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초부터 코로나로 인해 빠르게 비대면 사회로 변화되었다. 자영업자들이 생업을 하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대면으로 만나서 이뤄지는 업종은 갑작스러운 타격을 받았다. 2020년 내에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코로나 상황은 2021년 4월 말 현재도 진행 중이다.
각국 정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풀었지만 각 사회는 빈부의 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이나 주식과 같은 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유동성의 힘으로 자산가치 상승의 혜택을 맛보고 있다. 반면에 자산이 없이 근근히 먹고사는 자산이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시사고발 프로그램에는 건물주들이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을 자신들의 이익을 늘이기 위해 거리로 내몰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건물주뿐만이 아니라 사업을 확장하려는 호프집 사장까지도 그런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분을 일으켰다.
왜 이런 사회가 되었을까. 나 스스로 재산을 모으기 위해 아끼고 저축하고 투자도 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열심히 일을 해야 평범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극소수의 부유층들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넘는 재산이 생성되고 있다. 바로 빈부격차다. 세금을 통한 빈부격차의 해소를 기대하며 살고 있지만 법을 정하는 국회의원들과 실행하는 정부 관료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는 쪽으로 큰 변화가 없는 상태다.
1879년에 지은 <진보와 빈곤>은 19세기에 지은 책이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산업이 발전하는데 왜 모두 함께 발전하지 못하고 빈곤층이 생기게 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요지는 토지의 사유화로 인해 토지 소유자들이 노동자와 자본가들에게 지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이익을 높이더라도 지대를 통해 토지 주인이 회수하고 남은 것을 노동자와 자본가가 가지게 된다. 점차 지대를 추구하는 토지 주인은 더욱 부자가 되고 노동자는 남은 이익의 일부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직업도 안정적이지 않아 언제든지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
LH 직원들의 땅투기 사건과, 국회의원들이 일가족을 포함하면 삼분의 일 이상이 땅을 전국에 투자(투기)하고 있다는 점은 헨리 조지가 내다본 식견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자연이 제공하는 지대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치가 올라간다. 땅 주인은 노동도 자본도 제공하지 않았기에 지대를 세금으로 국가에서 회수해야 한다고 헨리 조지는 주장한다.
지대를 세금으로 회수하면 토지에 대한 투기 노력도 방지할 수 있고 다른 종류의 세금을 걷지 않아도 되며, 세금 징수를 위한 정부조직도 슬림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제시한다. 부동산 투자라는 명목으로 국민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는 시대에 <진보와 빈곤>은 우리에게 많은 시대를 넘어 많은 생각할 점을 던져주고 있다.
아래는 책에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을 인용했다.
철학을 추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한다.-프톨레마이오스(35페이지)
토지 가격의 상승도 사회 전체의 부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토지 소유주가 얻은 높은 가격은 토지 임차인 혹은 매수인이 그만큼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58)
우리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고 중에서 그에게 수입을 가져오리라 기대되는 부분을 가리켜 자본이라 한다"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65)
그가 임금을 버는 동안에 그는 고용주에게 자본을 선불한다. 일이 완료되기 전에 임금을 지불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자본을 선불하는 경우는 없다. (86)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잘 맞아떨어지는 맬서스 이론은 이런 식으로 해서 부자들의 탐욕과 권력자의 이기심을 정당화하면서 재빨리 퍼져나갔고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것이 맬서스가 내놓은 이론의 현주소이다.(117)
인도가 가난한 진짜 원인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인간(관리들)의 강탈 때문이지 자연의 게으름 때문은 아니다.(139)
그런 개량을 한다는 것은 "어서 지대를 더 올리십시오"하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142)
