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박형주의 강의를 듣고 수학과 물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데 익숙했다.
강의 내용이 아주 유익했기에 그의 생각을 더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검색해서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를 만났다.
책의 내용은 속이 꽉 찬 맛있는 과일을 먹는 느낌이었다.
페이지마다 흥미로운 지식과 역사적 사실들이 담겨 있어 지루하지 않다.
수학자가 이렇게 재미있게 책을 쓸 수 있구나 싶을 정도다.
일독을 권한다.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아래에 담았다.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는 유명한 방정식은 E=mc2은 몇 번을 곱씹어야 했다. 질량 100의 원자핵이 충격을 받으면 질량 49의 가벼운 원자핵 두 개로 갈라진다는 게 핵분열인데, 사라진 2의 질량이 무시무시한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질량 50의 원자핵 두 개를 엄청난 고열에서 쾅 충돌시키면 질량 98의 무거운 원자핵이 되고 사라진 질량 2가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게 핵융합이다. 인류는 이 이론을 책 안에 묶어두지 않았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원자폭탄과 같은 무기로 구현했다. 핵융합으로 수소폭탄도 만들어냈다. (16~17)
갈루아는 불같은 청년기를 보냈다. 대부분의 수학적 업적은 10대 시절에 이루었고, 프랑스혁명에 참여했으며, 에콜 노말에서 퇴학당했다. 여인을 두고 벌어진 권총 결투로 20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다행히 죽기 직전, 자신의 죽음을 예상한 듯이 오귀스트 슈발리에에게 자신의 수학적 업적을 서신으로 남겼다. (19)
호랑이의 경우, 인간보다는 조금 늦게, 하지만 치타보다는 이른 시기에 일어난 화학반응에 따라 멜라닌이 분포되는데, 호랑이가 멋있는 줄무늬를 갖게 된 것은 이런 질서 정연한 법칙 때문이다. 컴퓨터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튜링 업적의 중요성은 의심할 바 없게 되었고, 동물 표피 무늬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튜링의 논문은 그의 생애 마지막 논문이 되었다. (51)
미국 UCLA 대학교에서 응용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페드키우 박사는 가상실험에 물리 법칙을 적용하는 연구 PhysBAM로 스탠퍼드 대학교 전산학 교수가 됐고, 이후 할리우드의 명사가 됐다. 그가 제시하는 방식은,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중력 법칙을 적용해 운석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를 표현해 낸다. 유체역학의 나비어-스톡스 방정식을 풀어서 캐리비안 해적의 배로 몰아치는 폭풍과 범람하는 해일의 변화상을 예측하고 이를 화면에 뿌려내는 것이다. 할리우드 감독들은 그 결과가 만들어내는 생동감에 열광했다. (69)
군자선가어물 君子善假於物, <순자荀子>에 나오는 말이다. 군자는 물건을 잘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샛말로 하면 군자는 긱 geek에 가깝다는 말이려나. 무릇 군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 게으르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니, 얼리 어답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73)
부인할 수 없는 데이터의 명징성과 탁월한 설득의 힘으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결국 총리를 비롯한 영국 내각은 총사퇴했고 빅토리아 여왕은 흑해까지 가서 나이팅게일을 면담했다. 간호사 한 명이 영국 정부를 무너뜨린 이 과정은 <딜레인의 전쟁 Delane's War>이라는 책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죽지 않아도 되는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어나가는 부조리에 맞서 딜레인이 런던의 정치인들과 전쟁을 벌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80)
과연 청소년에게 수학이 무엇일까?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21세기가 지식의 시대가 아니라는 역설에 있다.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곧 낡은 지식이 되니, 얼마나 아는가는 덜 중요해졌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능력이, 논리적 사고가, 그래서 중요하다. (81~82)
(...) 구구단처럼, 외워두면 두고두고 사용하며 수고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러나 배우고 나서 그 기본 원리나 해결의 논리적 과정은 간직하되 세부 내용은 잊어버려도 무방한 것도 있다. 필요할 때 인터넷이나 책에서 찾아보거나, 논리적 사고의 과정을 통해 재현할 수 있다면 족하다. 컴퓨터에 능해 검색을 잘하는 것과는 달라서, 지식의 상호연계라는 큰 그림을 가지고 무엇을 찾아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 (88)
