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를 읽으며 우리나라를 생각했습니다. 진보와 좌파라고 하면 정치적인 선입견이 개입되기 쉽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한 사람이 소중함을 공유하는 사회로 가자는 점입니다.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아서 두 번에 나눠서 포스팅합니다. 전반부에서 세 가지 메시지를 정리하며 관련된 문장을 인용합니다.
첫째,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 문제
김규항은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 문제를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는 니겔 로스펠스의 『동물원의 탄생』을 인용하여, 동물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겐베크가 그린란드와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을 유럽으로 데려와 전시한 사례를 통해, 인간이 같은 인간들의 공동체마저 서슴없이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1980년 광주와 최근의 용산참사와 같은 사건들로 이어지며, 사회구조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김규항은 좌파적 세계관이 세상을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계급으로 나누어 보는 데서 출발한다고 설명하며, 이건희 씨와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동족이냐는 문제의식을 좌파적인 문제의식으로 봅니다. 반면, 우파적 관점은 시종일관 세상을 민족이나 국가로 나누어 보게 합니다. 그는 계급이라는 말을 쓸모없는 말로 만들어버리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사회적 억울함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더 못한 사람들의 문제를 염두에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니겔 로스펠스가 쓴 <동물원의 탄생>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동물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겐베크는 엽기적이게도 그린란드와 태평양 군도의 원주민들까지 유럽으로 데려와 그들을 전시했다. 에스키모인, 실론인, 아프리카인 등이 전시되었는데, 관객의 관음증을 자극해 전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 이처럼 인간은 동물의 생태계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인간들의 공동체마저 서슴없이 파괴한다. 최근의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19880년 광주가 그랬고, 작년에 일어난 용산참사가 그랬다. 사회구조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올 만한 사건이었다. 마치 1887년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p. 8)
"좌파적 세계관은 세상을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계급으로 나누어 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건희 씨와 내 아버지가 어떻게 동족이냐, 이런 문제의식을 좌파적인 문제의식이라 볼 수 있죠. 반면에 우파적 관점은 시종일관 세상을 민족이나 국가로 나누어 보게 합니다." (p. 55)
"옛날엔 계급이라고 하면 잡아 죽이면 되었는데 이젠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어서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러니 계급이라는 말을 쓸모없는 말, 사실과는 무관한 어떤 편협한 말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p. 59)
사실 당사자들에겐 사회적 억울함이 있겠죠. 그런데 그런 나름의 억울함이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얻으려면 더 못한 사람들의 문제를 염두에 두는 태도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억울함이나 내 손해만 호소하는 건 추악한 집단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77)
좌파들은 계급에서 출발하지만 계급으로 단순하게 포획되지 않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잖아요. 여성 문제나 소수자 문제, 문화적 문제를 들 수 있는데요. 운동 진영에서는 그들을 비계급 좌파라고 하죠. (115)
둘째, 교육과 문화 비판
김규항은 현대 사회의 교육과 문화에 대한 비판을 제기합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이 완전한 공산품처럼 키워지고 있으며, 경쟁력이나 판매력 외에는 교육이라는 것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자본의 독재에서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문제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계발과 경쟁에 몰두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몇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단일한 취향과 유행은 사람들이 집단에 속해 있는 것을 편안해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또한, 문화와 예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질 낮은 문화상품이 언제나 존재해왔으며, 인텔리들이 그런 류의 문화상품을 도마에 올리지 않는 현실을 지적합니다.
"사람들이 경제개발 독재 시대에 워낙 세뇌가 되었어요. 인생에 대단한 의미를 두고,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늘 열심히 노력하고, 하여튼 좀 공격적으로 살아가는 걸 미덕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인생을 끊임없이 고단하게 만듭니다. 만날 '보다 나은 미래'만 생각하지 '오늘'이 없어요. 인생은 오늘의 연속이잖아요." (p. 21)
"앞서 말했지만 요즘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이 완전한 공산품처럼 키워지고 있어요. 경쟁력이나 판매력 외에는 교육이라는 게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예요." (p. 35)
국민 영웅, 국민 스타라는 말을 듣는 유럽의 운동선수들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의 모든 성원들이 우리처럼 이렇게 하나로 열광하진 않죠. 한국이나 중국, 몇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취향이 단일하고 유행도 단일하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집단에 속해 있는 걸 편안해한다는 뜻입니다. (44)
"자본도 무한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어요. 민주화이 기쁨에 취한 채 군사독재에서 벗어났는데, 이제는 자본의 독재에서 살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계발을 하고 경쟁에 몰두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양극화니 비정규화니 88만 원 세대니 하는 건 다 부산물들이고요." (p. 54)
켄 로치Kenneth Loach 같은 사회파 감독이 보여주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변함없는 신념, 사회 변화에 계속 조응하는 그런 심념과는 다른 차원인 것이죠. (71)
심 감독은 지식인도 아니고 예술영화 감독도 아닙니다. 문화를 앞세운 비즈니스는 언제나 있어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질 낮은 문화상품도 언제나 있어왔죠. 인텔리들이 그런 류의 문화상품을 도마에 올리느냐, 전혀 그렇지 않아요(80)
