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스티븐 와인버그 Steven Weinberg
197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국가 과학 메달과 루이스 토머스상을 비롯한 수많은 명예 학위를 받은 바 있다. 국가 과학 아카데미, 런던 왕립학회, 미국 철학학회를 포함한 여러 학회의 회원이고 <뉴욕 북 리뷰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오랫동안 서평을 써왔으며, 최고의 이론물리학 논문들도 썼다. 뿐만 아니라 <최초의 3분The First Three Minutes>, <최종 이론의 꿈Dreams of a Final Theory>, <고개를 들라Facing Up>, <호수 풍경Lake Views> 등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텍사스대학교에서 조시 리젠털Josey Regental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 소감
과학에 대한 서적을 많이 읽지 못해 최근에 간행된 책을 찾다가 마주친 책입니다. 목차를 봤을 때 약간은 어렵겠다는 생각되 들었지만 그럴수록 얻는 것도 많을 것 같아 도전하는 심정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시절 물리를 좋아했지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과학의 역사는 생소한 인명과 이론 설명이 많아 어려웠습니다. 일반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리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문맥을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기에 더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물리나 수학에 관한 부분은 도형이나 수식으로 보여주면 이해가 쉬울 텐데 말로 풀어놓으니 다시 수식으로 전환해서 이해하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체를 읽고 나니 저자의 박학다식함에 놀랐고, 인류의 과학의 역사에 대해 짧은 시간에 전체를 훑어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역사시간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아랍 시대의 과학자들에 대해 소개되어 좋았습니다.
과학은 신이나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과학의 목적은 현상에 대한 자연적인 설명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누적된다.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을 근사치로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하며, 그 근사치가 언제 어떤 이유로 작동하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원칙들은 고대나 중세 시대의 과학자들에게는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16세기와 17세기에 일어난 과학 혁명을 통해 우리가 너무나 어렵게 얻어낸 것이다-13페이지
초기의 그리스인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일종의 지적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과학의 역사를 망가뜨린 여러 태도들 중 하나의 예일뿐이다.-26페이지
기원전 그리스 시대에 과학이란 개념이 있었을까란 궁금증이 앞섰습니다. 그리스 시대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이 먼저 생각납니다. 물론 이 책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주 언급되어 나옵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것을 관찰하고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가는 것을 무가치한 일로 여겼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기원전 700년경에 되살아났지만, 페니키아인들에게서 빌려온 알파벳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시를 쓰는 데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그중 일부는 그리스 암흑기에 대해 쓴 것으로 오랫동안 기억된 시가 되었다. -32페이지
과거의 역사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당시의 언어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구전되어 오던 것들이 사람과 함께 사라졌다면 자취조차도 우리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가 페니키아에서 빌린 문자로 글을 남겼기에 그리스 신화에 대해 후세에서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론과학자들은 그 이론이 실제로 현실 세계에 적용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탈레스에서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에 대한 시인들이 결정적으로 빠뜨린 것은 바로 이 검증에 대한 노력이었다. -35페이지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자연에 대한 많은 이론과 논리를 언급하지만 그 이론을 검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과학적인 접근 방법은 16세기 과학 혁명과 함께 체계적인 접근방법이 정립되어 갔다고 생각됩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10진법이 아니라 60진법을 이용하여 수학에서 위대한 성과를 거뒀다. -36페이지
하지만 수학은 자연과학이 아니다. 관측 없이 수학 그 자체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우리에게 이야기해줄 수 없다. 그리고 수학 이론들은 세상에 대한 관측으로 검증될 수도, 반박될 수도 없다.-43페이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10진법과 컴퓨터가 이해하는 2진법입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사용했다는 60진법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데 60진법 만을 알고 사용한다면 위대한 성과를 남기는 것도 가능했겠다 상상해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목적론으로 가득 차있다는 점이다. 목적론은 사물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47페이지
생물학에서는 신체의 각 부분의 기능을 고려했을 때 목적론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지만, 물리학이나 천문학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과학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시기의 몇몇 인기 있는 과학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55페이지
과학에 대한 명쾌한 정의입니다. 우리는 물리, 화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을 배움으로써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일어나는 현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이론적인 배경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개선하기 위한 방향도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자연에 대한 이해가 기초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에서 악티온까지의 이 시대는 1830년대에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Johann Gustav Droysen이 명명한 헬레니즘Hellenistic시대로 알려져 있다. -58페이지
헬레니즘 시대에 강력한 과학의 중심지는 알렉산더 대왕이 나일강 입구에 세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가 되었던 알렉산드리아였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세계의 최대 도시가 되었고, 이후 로마 제국에서도 그 규모와 부가 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59페이지
