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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462_음식은 사람의 관계이자 기억의 촉매다_황석영의 밥도둑_2016_교육서가(211027)

by bandiburi 2021. 10. 27.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지난 시대에 명절이나 아니면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흥청망청 모두 허드레 음식이 되었고, 미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한 간편식이나 개화요리가 양요리의 대종이 되어 뒤섞여 있다. (267페이지)
황석영 작가의 삶의 여정을 음식과 함께 산책하고 돌아온 기분의 담백한 책이다. 저자의 의지에 따라서, 때로는 타의에 의해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그 지역의 음식을 먹었던 경험을 읽기 쉽게 기록한 산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글이다. 아무런 부담 없이 타인의 삶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서 몇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사라센의 침공과 지배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집시의 고장이다. 대토지 소유 지주가 많은 대신에 가난한 소작농들이 올리브나 포도를 경작해서 근근이 살았다.

그래서 옛적부터 <카르멘>에도 나오듯이 집시와 산적이 많았고 민란도 빈번했다. 스페인 내전 때에는 인민전선측의 공화파가 가장 강성했던 고장이다. 나폴레옹이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유럽이 아니라고 말했다지만, 그중에서도 안달루시아는 스페인도 아니었다. (140)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특징이 있는 음식을 찾고 그 음식의 재료와 맛에 대해 옆사람에게 설명해주듯이 글로 표현했다. 저자 본인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본 기본기가 있기 때문에 재료들의 어우러짐에 대해 잘 묘사할 수 있었다.

특히 저자의 유년시절에 대한 경험, 베트남 파병 시에 죽을 뻔한 사건, 광주사태를 목격한 당사자로서 당국에 의해 유럽으로 강제 추방당했던 시절, 가까운 지인들과 술을 즐기며 보냈던 추억 등을 기억 속 미각에 남아 있는 맛으로 함께 표현하고 있다.
홍어는 다른 물고기들처럼 난생이 아니라 태생이다. 따라서 다른 물고기들처럼 암놈이 알을 낳으면 그 주위에 정액을 뿌려서 수정시키는 게 아니라 직접 교미를 통하여 수태하고 새끼를 낳는다. 어부들이야 그러지 않겠지만 중간 상인들은 홍어가 들어오면 뒤집어 배를 살피고 나서 수놈 홍어의 '거시기'부터 얼른 떼어낸다. 암놈과 같은 가격을 받아내려는 속셈에서다.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되어버렸다. (223)
저자의 글 속에서 우리말이지만 처음 들어보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하는 것이고 원하는 단어를 제대로 선택해야 창작물을 원하는 모습 그대로 독자의 눈에 그려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단어 선택은 독자들이 음식의 맛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작가의 힘이란 것이 올바른 단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할 수 있느냐에 있다고 본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정체도 모를 미국식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어른들도 야외에만 나가면 그저 고기를 떡 벌어지게 지글지글 구워서 독주에다 실컷 마시고 쿵쾅거리는 가라오케 기계를 틀어놓고 법석댄다. 장아찌는 장독대가 사라지면서 백화점의 반찬가게로 옮겨갔고, 서로 담 너머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고 들밥을 함께 먹던 문화는 식구끼리의 외식 문화로 바뀌었지만, 실천하기에 따라서는 회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134)
다산신도시에 새로 생긴 상가건물을 산책하며 둘러보면 개성 넘치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삼겹살, 족발, 닭갈비, 설렁탕, 국밥, 쌀국수, 치킨, 피자, 햄버거 체인 등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국 공통의 음식들이다. 왠지 획일적인 음식 종류에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었는데 작가가 아쉬워하는 부분과 동일한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전통음식의 부재다.

우리의 삶에서 음식은 생존을 위한 것이고, 교제 자체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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