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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1008]설국_도쿄의 시마무라가 만난 설국의 고마코의 정열과 요코의 순정

by bandiburi 2025. 2. 15.

『설국雪國』은 <가와바타 문학이 정점에 도달한 근대 일본 서정소설의 고전>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순간순간 덧없이 타오르는 여자의 아름다운 정열에 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기다란 시미즈[淸水] 터널 밖으로 나오면 눈의 고장, 설국이 있다. 그 한적한 곳의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야성적 정열과는 대조적으로 순진무구한 청순미로 시마무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코, 이 두 여자를, 도쿄에서 온 무위도식하는 여행자에 불과한 시마무라는 허무의 눈으로 지켜본다. (155)

위의 문장은 1947년 발표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을 잘 요약하고 있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매년 주기적으로 이곳 온천장에 일정 기간 머무르다 도쿄로 돌아간다. 그곳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본 요코의 청순함에 크게 마음이 흔들린다. 

소설의 주인공은 시마무라다. 그는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유한계급처럼 보인다. 반면에 죽어가는 약혼자를 살리기 위해 게이샤로 육체를 팔아가며 살아가는 고마코는 약동하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솔직한 살아있는 삶이다. 고마코의 약혼자는 사랑하는 여인 요코가 있다. 그래서 요코가 병약한 약혼자를 돌본다. 

설국에서 시마무라는 고마코와 점차 가까워진다. 고마코는 수시로 그의 거처로 방문하며 자신의 감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둘 사이에는 진전이 없다. 둘의 만남은 형식으로 보인다. 가까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둘 사이에 있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 소외'라는 의견이 있는데 공감되지는 않는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와의 만남을 유지하면서도 요코에 대한 호기심은 지속된다. 고마코와는 달리 조용히 약혼자 곁에 있는 요코다. 결국 약혼자가 죽고 나서 몇 년 뒤에 화재가 났을 때 자살인지 사고인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요코의 사망과 함께 소설은 끝난다. 외부와 단절된 장소인 설국, 그리고 그곳에 위치한 온천장, 온천장에서 일하는 게이샤들, 그곳을 지나는 기차 등 소설에는 자연을 묘사한 문장이 많다. 글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짧지만 소설을 통해 1940년대 전후의 일본의 아름다운 설국을 여행했다. 소설 속에 정확한 시기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추정하자면 2차 세계대전 시기다. 일본은 여러 전선에서 싸우고 있고, 한반도는 조선인은 일본보다 더욱 살기 어려운 시대였다. 그럼에도 주인공 시마무라는 가족이 있는 도쿄와 설국을 오가며 한량과 같은 생활을 누렸다. 그의 정체가 궁금하다.

고마코가 아들의 약혼녀,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 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서 또 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의 약혼자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랴. (55)

「아니, 괜찮아요. 우린 어딜 가도 일할 수 있으니까」
너무나 솔직하고 실감 어린 어조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에겐 몹시 뜻밖이었다. 
「정말이에요. 어디서 벌건 다 마찬가지죠. 징징거릴 필요 없어요」(112)

떨어진 여자가 요코라고 시마무라가 안 것은 언제였을까? 사람들이 앗 하고 숨죽인 것도, 고마코가 아앗 하고 외친 것도 실은 거의 동시였다. 요코의 장딴지가 땅 위헤서 경련을 일으킨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150)


독서습관1008_설국_가와바타 야스나리_2009_민음사(250212)


■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189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15세 때 10년간 함께 살던 조부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로 인해 생겨난 허무와 고독, 죽음에 대한 집착은 평생 그의 작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1920년 도쿄 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지만 곧 국어국문학과로 전과, 1924년 졸업했다. 

이후 《문예시대》를 창간.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감작적이고 주관적으로 재창조된 새로운 현실 묘사를 시도하는 '신감각파' 운동을 일으켰다. 1924년 서정적인 필체가 빛나는 첫 소설 『이즈의 무희』를 발표현 이래, 『서정가』 등 여러 뛰어난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으며, 1937년 『설국』을 출간하여 독보적인 일본 작가로 국내외에서 자리매김되었다. 이 작품은 발표 후 12년 동안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1948년 마침내 완결판 『설국』으로 출간되었다.

(...) 1968년 그간의 작품 활동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 외에도 괴테 메달,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일본 문화훈장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1972년 3월,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은 후 퇴원 한 달 만에 자택에서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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