이 책의 장점입니다. 과학의 발전에 대해 역사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헬레니즘이라고 명명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강력한 과학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는 현재 더 이상 그 흔적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은 안타까운 점입니다. 역사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곳 알렉산드리아는 상상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또 다른 요인은 환자들에게는 병에서 회복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 의사들은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자신들의 치료법을 계속 적용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권위를 유지해야 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연구에 저항하는 것은 의학에서만 있는 일을 아니다.-74페이지
고대의 의술이란 것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로 보면 민간요법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외과의 경우 마취라는 것이 없었기에 큰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름 의술이 비법처럼 전수되고 그 치료법이 의사의 권위를 나타내기에 더 나은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플라톤은 자연에 대한 연구에서 종교의 역할을 지키는 데 열심이었다.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무신론적인 가르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80페이지
고대에 자연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은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종교와 분리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플라톤 역시도 고대의 사고체계를 벗어나기 어려워 자연에 대한 연구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발전을 이룩한 과학은 천문학이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천문학적인 현상들이 지구 표면에서의 현상들보다 더 단순하다는 것이다 - 88페이지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달리 인구가 적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학문의 범위도 좁았던 시대에 하늘에 떠 있는 천체를 관찰하며 규칙을 찾아 정립하는 천문학이 발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시간도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법칙을 찾는 것만 남은 것입니다.
현재 시아파라고 불리는 분파의 전신이 된 소수의 아랍인들은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Fatima의 남편이자 네 번째 칼리프인 알리의 권위만 인정했다. 결국 알리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 알리와 그의 아들인 후세인이 죽임을 당한 이후 이슬람 세계의 분열은 고착화되었고, 661년에 수니파의 새로운 왕조인 우마이아Ummayad 왕조가 다마스쿠스Damascus에 세워졌다. -148페이지
서양, 특히, 미국에 의해 방송되고 조장된 반이슬람 정서에 빠져 아랍권에 대한 이해가 적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이슬람교를 가진 사람이 많음에도 극단주의자들의 자살 폭탄테러만이 방송되어 선량한 대다수의 이슬람인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종종 시아파니 수니파니 언급이 되지만 그 기원에 대해 몰랐는데 이 책에서 자세히 언급되어 있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취할 때에 비판적인 사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좌나 우로 치우친 부분은 없는지 혹시 있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이 필요하겠습니다. 맹목적으로 선악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압바시아 왕조는 훌라구 칸Hulagu Khan의 몽골 군대가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칼리프를 죽인 1258년에 끝이 났다. -164페이지
중세 이슬람에서 과학에 대한 적대감이 증가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단지 알 가잘리의 저작만이 아니다. 1194년 바그다드의 반대편 끝에 있는 이슬람 세계인 무와히드 왕조의 코르도바에서는 울라마Ulama(지역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든 의학과 과학 서적들을 불태웠다. -173페이지
이슬람에서는 포도주를 금지하고 있고 중세에는 과학에 대해서도 포도주와 같이 금기시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을 위험한 원칙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교적인 면에 반하는 면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기독교계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었습니다. 지구와 같은 행성이 더 있다는 주장이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주장 등 성경에 반하는 것에 대한 엄격한 판단이 그 사례입니다. 종교와 과학을 동일시한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중세 초기의 유럽인들은 그리스인들의 위대한 과학적 성과들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몰랐다. 고트족, 반달족, 훈족, 아바르족, 아랍인들, 마자르족, 그리고 북유럽인들의 계속적인 침략에 시달린 서유럽인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유럽은 10세기와 11세기가 되어서야 살아났다. 침략이 줄어들었고 새로운 기술들이 농작물 수확을 증가시켰다. 13세기 후반에는 중요한 과학 연구들이 다시 시작되었고, 16세기까지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그 기간 동안에 과학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제도적, 지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176페이지
로마제국이 망한 이후 유럽은 여러 이민족의 침입으로 생존이 우선이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연구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의식주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연구에 몰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생존에 대한 것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교회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중세 기독교는 부분적으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예를 통해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훨씬 더 크게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플라톤의 저작들과는 달리 자연주의적이었고, 우주에 대한 그의 시각은 법칙들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그의 법칙들은 그렇게 발전된 상태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손을 사슬로 묶는 인상을 주었다. -179페이지
아퀴나스의 위대한 저작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을 종합적으로 융합한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이었다. -181페이지
아퀴나스는 이것을 모세가 자신의 연설을 청중들의 수준에 맞춘 것이므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191페이지
지구와 유사한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신학적으로 위험한 것이었다. - 192페이지
중세시대에 성경에 언급된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우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상충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때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불경한 것이 되지만 학문적으로는 도리어 성경에 있는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성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교차되는 시기에 올 수 있는 갈등은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도 했으니 과학자들은 학문 이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또 있던 것이지요.
