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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335_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걱정을 벗어나 현재를 사는 방법_여행의 이유_김영하_2019_문학동네(210201)

by bandiburi 2021. 2. 1.

매주 책을 읽고 느낌을 담아 문자로 드러내지만 늘 표현력의 한계를 체험합니다. 작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작가가 다녀간 곳들을 그의 감정으로 다시 여행하고 출발지로 돌아온 기분입니다. 그만큼 작가의 글은 찔기지 않으면서 육즘이 가득한 부드러운 고기를 먹는 듯한 만족감을 줍니다.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녀서 성인이 되어서도 여행에 대한 부담 없이 지구촌을 편안하게 다니는 글로벌 시티즌입니다. 중요한 점은 그의 직업이 한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르코폴로가 돈을 벌겠다고 중국에 갔다가 전혀 다른 세상을 체험하고는 <동방견문록>을 남겼고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불사의 비결을 찾고자 떠났지만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소개합니다. 작가는 우연히 한 페이지에 이 두 권의 책을 소개했지만 내게는 두 권 모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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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대학 입학이 확정되자 대학 측에서는 신입생들에게 추천도서 목록을 주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읽도록 권했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신입생 시절 초기에 과감하게 몇 권의 책을 샀습니다. 거기까지였습니다. 고등학교까지 억눌렸던 생활에서 해방된 대학교 1학년 시절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책으로부터의 해방, 강의실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결국 두 권의 책은 한 번도 보지 않고 결혼해서 이사를 할 때마다 함께 했습니다. 심지어 외국에도 다녀왔습니다. 2020년에서야 30년 만에 읽었습니다. 읽고 나니 그다지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는데 참 오랜 시간을 미뤘습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51페이지

여행은 늘 낯선 장소와 사람으로 인해 긴장하게 됩니다. 가족들과 남유럽 여행을 2주 정도의 일정으로 다닌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매년 한 나라를 정해서 여행했는데 매번 계획하고 예약하는 것은 제가 담당했습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5인 가족이 이동하고 먹고 숙박하는 일정을 짰습니다. 비행기 시간, 기차 시간, 숙소 체크인과 체크아웃이 하나라도 어긋나면 낭패가 되기 때문에 가족들과 여행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여행을 하며 가족들이 처음 접하는 나라와 환경에 놀라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만족하며 다녔습니다. 지금도 이국의 도시들을 우리 마음 가는 대로 걸어 다니며 봤던 풍경들은 사진과 기억에 남아 가끔씩 꺼내봅니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중략)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81~82페이지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 여행은 우리를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110페이지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여행 자체에 몰입합니다. 익숙한 곳과는 다른 모든 것이 새롭게 세팅된 여행지에서 우리의 오감은 열리고 현재를 즐기는 것이 여행입니다. 사람들은 일상의 많은 시간을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오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은 현재를 음미하며 충실하게 사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후회와 걱정으로 마음이 답답하다면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현재만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구글 아트 앤 컬처 앱이나 웹사이트로 들어가면 세계의 유명 미술관을 마치 실제 들어가서 둘러보는 것처럼 360도로 가상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있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살필 수 있는 코너도 있다."-86페이지

(from Google Art & Culture app)


예술품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내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같은 대형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이나 조각 등을 찾아 헤매다 나오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넓은 장소에 걸려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는 시간이 없고, 사실 1시간이 지나면 다리도 아프고 사람에 치이고 흥미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한국에서 편하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론 루브르를 공짜로 원할 때 관람할 수 있는 그곳 학생들은 좋겠다며 부러워했죠. 그런데 구글에서 그런 앱을 만들었다고 하니 고마운 일입니다. Google Art&Culture에 직접 보니 참 편리합니다.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술품이 관심 있는 분들이나 학생들에게 강추입니다.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것이 불안과 고통만은 아니라는 것. 거기에는 '지금 여기'에 없는 놀라운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은 끝이 없다는 것. 여행기의 저자 역시 모험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작은 사건과 사고들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낸다. 그리고 그들은 안전하게 돌아와 그것을 글로 기록한다."-198페이지

작가 김영하가 경험한 여행이 마치 그의 글의 저자와 같습니다. 서울의 집을 팔고 미국에 살 때는 그곳이 한국보다 익숙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인도 주재원 생활이 그랬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인도에 함께 살고 있고 한국 출장을 가더라도 잠시 머물 곳뿐이어서 한국이 여행지였습니다. 노마드족과 같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집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전국 어디든, 세계 어디든 잠시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있는 여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글로 풀어서 공유하는 삶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에 수많은 여행담을 읽어줄 독자가 오히려 더 적은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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