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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915]영웅의 여정 ①_신화와 예술 그리고 개인적 경험과 배움

by bandiburi 2024. 7. 27.

"우리 모두는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각자 다른 이야기를 꿈꿉니다." 조지프 캠벨의 말처럼, 인류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신화를 만들고 공유해 왔습니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 사랑과 증오, 그리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 서사입니다.

<영웅의 여정>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입니다. 하지만 신화와 종교, 신화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독자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많아 1부와 2부로 나눠서 포스팅합니다. 

 

1. 신화와 예술

신화와 예술의 본질과 역할, 그리고 이들이 인간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다룹니다. 신화는 인간이 존재의 경이에 연결하려는 방식이며, 예술은 익명의 자아에서 창조됩니다. 예술과 신화는 강력한 사건이나 에피파니로 표현되며, 창조적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신화는 '신의 가면'이며, 세계 어디에서나 인간은 이를 통해서 스스로를 존재의 경이에 연결하기를 추구해 왔다." (23)

캠벨은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창조적 삶에 관해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을 본능적으로 준수하며 살아갔다. "진정한 예술은 익명의 자아로부터 나온다." (32)

그는 단순한 일화보다는 오히려 에피파니, 또는 강력한 사건에 더 가깝게 설명했다. 그리고 창조적 예술가들에게 발휘한 어마어마한 영향력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그는 자기 삶의 업적에 관한 이야기에 그런 에필로그를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하는 듯했다. (34)

실제로 대중은 시인 W.B. 예이츠가 "노인의 독수리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조지프 캠벨에게서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현명한 노인이었으며,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젊음의 땅에서는 가장 보기 드문 원형이었다. (35~36)

'쿤달리니' 요가에서는 초심리학적 변모의 가능성에 대한 체계화가 있습니다. 처음 세 가지 층위인 골반의 '차크라 cakras'는 단순한 고집에서 삶으로의, 성애로의, 공격성으로의 일상적인 변모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가슴의 층위에 이르러서는 영적 의식으로의 변모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바로 동정녀 출산의 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슴 중심부에 있는 연꽃의 상징입니다. (...) 그리고 더 위쪽의 '차크라'는 이 에너지를 받아서 영적 상태로 변모시킵니다. (89~90)

그러다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그 직후에 저 획기적인 작품들이 나타났습니다. 1922년에는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1924년에는 만의 <마의 산>이 발표되었던 것이죠. (...) 곧이어 두 사람은 다음에 출간한 대작에서 신화의 바다로 곧바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토마스 만은 <요셉> 연작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피네간의 경야>에서 그랬던 겁니다. (115)

 

 2. 개인적 경험과 배움

캠벨의 개인적인 경험, 학습 방법, 그리고 그의 철학을 설명합니다. 그는 책을 통해 깊이 있는 지식을 추구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배움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경험은 독서와 자기 몰입을 통해 얻은 통찰로 가득합니다.

1988년에 PBS에서 <영웅의 여정: 조지프 캠벨의 세계>와 빌 모이어스의 6부작 시리즈 <조지프 캠벨과 신화의 힘>이 전국에 방영되어 폭발적이고도 폭넓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보기에 이런 관심의 분출이야말로 조지프 캠벨이 우리 모두를 위해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셈이었다. (13)

블랙 엘크 (출처: flickr)

블랙 엘크. 백인의 눈에는 그가 말년을 보낸 파인리지 인디언 보호구역 근처에 사는 설교자에 불과했지만, 그의 동포인 오글랄라수족의 눈에 그는 '위차샤 와칸', 즉 성인 또는 샤먼이었던 인물이다. 캠벨은 <블랙 엘크가 말하다>에서 존 나이하트가 기록한 그의 이야기야말로 우리의 "영적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강하게 느꼈다. (58)

이런 조치는 인디언들이 들소를 죽일 때의 태도와는 그 방법과 느낌 모두에서 정반대였습니다. 인디언들은 오로지 그 동물이 필요할 때에만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은 그 동물을 숭배하고 존중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감사의 태도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특히나 큰 축제는 다름 아닌 주식이 되는 동물을 기리는 축제였습니다. 거기에는 자연계와의 합치라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78)

