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의 주역이었던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고 있다. 건강하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은퇴했지만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들을 타깃으로 서점가나 도서관에는 은퇴나 퇴직후의 삶에 대한 책이 많다.
<마흔에 시작하는 은퇴공부>도 은퇴, 퇴직에 관련된 책들 중에 꽂혀 있었다. 은퇴는 직장생활을 하며 준비하기 어렵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닥쳐서 우왕좌왕하기 쉽다.
저자 백만기는 마흔이 되던 시기부터 은퇴를 염두해두고 살았고 은퇴한 후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건강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책으로 펴냈다.
저자의 삶은 평범한 국민들의 생활수준보다는 좋은 편이다. 분당 판교 지역에 집을 두고 금융회사를 50대 초반에 은퇴했고 봉사활동, 악기, 미술, 라디오 DJ, 객원기자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가졌다. 이 책은 특히 이와 유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원이 될 수 있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관심과 노력이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글자로 전달한다.
은퇴 후에 경제적인 여력은 되더라도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경우나, 자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경우,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라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2015년 국가별 금융이해력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우간다(76위)보다 낮은 77위였다고 한다. '금융문맹'이란 말은 학교나 직장에서 돈과 투자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기에 우리의 수준을 언급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면 먹고살 수 있는 여건은 된다. 하지만 부자가 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제나 투자에 대해 교육이 빠져있는 대입시험을 위해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직장에서도 개인마다 차이가 크다. 금융과 투자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은 일찌감치 투자경험을 쌓고 금융에 대한 이해력을 높인다. 시간에 따라 복리로 차이가 나게 된다. 우리도 유대인처럼 투자에 대한 경험을 청소년 시절부터 해보도록 권해야 한다.
금융기관이 금융상품을 팔기 위해 은퇴후에 얼마가 있어야 한다며 '공포마케팅'을 한다는 부분은 공감이 갔다. 스스로 금융지식을 쌓고 다른 사람의 권유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면 '공포마케팅'에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월 얼마가 있으면 된다고 할 수 없다. 자연인에 가깝게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큰 돈이 필요없다.
그래서 금융 거래는 돌다리 두드리듯이 신중하게 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수익을 결정하고 은퇴 후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45페이지
재테크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관리라는 부분이 깊이 와닿았다. 의사를 덜 찾아가고, 약을 덜 먹고, 소식하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다. 미국에서 한 의사가 병원을 찾은 92세의 노인에게 혈압을 재면서 장수 비결을 물었더니 "의사를 가급적 멀리했지."라며 깔깔 웃었다고 한다. 우리가 받는 건강검진, 우리가 받는 진료, 처방 받아서 먹는 약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약이 약을 부르는 악순환의 시작일 수 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남긴 말이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단 한 번 세상에 태어난다. 두 번은 죽어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원을 고려하며 살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내일이 어떨지 모를 당신은 참다운 즐거움을 미룬다. 인생이란, 미루는 가운데 시들어 버리는 어떤 것. 우리는 그것을 제때 향유하지 않다가 어느 날 덜컥 죽고 만다."124페이지
은퇴후에는 독서클럽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도 좋겠다. 그저그런 사람들과 만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과 관심사항이 같은 사람들과 만나면 만남 자체가 즐거울 것이다. 성향이나 취미가 같으면 서로 쉽게 친밀해질 수 있다.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미국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미식축구 등 그 나라의 고유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야 말이 통한다.150페이지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이지 내용이 아니다. 외국어를 배워도 언어 자체와 함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사를 확대해 두면 말 자체의 유창함이 떨어져도 상대방의 흥미에 공감할 수 있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다.
미술에 대해서는 기본지식이 넓지 않아 루브르 박물관 같은 거대한 전시장에 있는 수많은 그림을 봐도 뭐가 좋은지 모르고 지루했다. 그래도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책에서 소개하는 초현실주의자나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책에는 '변월룡'이라는 한국계 러시아 화가가 소개된다.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화가다. 처음듣는 이름이지만 이 분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을 읽어봐야겠다.
