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이니 만 3년의 블로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불규칙적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올렸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한 권의 책에서 여러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세상에 모르는 유명작가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의 작은 독서세계를 확대해가며 어느 책이라도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게 됩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아서 밀러Arthur Miller'입니다. 아서 밀러의 작품세계도 모른 채 다른 책에서 소개한 <모두가 나의 아들 All My Sons>을 읽었습니다. 짧은 희곡집으로 읽다보면 이야기속으로 푹 빠져듭니다. 8월 어느 일요일 아침에 1막이 시작되어 다음날 새벽 2시에 3막으로 끝이나는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이자 아버지인 조 켈러의 집을 중심으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특징과 배경이 머리에 그려집니다.
조 켈러는 아들이 둘 있었는데 둘째 아들 래리는 2차대전에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고, 큰 아들 크리스만이 참전후 돌아와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크리스에게 전쟁은 삶과 죽음이 눈앞에서 교차하는 현장이었고 죽은 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서 접한 사람들에게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일상은 전쟁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습니다. 물질주의가 팽배하고 부의 축적만이 삶의 목표가 되는 현실에 실망하지만 결국 그도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주면서 축적된 부의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거야. 그 모든 게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버스 사고 같은 거였어. 나는 아버지를 도와서 일을 하게 되고 다시 엄청난 생존 경쟁에 투입되었지."
조 켈러는 부품을 제때에 납품하지 못하면 군과 계약이 해지될 것이 두려워 결함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120개의 엔진헤드를 군에 공급했습니다. 그 부품을 사용한 전투기는 추락했고 무고한 젊은이들이 사망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직원이자 이웃인 조지의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냅니다.
조 켈러와 케이트 켈러 부부는 이런 사실을 숨긴 채로 사업을 키웠고 이제는 크리스에게 물려주고자 합니다.
크리스가 조지의 여동생인 앤과 결혼하기 위해 집으로 데려왔을 때 두 노부부는 불안해졌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사람과 사돈관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결혼을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앤과 크리스는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점점 긴장감은 고조되어 변호사인 조지가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서 억울함을 듣고 조 켈러의 집을 찾아옵니다. 갈등이 고조된 상태에서 조 켈러가 평생 병을 앓아본 적이 없다는 말실수와 앤이 가져온 래리의 편지를 통해 켈러 부부가 숨겨두었던 비밀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과거의 부끄러운 행위가 밝혀지자 조 켈러는 아내와 아들에게 자신의 행위는 가족을 위한 행동이라며 정당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려 합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공동체로 확대하기 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켈러는 자신의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하면서 극은 끝이 납니다. 짧은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결함 있는 부품을 군에 납품했던 한 남자가 딸에 의해서 고발 당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모두가 나의 아들>은 과거의 행위가 야기하는 인과 관계를 인식하고 그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극에서 과거는 묻히거나 잊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책을 3막 끝까지 읽었지만 왜 제목이 '모두가 나의 아들'일까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작품해설을 보니 이해가 되네요. 자신의 가족을 위해 사업을 키워왔다고 생각한 조 켈러는 자신의 과거 행동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행위로 인해 죽어간 조종사 모두가 자신의 아들임을 깨닫습니다.
조 켈러는 자살했지만 아들 크리스의 삶은 이제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하지만 극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고 마무리합니다. 독자들에게 결말을 읽어내도록 작가가 의도적으로 결말을 유보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잔잔한 여운이 마음에 남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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