우리가 현지에 가서, 그곳에 흠뻑 빠져들고, 그곳이 우리 삶의 선율 속에 들어 있으면, 언어를 터득하게 되는 겁니다.(110)

따라서 융은 소년 시절로 돌아갔고, 자기가 돌멩이를 가지고 작은 마을을 만들며 놀기 좋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작은 땅을 구입했고, 자기 손으로 작지만 놀라운 성을 지었던 겁니다. 그게 바로 취리히 호숫가에 있는 볼링엔이었습니다. (140)

저는 우드스톡으로 가서 무려 '다섯' 해 동안 그저 읽고, 읽고, 읽고, 또 읽기만 했습니다. 일자리도 없이, 돈도 없이, 그러고 나자 저는 딱 알맞은 시기에 뭔가에 몰두하게 된 젊은이라면(비록 스스로의 관심사를 지탱할 능력을 갖기 이전이라 하더라도) 살아가는 데 꼭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저는 하루 일과를 각각 네 시간씩 네 단위로 나누었고, 그중 세 단위 동안에는 책을 읽었고, 나머지 한 단위 동안에는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144~145)

이때에는 제가 원하는 책을 읽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또 한 권의 책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여러 학생에게도 이 방법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즉 여러분에게 정말로 뭔가를 말해주는 작가를 발견하면, 그 작가가 쓴 책을 모조리 찾아 읽으라고 말입니다. 그러고 나면 단순히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읽는 방식의 독서보다 깊은 이해와 지식을 훨씬 더 많이 얻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146)

 

3. 사회적 관점과 비판

 캠벨의 사회적 비판과 그의 이상적인 삶에 대한 견해를 다룹니다. 과학과 종교의 조화, 진정한 삶의 추구, 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개인의 열정을 따르는 삶을 강조합니다.

저는 오늘날의 과학과 종교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없다고 봅니다. 종교는 반드시 당대의 과학을 받아들인 다음, 과학을 관통하여 신비에 도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갈등은 오히려 기원전 2000년의 과학과 서기 2000년의 과학 사이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서에 들어 있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수메르 신화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28~129)

제 생각에 우리의 경험은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젊은 시절에 자기가 살아갈 삶에 대한 감각을 얻었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아니야, 너는 차라리 법학을 공부하는 게 좋을 거다. 왜냐하면 법학이야 말로 돈이 되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오히려 그와 정반대입니다. (164)

제가 본 바에 따르면 어땠는지 어십니까? 그중에서도 각자의 열성을, 각자의 희열을 따른 학생들은 버젓하고도 놀라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반면 안전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한 학생들은 결국 그게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안전은커녕 그거야말로 재난이었으니까요. (169)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과 사랑에 빠진 걸까요? 우리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겁니다. 만약 이것이 투사된 누군가와 우리가 결혼했다면, 머지않아 그 사람은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207)

교수법에 대한 저의 전체 태도는 이렇습니다. 일을 배우라는 겁니다. 그건 일주일 안에 배울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 스스로를 거기에 쏟아부어야만 합니다. 그 일을 하는 데 드는 대가야 말로, 우리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데 드는 대가입니다. (236)

성배 로망스의 문제는 바로 황무지라고 알려진 것입니다. 황무지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1922)에서 그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황무지를 만물이 번성하여 꽃이 만발한 땅으로 바꿀 수 있는가?' 황무지란 진정성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땅을 말합니다. 그들은 단지 살기 위해서 일자리를 얻으며, 그것이야말로 쓰레기 같은 삶입니다. "이런 쓰레기 어디에서 삶이 나올 수 있는가?" 시인은 어디선가 이렇게 묻습니다. (248)

2부로 이어집니다. 


독서습관 915_영웅의 여정_조지프 캠벨_2020_갈라파고스(240726)


■ 조지프 캠벨

미국의 세계적인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은 어린 시절 북미대륙 원주민의 신화와 아서 왕 전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는다. 이후 컬럼비아 대학과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공부하며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새러 로렌스 대학의 문학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크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신의 가면>(전 4권)을 펴냈다. 

프린스턴 대학 볼링엔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이기도 했던 캠벨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와 인생> <신화의 이미지> <신화의 세계>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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