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파농의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읽었다. 파농이 골수암 진단을 받고 쓴 마지막 책이었다. 자신의 모국인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로 있었다. 파농은 지배국인 프랑스와 피지배국인 알제리를 모두 경험하며 무엇이 진정한 자유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이 책의 시사점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문장과 함께 포스팅한다.
첫째, 식민주의의 폭력성과 그 영향이다.
파농은 식민주의가 단순히 경제적 착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체제임을 강조한다. 그는 식민지 주민들이 겪는 심리적, 신체적 폭력을 상세히 묘사하며, 이러한 폭력이 어떻게 그들의 자아와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설명한다. 이 책은 식민주의가 남긴 상처와 그로 인한 사회적, 심리적 후유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1960년 12월, 튀니스에 체류하고 있던 때 파농은 골수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1년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2)
요컨대 그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끌어간 한 마디, "내 몸이여, 나를 언제나 의문을 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오!"라는 절규는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의 정신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언어와 출신지의 경계를 넘어서! (21)
원주민들은 마치 아이가 어머니를 사랑하듯이 모국의 시민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유럽의 지배층은 원주민 지배층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망한 젊은이들을 발탁하여 붉게 달궈진 낙철로 그들의 이마에 서구 문화의 낙인을 찍고, 그들의 입에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의 미사여구를 가득 채워 재갈을 물렸다. 그들은 모국에 잠시 체재하는 동안 하얗게 표백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23)
당신은 우리가 착취자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가 '신대륙'의 귀금속과 자원, 그리고 석유에 먼저 손을 댔다는 것, 우리가 그들을 과거로 돌려보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훌륭한 성과도 없지는 않다. 우리의 궁전, 우리의 성당, 우리의 대산업도시가 그 성과다. 게다가 식민지 시장은 경기 침체의 위협을 완화시켜주거나 그 타격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부자들이 우글거리는 유럽은 국민들에게 정당한 인간적 지위를 부여한다. 우리의 관점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곧 식민주의의 공범자로 산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식민지적 착취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름지고 창백한 대륙은 파농이 올바르게 표현하듯이 자기도취에 빠져버린다. (45)
탈식민화의 적나라한 진실은 우리에게 섬뜩한 총탄과 피 묻은 칼을 연상시킨다. 꼴찌가 곧 첫째가 된다면, 적대적인 두 세력 간의 처절한 투쟁을 거쳐야만 탈식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57)
둘째, 탈식민화 과정의 복잡성과 도전이다.
파농은 탈식민화가 단순히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복잡한 과정임을 강조한다. 그는 탈식민화가 폭력적인 투쟁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이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파농의 이론은 현대의 여러 독립운동과 사회적 혁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농노는 본질적으로 기사와 다르지만, 이 신분상의 차이를 정당화하려면 신권(神權)의 개념이 개입된다. 다른 나라에서 식민지로 오는 외국인은 총포를 바탕으로 자신의 지배를 강요한다. 그러나 이주민은 이주에 성공하고 재산을 소유해도 여전히 외국인이다. 그를 지배계급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공장이나 토지의 소유도 아니고 은행 잔고도 아니다. 지배계급은 무엇보다도 다른 곳에서 온 사람, 원래의 주민들과는 다른 사람, 즉 '타자'다. (60~61)
식민지 세계는 마니교(선과 악의 뚜렷한 이분법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옮긴이)의 세계다. 이주민은 원주민의 공간을 물리적으로, 즉 군대와 경찰력의 도움으로 제한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마치 식민지적 착취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이주민은 원주민을 악의 본질로 생각한다. (61)
자유를 위한 투쟁을 치렀고,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오랜 기간의 무장투쟁으로 지식인들의 퇴보적인 흐름을 민중에 뿌리박은 전진적인 흐름으로 촉진시킨 경험을 가진 식민지 나라에서는 지식인들이 부르주아 식민주의적 환경에서 구축한 상부구조가 철저하게 파괴된다. 강단의 학자들이 설명하는 자기도취적 대화에 빠진 식민주의 부르주아지는 인간이 아무리 큰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본질은 영원히 불변한다는 생각을 식민지 지식인들의 뇌리에 깊이 심어주었다. 물론 그 본질이란 서구의 본질을 가리킨다. (67)
이주민은 역사를 만들 뿐 아니라 그 역할을 의식한다. 또한 모국의 역사와 늘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모국의 연장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이주민이 기록하는 역사는 그가 약탈하는 그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자신이 원래 속한 모국이 그 나라를 침략하고 닦달하고 빼앗아간 역사다. (72)
이들은 '노동자의 정부'라는 추상적인 구호를 가지고 투쟁하지만, 자기들 나라에서 앞세워야 할 구호는 민족주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잊는다. 원주민 지식인은 자신의 공격성을 식민지 세계에 동화되고자 하는 은근한 욕망으로 은폐한다. 그리고 그 공격성을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 (81)
민족 지도자들은 국제 여론이 서구 언론에 의해 주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서방의 기자가 우리에게 질문을 할 때 우리를 돕기 위해서인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알제리 전쟁에서는 가장 자유를 존중하는 프랑스 기자들조차 내내 모호한 용어로 우리의 투쟁을 보도했다. 이에 관해 우리가 비난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객관적이었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주민에게 객관성이란 언제나 불리한 것을 의미한다. (100)
민중은 식민지 시대에는 억압에 맞서 싸우라는 요구를 받고, 민족해방을 이룬 뒤에는 빈곤 문맹 저개발에 맞서 싸우라는 요구를 받는다.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민중은 삶이 곧 끊임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117)
셋째, 정신적 해방과 새로운 인간성의 창조다.