14세기 중반부터 15세기 중반까지 유럽은 재앙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은 영국을 텅 비게 하고 프랑스를 초토화시켰다. 교회는 분리되어 로마의 교황과 함께 또 다른 교황이 아비뇽에도 있었다. 흑사병이 유럽 각지에서 인구의 상당수를 줄여버렸다. 아마도 백년전쟁의 결과로, 이 시기에 과학의 중심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동쪽인 독일과 이탈리아로 이동했다 -197페이지
이민족의 침입에서 벗어나 안정이 되었던 서유럽에서 다시 한번 큰 변화가 몰아쳤습니다. 흑사병과 함께 전쟁이 지나갔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두 교황이 세워지는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 사이 과학의 중심지가 이동되었습니다.
과학 혁명 이전의 과학은 종교나 우리가 지금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과 혼재되어 있었으며, 아직 수학과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 203페이지
교황의 권위를 성서의 권위로 대체한 프로테스탄티즘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성경 문구와 반대된다는 사실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다-216페이지
교황의 권위에서 기독교에서는 성경의 권위로 옮겨갔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문구가 과학보다 앞서있거나 동등한 수준이었기에 성경의 권위를 앞세워 과학자들을 제단 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의 문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것이 악용되어 교주라는 사이비 종교의 우두머리에 휘둘리기도 합니다.
천문학의 미래에 티코 브라헤가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그의 이론이 아니라 전례가 없이 정확했던 그의 관측이었다. -223페이지
티코 브라헤에 대한 전기를 읽은 기억이 나는 대목입니다. 천체를 관측하는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면서 케플러와도 함께 일했던 적이 있었던 역사적인 천문학자였습니다.
어떤 시점부터 케플러는 이 이론이 희망이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티코 브라헤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였던 '행성들의 궤도가 원'이라는 가정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확신했다.-230페이지
이전의 천문학자들이 천체를 해석하기 위해 궤도를 원으로 가정해서 여러 가지 가정을 했지만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케플러가 원이라는 가정을 포기하고 타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모든 것이 해석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기존의 틀을 깬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점과 그것을 깨고 새로운 차원의 천문학으로 이끈 캐플러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은 천상의 세계로 어떻게 가느냐이지 천상의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느냐가 아닙니다'-250페이지
정말 명쾌한 해석이라고 생각되는 문장입니다. 성경을 통해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묵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상의 세계가 어떻게 운행하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와 과학을 명확하게 분리해주는 문장입니다.
그는(데카르트)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도 부정했다. 존재하는 것은 수행해야 할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은 몇 가지 주장들을 했지만, 조직된 종교의 권위는 부정했다. -275페이지
데카르트와 베이컨 하면 철학자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자연과학자로도 등장합니다. 그들이 주장했던 것이 틀린 것이 많았고 과학사에서 그 비중이 작지만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물학의 모든 일반적인 원리는 물리학의 기본 원리와 절대 설명될 수 없는 역사적인 사건과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350페이지
책의 뒷부분에 많이 할애하고 있는 것은 케플러와 뉴턴에 대한 부분입니다. 천문학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한 두 과학자입니다. 케플러의 타원의 초점에 기초한 1,2,3법칙과 뉴턴이 천체들이 궤도를 회전하고 이탈하지 않는 힘을 찾아낸 만유인력의 법칙들이 그 사례입니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탈레스부터 아인슈타인까지 과학의 발전에 대해 조금은 깊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전문 해설'이라고 뒷부분에 앞에서 설명한 이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고 이해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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