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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907] 파견자들_태린과 범람체 그리고 공존의 세상

by bandiburi 2024. 7. 2.

소설가 김초엽의 <파견자들>을 읽었다. 이 소설은 인간이 지구를 범람체들에게 빼앗기고 지하에서 생활하는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 사람들은 범람체들에게 점령당한 지상의 세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주인공 태린에게도 어린 시절 범람체가 침범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몸속의 범람체와 갈등하지 않고 잘 지내며 생존한다. 주인공 태린은 인간과 범람체의 성질을 모두 가진 존재다. 양쪽의 속성을 모두 가진 자들을 위한 중간지대를 만들어가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저자는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일까? 저자는 상상력을 발휘해 독특한 배경과 상황을 설정했다. 이 소설의 시사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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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공존과 상생이다.

최근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는 기사가 많이 보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태린이 범람체와 갈등하지 않고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인간과 자연, 혹은 범람체와 같은 다른 존재들과의 공존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자연과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테린의 법적 보호자이자 어린 태린과 선오를 혼자 키워낸 '아버지'인 자스완은 원래 유능한 파견자였다고 한다. 동생과 관련된 명령 때문에 상부에 강경하게 맞서는 바람에 파면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27)

"난 발현자들을 많이 봐왔어. 범람체에 의한 광증은 확실히 달라. 그건 자아가 해체되는 과정이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또 누구인지 잊어버리지. 자신의 몸과 정신을 스스로의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결국은 과거와 현재를, 자전적 서사를 잃어버리는 거야." (61)

오래전 태린은 뉴로브릭 시술을 시도했었다. 보통은 일곱 살쯤 받는 것을, 열두 살이 넘어서야 받았고 당연한 수순처럼 적응에 실패했다. (63)

 

둘째, 이해와 화해다. 

2024년 현대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과 분열은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와 화해의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상호 이해와 대화가 필요하다. 주인공 태린이 범람체와의 갈등을 피하고 중간지대를 설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존재들 간에도 이해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린이 동굴 안에서 느낀 쏠은 단순한 두뇌 보조 장치를 넘어서, 태린의 감각과 인지 자체를 바꾸는 능력을 지닌 것 같았다. 쏠이 처음 나타났을 때도 태린에게 환청이나 환각을 일으키긴 했지만, 동굴 안에서 태린은 정말 순간적으로 '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104~105)

"범람체는 인간을 미치게 한다. 이성을 집어삼켜 광기와 죽음에 빠뜨린다..." (115)

태린도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쏠이 태린을 조종하고 있었다.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두려웠다. 끔찍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다. (126)

"우리가 뺏긴 색들이 다 이곳 지상에 있어. 처음 이 풍경을 봤을 때 나는 분해서 잠을 잘 수 없었다니까. 이 아름다운 행성이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니라 저들의 것이라니." (158)

 

마지막으로 변화와 적응의 모습이다.

인공지능, ChatGPT와 같이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 환경 속에서 변화와 적응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맞춰 개인과 사회는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소설에서 인간들이 지하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주인공 태린이 범람체와의 공존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모습은 변화와 적응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에서 개인과 사회가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자스완을 너무 닮았으니까. 십 년 가까이 보았던 눈과 그토록 닮아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스벤, 당신은 스벤이에요. 그렇죠?" (219)

범람체들은 여러모로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그것들은 균사 하나하나를 두고 보았을 때는 지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처럼, 미생물 단위에서의 기본적인 반응과 행동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빼곡한 집단 연결망을 이루면 지성체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매우 복잡한 미로 실험을 통과한 적도 있었다. (291)

그리고 솔은 스스로를 죽였다. 범람체의 본능을 거스르는 방식이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억압되어 있던 감각들이, 쏠이 그 순간에 느꼈던 고통과 두려움이 아주 짧은 시간 태린에게 밀려들었다. 쏠은 그 고통을 견디고 스스로 사라지기를 선택했다. 태린의 자아가 찢어져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374)



이와 같이, 김초엽의 소설 <파견자들>은 공존과 상생, 이해와 화해, 변화와 적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이전에 김초엽의 <사이보그가 되다>를 읽었던 흔적을 찾았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535

 

[590]사이보그가 되다_장애인의 삶을 중심에 둔 과학기술

청각장애를 가진 김초엽과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이 함께 지은 책 를 보며 장애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 라는 제목만으로는 SF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막상 ‘사이보그

bandiburi-life.tistory.com

 


독서습관 907_파견자들_김초엽_2023_퍼블리온(240703)


■ 저자: 김초엽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 및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방금 떠나온 세계> <행성어서점>,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중편소설 <므레모사>,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공저), 에세이 <책과 우연들> 등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 젊은작가상,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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