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처에 이발소가 하나 있습니다.
3주나 4주에 한 번씩 커트를 하러 들렸습니다. 커트와 함께 면도도 했는데 가격은 13,000원으로 착했지요. 그런데 작년에 건물을 부수고 신축한다고 해서 회사 근처에서 헤어 손질은 멈추고 말았습니다. 경기도 집 근처의 남성 헤어 커트 체인점으로 미용실을 바꿨지요. 8,000원으로 제일 저렴했습니다. 올해는 9,000원으로 올랐지만요. 제 기억으로 체인점이 생겼던 초창기에는 강변역 근처에서 6,000원이었습니다.
남성 전용 미용실 체인점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0분 미만의 짧은 커트 시간을 생각하면 미용사가 제품을 만들듯이 빠른 시간에 처리하는 것 같아 대접받지는 못하는 느낌입니다. 내가 순서를 기다릴 때는 시간이 더딘 것 같고 머리를 손질하고 있으면 천천히 서비스를 받고 싶은데 뒤에서 앉아 기다리는 손님들을 생각하면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미용실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커트를 하고 다른 손님을 받는 게 좋겠죠. 손님 개개인이 결국은 매출과 직결되니 마치 식당에서 회전율이 중요하듯이 단위 시간당 몇 명이나 커트를 했냐가 수익인 것입니다.
그래서 매달 최소 한 번은 거쳐야 하는 남성 커트의 시간이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 같습니다. 부득이하게 개운함과 단정함을 갖추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가 되었습니다. 별다른 즐거움이 없습니다. 미용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손님들 사이에서 부담스럽습니다. 나는 짧은 시간에 커트 서비스를 받고 미용사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특히 경기도 집 근처에 있는 서로 다른 두 체인점의 느낌이 동일합니다.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참고하세요.
손님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나 서비스를 받고 비용 대비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면 성공하실 겁니다. 임대료가 비싼 수도권에서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작은 것을 양보하고 큰 것을 얻는다면 그것도 장기적인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미용실에서 하는 방법이 아니라 조금은 개성 있는 서비스를 가미하면 좋겠습니다.
다시 회사 근처 미용실로 돌아오겠습니다.
지난달에 건물을 다 짓고 여러 가게들이 입점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기다렸던 미용실 아니 이발소가 개업했습니다. 이전보다 공간이 작아졌습니다. 식사를 하러 근처를 지나가며 커트할 때가 되면 이곳에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겉이 가려져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아 어떤 분위기인지, 손님은 많은지, 가격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발한 지 4주가 되어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할 때도 돼서 마음먹고 새로운 건물의 이발소로 갔습니다.
이전 면적의 반 정도 되는 공간에 이발사만 격투기 경기를 보고 계십니다. 반가웠습니다. 예전의 그분이 계속하고 계십니다. 공사가 진행된 거의 2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물었습니다. '그냥 놀았죠'라고 하십니다. 이전 이발소의 분위기는 80년대의 이발소와 비슷했습니다. 그런 곳이 옛날 생각도 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새로 인테리어를 한 곳은 수도권의 여느 미용실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체인점 느낌입니다.
말 그대로 남성들만 가는 이발소였기에 와이셔츠를 벗고 러닝만 입은 상태로 머리를 깎습니다.
보통 이발소에서는 옷에 머리카락이 묻을 가봐 단출하게 하고 커트를 했습니다. 체인점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분위기죠. 주로 아주머니들이 미용사로 계시고 빨리 머리만 스스로 감고 퇴장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입니다.
손님이 나 혼자였기에 여유 있게 담소를 나누면서 커트를 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서 경제에 영향이 크다는 얘기, 나이가 환갑이 넘어 보이시는데 텔레비전으로 이종격투기를 보고 계신 것에 놀랐다는 얘기, 손님은 많은지 등에 대해 누구의 신경도 쓰지 않고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만을 위해 이발사 아저씨가 온전한 시간을 투자한다는 점입니다. 주로 가위와 빗을 사용해서 정성 들여 머리카락을 잘라 가며 형태를 잡습니다. 10분 미만의 시간을 들여 한 사람을 상대하는 체인점과는 다릅니다. 20분이 넘도록 정성을 다하십니다. 평상시보다 오래 앉아있다 보니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커트를 하고 나니 아저씨가 '이쪽으로 오시죠'라고 하십니다. 머리 감는 것을 체인점에서는 스스로 합니다. 그래서 순간 스스로 하려던 것을 멈추고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세면대 앞에 앉습니다. 바로 아저씨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감겨주셨습니다. 먼저 비누로 한 번, 그리고 샴푸로 한 번 감은 뒤에 수건으로 쓱싹입니다. 헤어스타일도 마음에 들고 조용하게 커트하는 과정 과정을 즐길 수 있어서 작은 행복감이 몰려왔습니다.
이제는 계산을 할 시간입니다.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아 12,000원 이상 하겠다고 추정했는데 아저씨가 10,000원이라고 하십니다. 체인점은 간단한 서비스에 9,000원을 받는데 아저씨는 10,000원만 받으면 유지가 되시겠어요라고 제가 반문합니다. 서비스 수준을 고려하면 12,000원 정도를 드려도 만족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제값을 받으시려나 싶습니다. 서로가 윈윈 하는 방법은 서비스를 주는 분도 받는 분도 만족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면 소재지에 있는 이발소에 가면 독특한 이발소 향이 있었습니다. 그 냄새가 몸에 좋은지 나쁜지는 차치하고 그런 종류의 냄새는 과거의 그곳으로 나를 인도합니다. '이발소'란 용어 자체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요즘은 미용실이 참 많습니다.
인도나 중국에서 회사 일로 체류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제일 힘든 것이 이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나름 6개월 배웠던 중국어로 설명을 했는데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정성을 들이더니 거금을 요구해 바가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양쪽 옆을 짧게 깎아달라고 했는데 눈을 감았다 떠보니 거의 해병대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가장 마음에 드는 모델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말보다 사진이었습니다.
조용한 이발소에서 작은 행복과 과거의 추억이 떠올라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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