지구에서 IQ가 가장 높은 사람으로 거론되곤 하는 테렌스 타오는 조화해석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정수론에 무작위성을 도입하여 2006년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이다.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은 클레이 재단이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건 밀레니엄 문제 '푸엥카레 추론'을 난해한 개념을 사용해서 풀어냈는데,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닌 타오는 이에 대해서도 통찰력 가득한 강의를 펼쳐낸다. 그의 천문학 대중 강연은 지금도 명강으로 회자된다. (...) (93)
데이터로부터 그 뜻을 읽어내는 것을 통찰이라고 한다면, 바야흐로 지식의 시대는 저물고 통찰의 시대가 온 것이다. (97)
고대 그리스는 물론이고 로마 문명을 거쳐 중세까지도 유럽은 0이라는 숫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고작 자릿수 개념의 0을 사용했을 뿐인데, '없다'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충만의 신학이라는 종교적 관점에서도 이질적인 것이었다. 인도 문명은 '무'의 개념을 7~8세기경에 발견했고, 이를 사용하여 인도-아라비아 숫자를 만들어냈다. 인도에서 만들어져 사용되다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지중해 지역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지는 데 800년 이상이 걸렸다. (103)
방대한 빅데이터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112)
직접민주주의가 궤변과 혼란을 방치한다는 것을 간파한 소크라테스는 지적 소양을 가진 귀족이 통치해야 한다고 믿었는데, 요즘 말로 하면 그는 엘리트주의자였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반대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129)
1930년대 중반에 일단의 프랑스 젊은 수학자들이 결성한 비밀결사 '부르바키'를 들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과학자를 잃은 프랑스는 대학에서 가르칠 사람이 부족한 것을 넘어 지식 전달 시스템 자체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전쟁 기간에 과학자의 특별한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과학자를 봉사시켰지만, 프랑스는 평등의 원칙을 엄격히 지켜서 군 복무를 특수 역할로 대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139~141)
살바도르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가다. 그의 1955년 대표작 '최후의 만찬'에 나타나는 여러 직선들의 길이는 황금비를 이룬다. 배경에는 큼지막한 정십이면체가 보인다. 똑같은 모양의 오각형 12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각진 축구공이 예수님 뒤에 보인다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뜻일까? (145)
'기적의 해'라는 뜻의 라틴어 표현인 아누스 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는 이렇게 평생의 성취가 집중된 해를 가리킬 때 쓰인다. 사람들은 아이작 뉴턴의 1666년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1905년을 가리켜 아누스 미라빌리스라고 부른다. (151)
얘기를 듣고 나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중요한 철학 과목을 왜 일찍부터 안 가르치고 고3이 돼서야 가르치는가?" 교사가 답했다. "문학도, 수학도, 물리도 배운 학생들이어야 위대한 철학자와 과학자들에 대해 논하고 의미 있는 토론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번지르르한 수박 겉핥기식 말싸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철학을 배우면서, 그동안 10여 년을 배운 각종 교과 내용들이 어떤 의미이고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과 깨달음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혼란스럽고 단편적이었던 지식은 유기적인 지식 체계가 된다." (174)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겠고, 해도 딱히 얻는 게 없으니 재미없는 건데, 마사이 학교는 물을 사용하고 핀란드 학교는 융합 교과를 사용하며 프랑스는 철학 교과를 사용할 뿐, 그 목표는 같은 것이었다. 배움이 자기 삶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아이에게 주는 것, 이것으로 교육의 반은 이루어진 것 아닌가? (179)
또 변화의 방향을 예측하기 힘든 시기일수록 지식 전수보다 생각의 힘을 키우는 기초체력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데에도 의견이 같았다. (202)
