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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379_가난한 대중과 소수 지배층의 문제와 해결책_사회문제의 경제학_헨리 조지_2013_돌베개(210426)

by bandiburi 2021. 4. 25.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약 150년 전이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탁월한 식견에 감탄하며 읽었다. 직접적 적용은 어렵지만 큰 틀에서 그의 해석은 타당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애덤 스미스나 J.S. 밀과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신만의 빈부격차 해소의 원인과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사회문제의 경제학>의 서문에서 톨스토이가 헨리 조지의 주장에 공감을 하고 <부활>에서 인용했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사실 이전에 <부활>을 읽기는 했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 다시 읽을 기회가 있다면 톨스토이의 삶과 철학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고 헨리 조지의 사상까지도 파악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총 2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점점 커지는 사회문제의 중요성'으로 시작해서 여러 주제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각 장을 읽으며 빈부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고 출산율이 세계 최저로 인구구조의 문제도 잠재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법률과 예의범절을 잘 지키고 자기 가족을 잘 돌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는 가끔씩 언급하는 것 말고는 사회 전체의 복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 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좋은 시민도 아니다. 시민의 의무는 그것보다도 더 많고 더 어렵다. (27페이지)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위에 있는 권세를 공경하고 그것에 복종하는 것"과 "위에 있는 모든 사람 앞에 자신을 낮추고 경의를 표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을 감당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의무라고 교육받는 곳에서는 아무리 심한 불평등도 시기심과 분노를 유발하지 않는다.(62)

헨리 조지는 책의 곳곳에서 부유한 기독교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들을 보여주며 설교하는 내용이 성경에서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계층과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합리화하는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지금도 찾기 힘들다. 여러 대형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 정의보다는 맘몬이 지배하는 기업형이 되고 있다. 

거대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집권당이 아무리 부패했다 할지라도 항상 지지한다. 부자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므로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법이 없다.(32)

미국에서 가공할 만한 재산이 형성되고 거대한 부가 기업의 수중에 축적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형식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른다.(33)

이 모든 것은 이해력의 부족과 생각의 소심함을 보여준다. 정부가 점점 더 부패하고 국민들의 손을 떠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39)

국회의원들의 돈에 대한 집착은 잘 알려져 있다. 땅 투자를 하는 분들이 많고, 자녀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분도 계시고, 아파트를 여러 채 투자하며 집 없는 서민들의 아픔을 운운하는 분들이 있다. 현재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민주당은 보수당이요, 국민의 힘은 수구당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를 추구하는 거대당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주해 온 유럽인들이다. 이는 우리 대부분이 '하층계급' 출신임을 의미한다. 편안한 위치에 있고 미래의 전망이 밝은 사람들은 보통 이민을 가지 않는다. (42)

세계 도처에서 대중은 자기 아버지 세대라면 만족했을 상황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전에 비해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56)

유럽에서는 봉건제가 등장하던 시기에 자유 토지 소유자를 가신으로 전환시키고 전체 사회를 수직적 계층구조로 만든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바로 봉건적 주종관계의 성립이다. 지금 문명세계 곳곳에서는 그와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73)

정치적 민주화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뤄진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계층에서 국민들은 '개와 돼지'로 언급하는 몰상식이 자리 잡고 있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발언과 행동 그리고 법 위에 있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일반 시민들에게 충격을 준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계약관계를 주종관계처럼 생각하는 사업주들이 있다. 사회적인 계층 사다리의 위쪽에 있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봉건시대의 영주처럼 행동한다. 

각 사람이 부를 똑같이 얻는 것이 아니라 부의 총량에 기여한 만큼 얻어야 이상적인 사회상태라 할 수 있다. 만일 각 사람이 자신이 만든 것을 모두 자기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사람들은 더 근면하고 도덕적인 존재, 더 좋은 노동자, 더 좋은 시민이 될 것이다.(85)

얼마나 많은 두뇌와 자본이, 부의 생산이 아니라 부의 탈취를 위해 동원되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부를 증가시키지 않는 경쟁과, 생산과 교환을 제한하는 법률 때문에 생기는 낭비를 생각해보라.(112)

근육이 아니라 정신이 진보의 동력을 만든다. 자연을 지배하고 부를 생산하는 힘은 정신에서 나온다. 인간을 기계와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능력을 낭비하는 짓이다.(113)

일자리 찾기의 어려움, 즉 모든 직종에서 노동 공급이 노동 수요를 초과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은 분명 노동이 스스로를 고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 즉 노동이 토지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장벽에서 기인한다.(183)

원래 노동에 돌아가야 할 생산성 상승의 이득중에서 실제로 노동이 차지하는 부분은 미미하다. 그 일부는 다양한 독점체들이 차지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땅을 독점하는 자들이 차지한다. 그 과정에서 지대와 지가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다.(189)

땅 주인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정말로 땅 주인의 완전한 노예다. 땅 주인은 마치 사람들의 살과 피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은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193)

2021년 현재를 돌아본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어 가야 할 국회의원들의 과반수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땅과 집에 투자하고 있다. 땅 주인으로서 지가 상승의 이익을 챙기고, 집주인으로서 집 없는 사람들의 주인으로 행세한다. 국민들이 부동산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부동산 투자에 동참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청년들의 주거문제 해결이 우선이 아니라, 국민들의 주거문제 안정화가 아니라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다. 19세기의 탁월한 식견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도 유효하다.

영국 노예 무역선이 흑인 노예들을 영국이나 아일랜드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데려간 이유는, 서유럽에서는 토지가 비싸고 노동이 쌌던 반면 미국에서는 토지가 싸고 노동력이 비쌌기 때문이다.(197)

우리는 노예제도를 정말로 폐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은밀한 형태로 광범위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 노예제도하에서는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도 노예가 될 수 있다. 노예제도는 철폐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 강화되고 있다. 우리는 장차 미국 시민이 될 우리의 자녀들을 그 제도 속으로 밀어 넣으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200)

공공부채는 미래 세대로부터 돈을 빌리는 수단, 다시 말해 현재 세대가 유발하는 비용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강제로 부담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그런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공공부채는 미래에 이루어질 부의 분배에 관해 특정한 약속을 내걸고 현재의 부에 대한 통제력을 획득하는 수단일 뿐이다.(213)

더 많은 부가 필요했을 때 우리는 부자들에게서 걷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당신들의 부를 일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오. 만일 당신들이 자발적으로 그리한다면, 과세권을 이용해 원금과 이자의 상환을 보장하겠고. 그러면 당신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겠소?"(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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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소득을 원천징수한 내역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적지 않은 비용이 통장에 입금되기 전에 국고로 환수된다. 하지만 물건을 사면서, 기름을 넣으면서 지불하게 되는 간접세는 세금을 낸다는 생각보다는 물건의 값이다라고 생각한다. 간접세라는 것이 직접세를 부담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을 덜고 나머지 국민들에게 세부담을 전가하는 방법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준다.

간접세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채로 피를 흘리게 만들고 낭비와 부패에 가장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어 침묵하게 만드는 또 다른 장치다. 간접세가 부과되면, 직접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은 상품 가격 상승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세금을 전가할 수 있다. 그래서 직접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 즉 상품 가격 상승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간접세가 유지되기를 바란다.(219)

이렇게 부의 분배가 평등해지면 엄청난 절약이 가능해지고 생산력은 크게 증가한다. 사회는 빈곤 때문에 생기는 나태, 극빈자 문제, 범죄 등에 대처하기 위해 써야 하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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