚을 독촉하러 찾아온 사람들에게 월급을 타서 갚으로 거는 간 백이진과 이런 모습을 미안해하는 채권자의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16회나 되는 긴 여정이었다. 김태리란 배우가 참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봤던 <리틀 포레스트>, <미스터 선샤인>의 여주인공이 모두 김태리다. 어느 배역이 그녀의 실제 페르소나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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