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고 마음에 들어 세 번째 책을 읽었습니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최근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에 비하면 사분의 일 수준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시인 백석에 대해서는 '20년 6월 <백석 평전>을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책 <일곱 해의 마지막>이 백석에 대한 소설인 줄은 모르고 김연수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서 골랐던 거였습니다.
백석은 필명이고 원래의 본명은 백기행으로 일제시대인 1912년에 태어나 북한에서 1996년에 사망한 시인이었습니다. 책에서는 본명인 '기행'을 주인공으로 하고 배경은 1957년과 1958년 전후의 북한입니다. 문학인들에게도 고백이 아닌 자백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검증하고 비판하게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낙인이 찍히고 평양을 떠나 지방으로 발령이 나고 다시는 복귀할 수 없게 됩니다.
어두운 일제의 탄압의 시대를 지나고 동족 간의 전쟁을 경험한 뒤에 글로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자 하는 시대에 또 다른 사상 탄압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미 <백석 평전>에서 나왔던 이야기지만 이 소설에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주인공 기행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 인물과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 게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짓는 죄와 벌이지.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88~89페이지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민감합니다. 사람과 사물, 이들과의 관계, 그 때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이 작가의 문자를 통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율성이 통제되고 획일적인 방향으로 글을 쓸 것을 강요할 때 글은 고문이 됩니다. 스탈린 개인 우상화로 가려던 것이 좌절된 것과 같이 이북에서도 김일성 중심으로 가는 것을 비난했으나 비판했던 자들은 중국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기행도 결국 독골이란 외진 시골에서 양을 치는 사람이 되어 평양으로 되돌아갈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그가 알던 사람들이 결국 요직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좌절합니다.
<백석 평전>에 나오는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은 멋쟁이를 연상케합니다. 하지만 말년에 시골에서 두 남매를 키우며 살다가 사망 직전에 우리의 주민증과 같은 신분증에 실려있는 노년의 백석 사진은 평범한 촌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아름다운 언어가 어떻게 쇠도끼 날처럼 자신의 머리통을 내리쳤는지. 그래서 어떻게 자신과 시를 둘로 쪼개 놓았는지. 이제 시는 자신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214페이지
자신이 쓴 시가 있고, 그 시를 사랑해주는 독자들이 있음에도 감상에 젖은 낭만주의, 자본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해야 하는 시인의 입장을 아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자신의 시라고 자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체사상에 어긋나는 생각을 쓴 시라고 비난받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일제시대보다 더한 사상의 통제 시기를 살아야 했던 백석의 삶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백석 평전>을 통해 그의 삶을 더 확대해서 이해한다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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