파농은 식민지 주민들이 정신적으로 해방되어야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식민주의가 주입한 열등감과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피지배국의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독립을 넘어서, 문화적, 정신적 독립을 의미한다. 파농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며, 특히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철저히 민중 전체를 지향하고 인간은 재산보다 귀중한 존재라는 원칙에 입각한 사회주의 체제는 우리가 더 신속하고 더 조화롭게 전진할 수 있도록 해주며, 민족 전체를 경멸하고 멸시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경제와 정치를 장악하는 사회로 가지 않게 해준다. (123)
(...) 이 지원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즉 식민지 민족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이며, 자본주의 열강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126)
그러나 이들 프롤레타리아는 비록 당의 간행물을 읽고 당의 선전을 이해하지만, 민족해방을 향한 격렬한 투쟁에 동참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에 충실히 복종하는 경우가 드물다. 식민지의 프롤레타리아는 식민지 체제로부터 커다란 수혜를 입은 계급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장 초기 단계의 도시 프롤레타리아는 비교적 특권적 지위에 속한다.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노동계급이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나, 결국에는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식민지 나라의 노동계급은 모든 것을 잃는다. (134)
식민주의의 낡은 전통을 등에 업은 부르주아지는 군사력과 경찰력을 이용하는 반면, 노동조합은 대중 집회를 조직하고 수만 명의 군중을 동원한다. 이렇게 부르주아지와 노동자들이 법석을 떠는 상황에서 농민들은 사태를 그저 지켜보며 이득이나 챙기자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결국 양자는 농민들을 균형추로 여기고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48)
저개발국의 민족의식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 전통적인 약점은 단지 식민지 체제가 식민지 민중을 억압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민족 부르주아지의 지적인 나태함, 정신적 빈곤, 뿌리깊은 세계주의적 사고방식의 소산이기도 하다. (176)
민족 부르주아지는 서구 부르주아지 기업인들의 역할을 떠맡은 것에 크게 만족하고 온갖 거드름을 떨면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 수지맞는 역할, 싸구려 기능, 야비한 사고방식, 야망의 부재는 민족 부르주아지에게 부르주아지로서의 역사적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새로운 세계를 발명하고 발견한 민족 부르주아지 특유의 역동적이고 선구자적인 특성이 없는 것이다. 식민지 나라의 부르주아지를 지배하는 것은 나태한 정신이다. 이는 민족 부르주아지가 선배격인 서구 부르주아지와 자신들을 동일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179)
이와 같이,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식민주의의 폭력성과 그 영향, 탈식민화 과정의 복잡성과 도전, 그리고 정신적 해방과 새로운 인간성의 창조라는 세 가지 주요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시사점들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식민주의는 나라 전체를 종합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천연자원을 캐내거나 모국의 공업적 필요에 부응하는 수출품에만 주력한다. 그 결과 식민지의 특정한 지역만 상대적으로 부유해지고, 나머지 지역은 저개발과 빈곤에 시달리게 된다. (185~186)
평생 정치 활동을 하면서 애국에 헌신해온 지도자는 민중과 탐욕스러운 부르주아지 사이의 칸막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부르주아지를 위한 방패막이의 구실을 하면서 그들의 오만과 속물근성, 근본적인 부도덕성을 눈감아주는 것이다. 그는 부르주아지를 도와주면서도 자신의 책동을 보이지 않도록 숨김으로써 신비화를 유도하고 대중을 현혹하는 앞잡이가 된다. (194~195)
독재는 부르주아 계급이 저개발국을 통치하는 방식을 나타내는데, 이들은 처음에 민중의 도움을 받지만 이내 민중에 반대하는 흐름으로 나아간다. 당이 정보 기구로 점차 전환되는 것은 정부가 점점 더 수세를 취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구심점이 없는 대중은 속임수나 경찰력을 이용한 공포로써 늘 억눌러야 하는 맹목적인 세력으로 간주된다. (208)
그보다 우리는 민중을 향상시키고 그들의 두뇌를 계발하여 생각을 불어넣고, 그들을 진정한 인간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223)
오히려 군대는 시민 교육과 정치 교육의 학교가 될 수 있다. 성인 국민 병사는 용병과는 달리 나라를 수호하는 시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는 아무리 위대한 지휘관을 받들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그 지휘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복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27)
식민주의는 원주민을 장악하고 원주민의 두뇌에서 온갖 형식과 내용을 제거하는 데만 만족하지 않는다. 일종의 왜곡된 논리에 의해 식민주의는 피억압 민중의 과거를 왜곡하고 훼손하고 파괴한다. 이렇게 식민지 이전의 역사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오늘날 논리적 중요성을 지닌다. (239)
이 시기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억압자도 피억압 민족과 문화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억압자는 식민지 주민들이 식민지 문화 - 이미 본능적인 행동양식으로 변해버렸다 - 의 저열함을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또한 식민지 '민족'이란 비현실적인 관념이며, 극단적으로는 식민지 주민의 생물학적 구조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267~268)
(...) 지식인들은 점령국의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기회만 있으면 자기 민족의 문화를 깎아내리는 데 여념이 없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민족의 문화를 열정적이지만 매우 비생산적이고 도피적인 방식으로 보존하는 데 만족한다.