간단히 말해서, 동식물 왕국 내에서 식량의 한계는 그 식량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동식물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잇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인간은 식량의 한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굳이 한계를 지정하라고 한다면 지구의 흙, 공기, 물, 햇빛이 모두 다 사라져 버리는 것이 그 한계이다.(150)
인간은 욕구가 충족될수록 그 욕구가 더욱 늘어나는 유일한 동물이다.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동물이다. 다른 생물들의 필요는 균일하고 또 고정되어 있다.(153)
빈곤의 원인은 부의 생산을 지배하는 법칙에서는 찾을 수 없으므로, 분배를 지배하는 법칙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173)
정치경제학자들은 부의 분배를 지대, 임금, 이자 간의 분배가 아니라, 지대, 임금, 이윤 간의 분배라고 정의함으로써 이런 어려움(개인적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은폐가 되었고, 기존의 임금의 법칙으로 포섭되지 않는 모든 임금은 기업 관리의 임금이라는 명목으로 이윤 속에 포함시켰다. (178)
따라서 생산력이 아무리 증가한다고 해도 지대의 증가가 그와 동일한 보조를 취한다면 임금이나 이자는 증가할 수가 없다.(189)
영국의 귀족들 대부분 지주들이었고 그들의 권력이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스미스와 그 후의 경제학자들은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지대 문제로 지주 계급을 공격하는 것을 그만두고 논의를 자본과 임금의 관계 쪽으로 돌려서 상인과 제조업자를 공격했다.(233)
물질적 진보가 계속 진행되어도 그 어디에서도 임금이나 이자가 상승하지 않으므로, 물질적 진보에 반드시 수반되는 특징은 지대의 상승, 즉 토지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238)
어디에서나 토지 가치가 상승하면 부와 빈곤의 대조가 더욱 뚜렷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또 쉽게 관찰된다.(240)
또 다른 립 밴 윙클처럼 그는 땅에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무엇인가 열심히 일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인구가 증가하여 저절로 부자가 된 것이다.(256~257)
그것(토지 투기)은 물질적 진보가 진행될수록 증가되는 생산력보다 더 높은 비율로 지대를 상승시키는 힘이다. (275)
불황기 앞에는 언제나 호황기와 토지 투기가 선행한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이 둘의 연결 관계는 인정된다. 불황은 투기의 후유증이다.(280)
모든 직업의 종사자들이 일을 하고 싶은데도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난점은 다른 모든 고용의 수요를 창조하는 고용(토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이 토지로부터 축출되었기 때문이다.(286)
이러한 물질적 진전과 함께 토지의 가치는 꾸준히 상승했고 그에 따른 결과(투기)가 나타났다. (289)
원초적 저주가 이제 하나의 축복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단조로운 단순 노동 그 자체가 악이 아니라 선인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하고, 말하고, 소리치고, 규정을 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노동자는 인간성의 본질적 특성-주위의 생활조건을 수정하고 통제하는 하느님 같은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는 노예, 기계, 상품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사람이 아니라, 동물보다 못한 사물이 되었다.(299)
거지 계급과 범죄자 계급이 존재하는 도시, 어린 소녀들이 빵을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면서 추위에 떠는 도시, 남루한 옷에 맨발인 아이들이 길거리를 그들의 집으로 삼는 도시, 그런데 이런 도시들에서, 정기적으로 돈을 모아서 이교도들에게 선교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자기 도시의 빈민을 구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선교사를 보내다니!(301)
임금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것은 자본의 풍부함이나 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다. 오히려 토지의 독점자들이 지대 명목으로 노동의 소득에서 얼마나 가져가느냐에 달려 있다.(303)
그러나 헨리 8세 시대에 들어와 토지의 독점화가 시행되면서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공유지에 담벼락을 둘러서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교회 토지를 와의 추종자와 아첨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런 독점화가 시작되었고 또 이 땅을 근거로 귀족 가문들이 생겨났다. (305)
따라서 토지가 독점되면 그것은 임금을 높여주지 않고, 노동력밖에 없는 사람의 생활조건을 개선시켜주지도 않고 그런 독점이 한없이 계속될 것이다. (311)
