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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465_삶의 진리를 찾아가는 산티아고 순례길_순례자_파울로 코엘료_2014_문학동네(211030)

by bandiburi 2021. 10. 30.

아직도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을 제어하기 위해 나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면의 거대한 평온함이 날 사로잡았고, 내 곁에 어떤 존재가 느껴졌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하지만 두려움과 상상으로 만들어낸 죽음이 아니었다. 몇 분 전 내가 경험한 그 죽음은 나의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나로 하여금 남은 삶의 단 하루라도 비겁하게 살지 않을 것을 결심하게 한, 이제부터 그는 페트루스의 안내와 충고보다 내게 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훗날로 미루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치러내야 할 싸움들을 피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것이다. 이제 나는 결코, 어떤 순간에도, 내가 행하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192~193)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은 후 오랜만에 그의 첫 작품인 <순례자>를 읽었다. 표지 바로 안쪽에 순례길의 표기한 지도가 있는데, 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로를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안내자인 페트루스와 함께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지나게 되는 주요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지명이 나올 때마다 앞쪽의 지도를 보며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확인하면서 봤다

 

1123년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 프랑스 사제 에임리 피코 덕분에 오늘날의 순례자들은 중세의 샤를마뉴 대제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 좀 더 가까이로는 교화 요한 23세가 따라갔던 여정과 같은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피코는 자신의 경험을 다섯 권의 책으로 써냈는데, 이는 사도 야고보의 신봉자인 교활 갈리스토 2세의 업적으로 기록되었고, 훗날 '칼릭스티누스 사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피코는 '칼릭스티누스 사본'의 제5권 <순례자의 가이드>에서 순례길을 따라 걸어가며 알아볼 수 있는 자연의 표지들과 도중에 있는 샘, 숙박을 할 수 있는 수도원, 피신처와 도시들을 열거해놓았다. 피코의 주해에 기반을 둔 '성 야고보의 친구들' 수도회에서는 오늘날까지 이 자연 지표들을 보존하여 순례자들을 이끌어주고 있다. (24~25페이지)

 

 

주인공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어딘가에 감춰진 '검'을 찾기 위해 브라질에서 순례길 여행을 떠난다. 안내자 페트루스를 만나고 첫 출발지인 생장피에드포르에서부터 안내자의 가이드에 따라 여러 가지 훈련을 하며 자신의 감각을 민감도를 높이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우선순위를 깨닫게 된다. 저자가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페트루스를 통해 주인공에게 투사된다. 지명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지도를 보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론세스바예스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 주에 있는 마을로 프랑스 국경에 가까운 피레네 산맥 중 해발고도 981미터에 위치한다. 778년 샤를마뉴 대제가 스페인 원정에 나섰을 때 매복하고 있던 사라센군에게 패배한 곳으로, 이 전투의 영웅 롤랑에 관해서 읊은 서정시 <롤랑의 노래>가 유명하다. (61)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그들은 사실 '선한 싸움'을 벌일 자신이 없는 겁니다. (79~80)

 

철학적인 내용으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우리의 삶에서 시간, 사랑, 죽음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주인공과 함께 고민해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작가가 한 편의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도 추정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며 관련된 역사 자료들을 수없이 뒤적였을 것이다.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마다 철학적 고민이 있고, 역사적 고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가 더욱 커 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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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스는 우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내가 당신과 다른 이들에게 느끼는 것이죠. 에로스가 더는 그 불꽃을 피워올리지 못할 때, 결합된 커플을 유지시켜주는 건 바로 필로스죠." (148)

 

하지만 하나의 길과 다른 길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직업상의 결정이나, 감정적 결별, 사회적 만남 같은 일상적인 문제들이 그것이죠. 그런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을 의미할 수도 있지요. 일터로 가기 위해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직장까지 당신을 무사히 실어다 줄 교통수단과,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낼 다른 수단 사이에서 선택하게 될 수도 있지요. 그처럼 작은 결정이 누군가의 남은 삶에 영향을 주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231~232)

 

코로나 시대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이 있는 반면에 부동산, 주식 등 자산을 통해 부자들은 부가 더욱 증가했다고 한다. 서학개미, 동학개미 하며 사람들의 관심이 물질과 관련된 재테크에 쏠려있다. 외적인 부를 쌓기 위한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내적인 부를 축적하기 위한 관심이 우선돼야 한다. 그래서 이런 류의 소설을 통해 우리의 삶의 위치를 재점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삶이 나침반을 세팅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비로소 배울 수 있다는 것, 함께 신비로운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당신이 의례들을 배우는 동안 나는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당신을 가르침으로써 나는 진정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의 길을 찾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280~281)

 

1118년 위그 드 파양과 여덟 명의 기사는 폐허가 된 낡은 성의 뜰에 모여 인류를 위한 사랑의 맹세를 했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난 후, 그때까지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가지 활동인 군사적 삶과 종교적 삶이 양립하면서 오천 개가 넘는 기사령이 전 세계에 흩어져 존재하게 되었다. 기사단원들과 그들에게 감사하는 수천의 순례자들이 기부한 덕분에 템플 기사단은 빠른 속도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부는 이슬람교도들에게 붙잡힌 저명한 기독교인들의 몸값을 치르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기사들의 청렴함에 감동받은 왕과 귀족들은 자신들의 재물을 그들에게 맡겼고, 기사들은 그 재물의 존재를 증명하는 문서를 지니고 여행을 했다. 그 문서는 템플 기사단에 속하는 어느 성에서든지 해당 금액의 금전으로 교환이 가능했고, 이런 관습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어음의 기원이 되었다. (285)

 

 

그러나 시대를 앞서가는 모든 것의 운명이 그러하듯, 템플기사단원들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막강한 경제력은 왕들의 탐욕을 부추겼고, 개방적인 종교관은 기독교 교회에 위협으로 작용했다. 그리하여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바티칸과 유럽 주요 국가들은 중세 최대의 검거 작전을 함께 획책했다. 그날 밤, 기사단의 핵심 수장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들은 악마 숭배와 그리스도에 대한 신성모독, 통음난무의 의식, 그리고 남색을 포함한 비밀 의식을 행한 죄로 기소되었다. 혹독한 고문과 개종 그리고 배신이 이어진 끝에 템플 기사단은 중세 역사의 지도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들의 재물을 압수되었고, 그 단원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286)

 

■ 저자 : 파울로 코엘료 Paulo Coelho

전 세계 168개국 80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 4천 5백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이후 <브리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악마와 미스 프랭> <오 자히르> <알레프>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다. 2009년 <연금술사>로 '한 권의 책이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2002년 브라질 문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2007년 UN 평화대사로 임명되어 활동 중이다. 2012년 신작 <아크라 문서>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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