(...) 식민지 지배 하에서의 민족문화는 조직적으로 파괴하려는 세력과 싸우는 문화다. 그러므로 그것은 금세 비밀 문화가 된다. 이 문화가 비밀스럽다는 점은 점령국이 전통에 대한 집착을 민족 정신에 충성하고 모국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려는 의도로 해석하는 것으로도 즉각 확인된다. (268)
원주민은 공예가, 무용가, 음악가, 작가, 만담꾼의 목적과 활력을 되찾아서 자신의 인지력을 쇄신한다. 그의 세계는 불운에서 벗어난다. 이리하여 불가피한 충돌에 필요한 조건이 점차 숙성된다. (...) 자주 저지르지만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실수가 있다. 그것은 식민지 지배의 틀 내에서 토착 문화의 표현을 찾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는 행위다. 이런 실수 때문에 우리는 언뜻 보면 역설적인 명제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식민지 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며 단순한 민족주의가 민족문화의 가장 열렬하고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우선 민족의 표현이며, 민족의 취향, 금기, 성향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274~275)
식민주의는 타인에 대한 체계적인 부정이며 타인의 인간적 속성 전부를 부인하려는 광포한 결단이기 때문에, 피지배 민중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실제로 나는 누구인가?"를 자문자답하도록 강요한다. (281~282)
자신의 논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캐러더스 박사는 생생한 비유를 제시한다. 정상적인 아프리카인은 '전두엽 절제 수술을 받은 유럽인'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도 알다시피 앵글로색슨 학파는 두뇌의 중요한 부분을 절단함으로써 심각한 정신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뒤 이 방법은 인성을 크게 손상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폐기되었다. (341)
결국 알제리인의 범죄성, 충동성, 살인의 폭력성은 신경체계가 잘못 조직된 결과도, 독특한 성격 때문도 아니라 식민지 상황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알제리 군인들이 이 문제를 토론한다는 것, 식민주의가 자시들에게 퍼뜨린 믿음을 의문시하는 것, 누구나 자신이 이웃을 위한 은폐막이라는 것을 이해하며, 실제로 이웃과 충돌을 빚었을 때는 자살까지 한다는 것, 이 모든 사실들은 혁명적 양심에 원초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348)
독립은 무당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해방된 인간, 바꿔 말해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가능케 하는 모든 물질적 수단의 진정한 주인의 존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349)
독서습관 906_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_프란츠 파농_2004_그린비(240701)
■ 저자: 프란츠 파농
프란츠 파농은 1925년 서인도제도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흑인으로 태어났다. 제2차 대전 중 전쟁에 지원하여 각지에서 파시즘 세력과의 전투에 참여했던 파농은 전후 프랑스 리용대학에서 정신병리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취득했다. 1952년 파농은 그의 유명한 저작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출간하고 1953년 11월에는 알제리의 블리다 주앙빌 정신병원으로 부임하여 근무했다. 그러나 다음 해 알제리 독립전쟁이 발발하면서 파농의 인생은 결정적인 전기를 맞이했다. 파농은 전쟁 초기에는 주로 비밀리에 민족해방전선(FLN)의 활동을 지원했지만 1957년 이후에는 병원을 그만두고 전면적으로 FLN에 몸을 던졌다. 파농은 그후 FLN의 기관지 <엘 무자히드>에 정력적으로 기고하는 등 알제리 혁명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했고, 1960년에는 임시혁명정부에 의해서 가나 대사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1961년에 백혈병과 싸우면서도 이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10주 만에 집필했던 그는 이 책이 간행되고 난 며칠 뒤인 1961년 12월 6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전세계의 민권운동, 탈식민주의 운동, 흑인의식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저서로는 이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외에 <검은 피부, 하얀 가면>(1952), <알제리혁명 기원 5년>(1959)이 있고 사후 <엘 무자히드>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아프리카 혁명을 위하여>(1964)가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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