사람들이 근면하고, 절약하고, 기술 좋고, 총명하게 만들려면 먼저 결핍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만약 노예에게 자유인의 미덕을 기대한다면, 먼저 그를 자유인으로 만들어야 한다.(325)
집중이 사회 발전의 필연적 순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도시에는 인구가 집중하고, 수공업이 대규모 공장에 집중하고, 철도와 증기선 운항으로 운송 업무가 집중하고 농업도 대규모 농지로 집중된다.(341)
토지의 소유를 인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를 부정하면서, 노동하는 사람의 자연적 보상을 노동하지 않는 사람이 가져가도록 하는 것이다.(351)
땅주인은 생산을 하지도 않고 생산물을 받는 반면에 노동자들은 생산물을 받지도 못하면서 생산을 한다. 땅주인은 부당하게 부자가 되고 노동자는 수탁을 당한다.(355)
지저분한 다락방과 시끄러운 지하실에서는 여인들이, 적절한 온기와 양분을 유지하는 데도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면서 그들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목격한 남부의 노예 소유주들이 노예제 철폐 주장은 위선의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무리도 아니다.(368)
인류의 일차적이고 한결 같은 인식은 모든 사람이 토지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383)
이렇게 하여 봉건제는 그 발생과 발전에 있어서 토지 공유제 사상의 승리였다. 그 제도는 절대 토지 소유를 조건부 소유로 바꾸었고, 지대를 받는 특혜의 대가로서 특정한 의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391)
그들에게 로마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의 말이 딱 어울린다. "로마의 남자들이여, 당신들은 명칭만 세상의 주인일 뿐, 당신들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땅뙈기 하나도 없습니다. (중략)"(394)
토지 개선에 세금을 매기면 토지 개선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상업에 세금을 매기면 상업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자본에 세금을 매기면 자본을 쫓아 버리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토지 가치를 세금으로 흡수한다면 그 효과는 산업을 촉진하고, 자본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부의 생산을 증가시킬 것이다.(430)
확실성의 요소가 빠진 조세는 관련된 사람들의 사기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조세 관련 법규는 하나로 묶어서 이렇게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촉진하고, 정직을 억압하고 기만을 장려하며, 위증과 위증의 매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법의 이상과 정의의 이상을 서로 분리시키는 법."(433)
이것은 공동 재산을 공동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다. 사회의 필요를 위해 모든 지대를 세금으로 흡수할 때, 자연이 부과한 공평함이 성취될 것이다. 한 시민은 다른 시민들에 대하여 자신의 노력, 기술, 지적 능력 등으로 얻은 것을 제외하고는 우위를 점해서는 안 된다.(436)
미국 국민들이 현재 부담하고 있는 다양한 세금들이 세수 조달을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이익의 관점에서 부과되었다. 그래서 조세의 간소화에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이 개인 이해 집단들이다.(445)
노동의 효율성은 언제나 노동의 임금 상승과 함께 올라간다. 왜냐하면 높은 임금은 높은 자부심, 지적 능력, 활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정 한도까지 일을 하면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기계가 아니다.(459)
토지의 독점이 사라지면, 대규모 재산을 가진 부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468)
우리는 많은 판사, 법정 관리, 법원 서기, 교도소 간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생산자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수많은 변호사들도 없앨 수 있을 것이고, 생산자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수많은 변호사들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법률 업무에서 낭비되는 재능은 더 높은 목적의 추구에 전용될 수 있다. (470)
평범한 일벌이 필요에 따라 여왕벌로 변모할 수 있듯이, 환경이 도와준다면 평범한 사람으로 끝날 뻔한 사람도 영웅 혹은 지도자, 발견자 혹은 교사, 현인 혹은 성인으로 변모할 수 있다.(485)
모든 사람에게는 기회를 제공하는 국가 구조의 가능성을 한 번 생각해 보라. (487)
터키 제국의 술탄 호위대인 재니서리(Janissary)는 아주 어릴 적에 기독교 부모의 품에서 떼어낸 아이들을 육성하여 만든 부대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열광적인 이슬람 신자로 성장하여 터키인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508~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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