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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1005]청춘의 문장들_35세의 김연수를 만든 이전의 흔적들

by bandiburi 2025. 2. 4.

 『청춘의 문장들』은 저자 김연수의 삶과 시詩의 조화를 잘 보여준다. 그가 꾸준한 글쓰기를 하며 단련된 필력이 드러난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중국의 당시唐詩와 일본의 하이쿠도 적당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시'를 소리 내어 읽으며 그 심상을 마음속으로 떠올려보는 기회를 준다. '시'와 점점 멀어지는 현실에서 잠시 저자의 감수성을 따라가는 평온함을 누린다.

저자는 김천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막내로 자랐다. 대학 진학할 때 원하던 천문학에 떨어지고 대신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과생에서 문과생으로 방향을 틀었다. 글 속에서 묻어나는 그의 청춘은 '지루함', '무료함'이다. 그런 지루한 시간에 저자는 시를 쓰고, 책을 읽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뚜렷한 무방향성은 이어진다. 그런 경로를 통해 결국은 고향 빵집에서 만났던 스님의 말대로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가 되었다.

어린 시절 지루한 여름에 마루에 누워 뜨거운 하늘을 쳐다보며 매미소리를 듣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루할 때 우리는 무료함을 달랠 뭔가를 찾는다. 책이나 신문을 뒤적이고, 어디를 가보고, 무엇을 만들거나 정리한다. 그런 과정 자체가 쓸모없어 보이지만 반복되는 중에 우리는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현대인은 그냥 바쁘다. 출퇴근 하며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분주함이 드러난다. 스마트폰과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들이 우리의 시간을 노린다. 대부분이 무방비로 그러한 앱들의 습격에 노출된다. 자신의 시간이  즐거움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에게 온전히 주어질 시간적 여력이 거의 없다. 

저자가 세계적인 유명 작가의 사연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움베르토 에코를 다시 만났다.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 여자친구의 조언을 듣고 중년의 나이에 썼다고 한다. 그가 중세에 대한 지식과 추리소설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 이를 접목해서 써보라고 했던 거다. 인생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실천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저자는 김광석의 노래에 대한 애틋한 사연과 추억을 고백한다. 나도 김광석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멀리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그는 갔다. 그의 노래는 아름다웠고, 그의 죽음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저자는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중음악평론가의 길이다. 그의 삶이 지루해 보였는데 책을 덮고 보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 그가 소개한 여러 팝송에 대한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마지막에 어머니의 칠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외가 쪽이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반도로 돌아온 사연이 있어 저자가 일본 하이쿠를 좋아했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청춘의 문장들』을 읽으며 김연수란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가 경험했던 경로를 따라가며 나의 흔적을 반추해 본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당시唐詩라면 내게는 임창순 선생의 『당시정해』다. 소리내 읽다 보면 입에서 향기가 날 것 같다. 세상 살아가는 데 그런 향기 입에 담고 친구와 술 마시는 일보다 윗길인 일이 없다. (35)
그즈음 창 밖을 내다보면 뭔가 지나가는 게 언뜻언뜻 눈에 보였다. 바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었다. (45)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318

 

[519]장미의 이름(상)_14세기 중세 수도원 생활 그리고 교황과 황제 관계

은 수도원의 배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1일 차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다양한 언어에 대한 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넉

bandiburi-life.tistory.com

 
어떤 사람이 소설을 쓰게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예컨대 기호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는 "너는 중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추리소설에 대해서도 잘 아니 중세를 다루는 추리소설을 한 번 써보라"는 여자친구들의, 삼단논법에 가까운 권유에 혹해서 거의 쉰 살이 가까워 『장미의 이름』을 썼다. (56)

(출처: 정약용 도서관)

인도 영화 <밴디트 퀸>의 시나리오를 썼던 아룬다티 로이는 그 시나리오의 내용 때문에 법정까지 가는 곤란을 겪고 난 뒤에야 자기 마음대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로이는 가정주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매일 지극히 짧은 문장을 이어나갔다. 썼다가 다시 고치는 문장이 아니라 적게 쓰더라도 매일 이어지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자 소설 한 권이 완성됐다. 그게 바로 로이를 국제적인 작가로 만든 『작은 것들의 신』이다. 로이는 이 소설 한 권으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22개국에서 번역되는 큰 행운을 누렸지만, 인터뷰에서 자신만을 위해 쓴 소설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58~59)

J.R.R 톨킨 1892~1973 (출처: Wikimedia Commons)

롤링의 선배 격이라면 판타지 소설의 창시자 J.R.R 톨킨을 들 수 있다. 이 사람은 움베르토 에코가 유명한 기호학자였던 것처럼 유명한 언어학자였다. 그런 그가 엄청난 판타지의 세계인 『반지의 제왕』을 쓰게 된 것은 자신의 네 아이들 때문이었다. 얘기인즉슨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동화책을 찾다가 아예 자기가 동화를 만들어 읽어주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다가 그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했는데, 엄청난 반응이 쏟아진 것이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속편을 원하자 '그렇다면 어디 한 번'이라는 심정으로 쓴 책이 그만 『반지의 제왕』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상력의 세계가 된 것이다. (59)

(출처: 정약용도서관)

소설가가 된 뒤, 마루야마 겐지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회사에서 쓴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뒤, 문예춘추사를 찾아간 마루야마는 수상자가 두 명이란 사실을 알고는 실망했다. (...) 마루야마는 그 상금으로 빚을 갚고 회사로 돌아가 늦게까지 야근했다. (60~61)

알 쿠퍼 (출처: Wikimedia Commons)

자기가 뜻한 바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거지에게 동전을 던지다가도 내일이면 그 거지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구걸할지도 모르는 삶이다.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밥 딜런이 그 노래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뭔가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Like a Rolling Stone>의 마음을 지켜가는 알 쿠퍼의 오르간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 (109~110)

(출처: 정약용도서관)

나는 이안 와트의 『소설의 발생』을 공부하면서 소설에 대한 견해를 비로소 가질 수 있었다. (...) 와트는 이 책에서 영미권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주류 장르로 떠올랐는지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17세기 영미사회의 기술적 진보가 없었더라면 소설이란 장르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문화사회학적인 관점인데, 나는 이 가설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론을 오독했는지 모르지만, 그제서야 천재가 아닌 나도 소설을 창작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얻게 된 것이다. (110)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119)
어느새 청춘은 멀리 가버렸으나 내 마음엔 여전히 그 뜻 남아있는 듯, 지금도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몸이 아파온다. 석양빛 아직 아니 사라졌는데 등나무에 벌써 올라선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버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청춘은 그런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가 그 빛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버렸다. (142)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듣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뜻은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 세상을 더 밝고 멀리 보라는 까닭이다. (194)


독서습관 1005_청춘의 문장들_김연수_2004_마음산책(250205)


■ 저자: 김연수

1970년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한 빵집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평생 사서 먹을 빵보다 더 많은 빵을 그냥 집어먹으면서 자랐다. 빵은 둥글고 부드럽고 누르면 어느 정도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그의 본성은 빵의 영향을 받았다. 열일곱 살, 전적으로 이과에 적합하게 태어난 냉철한 머리가 그만 이상과 김수영과 김지하의 시를 읽으면서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수많은 문학과 중에서 천문학과를 택했다가 결국 영문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드넓게 바라볼 때, 두 과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3학년 때,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리고 4학년 때,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았다. 한때는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기자 생활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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