두 사람의 주장을 요약한다면, 코딩 교육은 단순히 프로그래밍 기법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구현하는 최적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능력에 집중해야 하며, 수학적 문맹을 벗어나야 이런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5)
현재 초 중 고등 수학 교육에서는 수학 용어의 어원이나 수학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 여러 수학 개념이 출현한 시대적 배경을 교육과정에 반영하면, 문제만 풀던 아이들은 그 개념들의 상호연계와 출현의 필연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역사나 철학 과목과 밀접하게 결합하면 최상일 것이다. (216)
프랑스 보르도에 사는 중국계 프로 기사 판후이는 영화 <알파고>에서 관찰자이자 기록자이다. 어느 날 그는 런던의 구글 딥마인드라는 기업으로부터 바둑 프로젝트와 관련한 초청을 받는다. 자신의 머리에 온갖 측정 장치를 달고 바둑을 두는 실험을 연상하며 런던으로 향하지만, 예상과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과 대국을 하게 되고, 그 대국에서 그는 전패의 치욕을 겪는다. (...) 그러던 중 딥마인드 팀은 판후이의 도움으로 알파고 알고리즘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한다. (...) (221)
뜻의 교환이 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은 통신의 혁신을 초래했다. 그래서 작은 깨달음은 큰 변화를 이끄는 단초가 된다고 했던가. (242)
1957년 10월 4일, 구소련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진입시킨다. 영화 <옥토버 스카이 October Sky>는 콜로라도 탄광촌 아이의 실화를 통해 이날의 충격을 묘사한다. 소년은 시월의 하늘을 날아 우주로 가는 스푸트니크와 인류의 우주 도전을 목도하고는 심장이 멎을 듯 감동한다. 결국, 예정된 광부의 삶을 거부하고 불가능을 넘어서 로켓과학자가 되고 만다. (246)
19세기말에 독일에서 태어난 뇌터는 현대 대수학의 건설에 지대하게 공헌했고, 대칭과 불변량에 대한 업적으로 물리학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당대의 학자들은 그녀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수학자였을 뿐 아니라 아마도 가장 위대한 여성 과학자 중 한 명이며, 마리 퀴리와 동격이라고 말했다. (248)
러시아 표트르 대제는 즉위한 뒤 18개월 동안 서유럽 각국을 순방 Grand Embassy 하고는 앞선 문물을 따라잡겠다고 결심했다. 그 자신도 배 건조법을 익혀서 강력한 러시아 해군 건설의 동력으로 삼았고, 신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해서 수도를 옮겼으며, 서유럽의 학문적 전통을 따라잡기 위해 제국학술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세계 여러 곳의 인재를 모으기 위해 후한 대우와 연구 환경을 제공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런 인재 초빙 정책이 직장을 찾던 오일러를 구원했고 수학의 역사를 바꿨다. (255)
뺄 게 아니라, 스토리를 더하고 의미의 생명력을 부여해야 한다. 수학 개념이 탄생한 시대적 상황과 역사도 가르치자. 문제수는 줄이고, 문제는 꼬지 말고 평이하게, 평가는 실수를 해도 부분 점수를 주는 서술식으로, 아이들의 좌절을 줄여줘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전가의 보도였고 세계 최고의 대학 입학률을 만들어낸 우리의 교육열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저항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262)
독서습관 927_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_박형주_2019_해나무(240902)
■ 저자: 박형주
가르치고 연구하고 글 쓰는 수학자. 우연히 알게 된 프랑스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의 수학 이론에 매료되어 전공을 물리학에서 수학으로 바꿨다. 미국 U.C. 버클리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추상적이면서 심오한 순수수학에 깊이 빠져들었다가, 순수수학이 전자공학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한 이후부터,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응용수학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953]도란도란 책모임_읽고 쓰고 토론하며 성장하는 중학생들 사례 (5) | 2024.10.20 |
---|---|
[917]일론 머스크_창업과 혁신의 아이콘 그리고 스펙트럼증후군 (10) | 2024.09.03 |
[922]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_생물학자가 진단하는 초고령 사회 (0) | 2024.08.25 |
[923]존리 새로운 10년의 시작_개인의 경제독립이 금융강국을 만든다 (0) | 2024.08.25 |
[924]50플러스의 시간_제2중년의 시대 빛나는 인생 후반전 설계도 (0) | 2024.08.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