우리는 살면서 우연한 기회에 여러 가지 일들을 체험한다. 그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사물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의 인생 2막이 달라질 수도 있다. 내 경우엔 그것이 미술이었다-157페이지
저자의 다양한 취미를 소개한 글 중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신선했다. 처음 접하는 제목과 내용이어서 바로 유튜브로 조수미의 <커피 칸타타>를 들어봤다. 바흐는 17~18세기에 고루하고 보수적인 구세대를 대표하는 아버지와 명랑하고 개방적인 신세대를 대표하는 딸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이 칸타타(성악곡의 일종)를 작곡했다. 그냥 듣는 것보다 노래에 담긴 스토리를 알고 듣게 되니 음악감상이 된다. 운동도 그 룰을 알아야지 보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8년 전부터 지인이 준 커피 내려먹는 도구를 선물받아 믹스커피를 버리고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다. 주말이면 아내와 식사 후에 천천히 커피를 내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됐다. 원두커피를 먹다보니 커피의 종류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고 로스팅 정도에 따라 맛이 다른 것도 체험하게 되며 관심이 확대된다. 뭐든 해봐야 한다.
저자인 롤 모델이 '스코트 니어링'이라고 한다. 나도 <스콧 니어링 자서전>을 읽고 이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적이 있어서 저자가 롤 모델로 삼은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 벌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 100세가 되었을 때 곡기를 끊고 삶과 작별하는 용기와 결단에 큰 인상을 받았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469
스코트는 장수했지만 의사를 멀리했다. 의사는 병에 대해서는 알지만 건강은 잘 모른다고 했했다. 사실이다. 우리는 언론에서 인터넷 매체에서 접하는 정보를 통해 무의식 중에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아는 분이 요양원에서 일 하면서 관찰한 바를 설명해준 적이 있다. 어르신들이 처음에 요양원에 올 때는 1층에서 생활하다가 거동이 불편해지면 2층으로 올라가고 더 불편해지면 '기도삽관'을 해서 말도 하지 못하고 죽을 때만을 기다린다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노년도 불쌍한데 말도 하지 못하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상태로 홀로 죽음을 맞아야 한다. 연명치료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미즈메디병원의 설립자인 고 노경병 박사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아름다운 죽음을 실천한 의사로 소개된다. 환자를 치료하다 C형 간염에 감염되어 죽음이 임박했을 때도 '죽는 건 나니까 그 방식은 내가 정하겠다'라고 말하며 생명연장치료를 하지 않고 아들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 채 운명했다고 한다.
어떤 분인지 구글에서 사진을 찾아 봤다. 이렇게 살다가신 분들도 계시다. 나 자신도 유언장을 미리 준비해 두고 주기적인 업데이트를 해야겠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도 포함해야겠다.
저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도서낭독봉사도 했다. 나 자신도 소리내어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에 낭독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발음이 정확하고 목소리가 적합해야 한다고 해서 망설여진다. 유튜브에 책을 읽어주는 것도 많이 있던데 안되면 이쪽으로라도 올려볼까 한다.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실행에 있다고 한다.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의 은퇴 후 희망순위 1 위는 여행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텔레비전 시청이 1 위였다. (중략)
심리학자의 전언에 따르면, 저질렀던 일에 대한 후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작아지고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세월이 갈수록 커진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생각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실천해보기를 권한다. 인생 2막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270페이지
<길가의 돌> 정종수
내 죽어 하느님 앞에 설 때
여기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냐
한사람 한사람 붙들고 물으시면
나는 맨 끝줄에 가 설 거야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슬그머니 다시
끝줄로 돌아가 설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세상에서 한 일이 없어
끝줄로 가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울면서 말할 거야
정말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한 일을 생각해보라시면
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할 거야
하느님, 길가의 돌 하나 주워
신작로 끝에 옮겨놓은 것 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독서습관357_마흔에 시작하는 은퇴공부_백만기_2019_비전코리아(210314)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60]예루살렘의 아이히만_유대인 학살 전범 재판 참관기 (0) | 2021.03.21 |
---|---|
[358]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_중년은 두 번째 성장기 (0) | 2021.03.18 |
독서습관356_꿈 작업과 글쓰기 작가로 나를 찾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_며느리 사표_영주_2018_사이행성(210314) (0) | 2021.03.14 |
[355]체 게바라 평전_쿠바 혁명의 영웅이자 영원한 리얼리스트 (0) | 2021.03.09 |
[354]리스본행 야간열차_자신을 찾아가는 철학적 소설 (0) | 2021.03.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