한 음악가의 음악적 태도나 방향이나 유형이 훌륭하다고 해서, 올바르다고 해서 그 음악을 좋아하거나 듣는 건 아니잖아요. 단지 듣기 좋은 음악을 즐기는 거죠. (96~97)
셋째, 종교와 신앙의 이권 싸움
김규항은 종교와 신앙의 이권 싸움을 비판합니다. 그는 신앙 논쟁의 실체가 이권 싸움이라고 주장하며, 종교 역사를 보면 순진하게 동원되는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지, 실제 그것을 주도하고 부추기는 배후 세력은 이권 때문에 싸운다고 설명합니다.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정교분리 논쟁 등 모든 종교적 갈등이 이권 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 교회도 마찬가지로, 신앙이나 신학 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들 이권에 직접 관계가 없으면 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김규항은 함석헌, 김재준, 문익환, 고정희와 같은 인물들이 한국 주류 교회에서 밀려난 이유를 설명하며, 이들이 예수의 역동성을 체현한 중요한 인물들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기도나 명상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습관화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고 생각하며, 사회적 억울함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더 못한 사람들의 문제를 염두에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유승준에 대한 분노가 체제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유승준이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계급적 분노의 하수구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신앙 논쟁이라는 게 그 실체는 이권 싸움이거든요. 종교 역사를 보면 늘 그래요. 순진하게 동원되는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지, 실제 그것을 주도하고 부추기는 배후 세력은 이권 때문에 하는 거죠. 십자군전쟁이든 마녀사냥이든 정교분리 논쟁이든 다 그랬습니다. (...) 오늘날 한국의 보수 교회도 마찬가지죠. 신앙이나 신학 논쟁을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들 이권에 직접 관계가 없으면 별 관심이 없어요." (p. 25)
"함석헌, 김재준, 문익환, 고정희는 한국 주류 교회에서 밀려난 분들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런 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국 기독교에서, 아니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분들이죠. 예수의 역동성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기독교나 교회의 범주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지를 체현한 분들이죠." (p. 31)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기도든 명상이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습관화 하는 게 여러 모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p. 73)
유승준에 대한 분노는 체제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죠. 유승준이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계급적 분노의 하수구 노릇을 한 거잖습니까. (...) 그러나 유승준 씨는 안가도 되는 사람이었어요. 자원해서 간다고 하면 '저 친구 특이하네' 그 정도인 거죠. 안 가도 되는 사람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103)
종교개혁은 실제로는 왕과 귀족보다 힘이 세어져버린 부르주아들이 왕과 귀족으로부터 세상을 접수하는 신호탄이었어요. 종교와 신앙이 당시 삶의 중심이었는데, 왕과 귀족의 교회를 무시해버리고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담은 새로운 교회를 만든 거예요. 그게 시민혁명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223)
바리사이들은 이스라엘 전체로 보면 개혁적인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그 개혁 하층 인민들의 삶은 배제되어 있었죠. 인민들 입장에서 보자면, 로마 제국주의에 수탈당하나 해방된 조국의 지배계급에 수탈당하나 다를 게 없잖아요. (225)
진정한 비폭력주의자는 언제나 폭력의 현장에 있었어요. 그리고 언제나 가장 폭력적으로 희생당하죠. 예수도 간디도, 제가 보기에 논평하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비폭력주의는 언제나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에 봉사할 뿐입니다. (231)
오늘의 주류 기독교는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예수를 신으로 결정하면서 그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회의는 콘스탄티누스가 자기의 정치적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 일종의 쇼였어요. 기독교는 예수를 이용해서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욕망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원죄를 말하고 있는데요. 기독교야말로 원죄를 가지고 있죠. (245)
한국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이 문제를 분명히 해결했어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으로 교회 밖의 구원을 인정했어요. '우리가 볼 때는 교회가 하느님과 관계하는 유일하고 완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걸 겸손하게 인정한 겁니다. (246)
이러한 주제들은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김규항의 메시지는 사회적 불평등과 교육의 문제, 그리고 종교와 신앙의 이권 싸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379
독서습관 896_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_김규항&지승호_알마(240606)
■ 저자: 김규항
전라도에서 태어났으며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떠돌며 지역갈등이나 계급구조, 대중의 습속 따위의 사회문제에 많은 정서적 자극을 받았다. 1980년대 초 한신대를 다니면서 나름의 사회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예수를 만났다.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서울영상집단과 민중문화운동연합에서 활동하였고, 1998년부터 <씨네 21>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2000년 홍세화, 진중권 들과 함께 사회문화 비평지 <아웃사이더>를 만들어 편집주간으로 일하였으며, 2003년에는 어린이 인문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만들어 현재까지 발행인을 맡고 있다.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자전거 타기, 타악기 연주를 좋아한다.
2010년 3월 <한겨레21>이 정치인과 사회인사 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좌파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념이 가장 높은 사람으로 나타난 바 있다.
지은 책으로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 <예수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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