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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94]노동 없는 미래_노동의 재정의와 인간의 본질 가치의 회복 위한 기본소득 필요성

by bandiburi 2024. 5. 31.

팀 던럽의 <노동 없는 미래>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이 책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세 가지로 포스팅한다.

 

첫째, 노동의 재정의와 인간의 본질적 가치 회복이다.

팀 던럽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상황에서, 노동의 개념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시장 가치로 치환되면서,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는 상실되었다. 던럽은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고, 노동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자아실현과 사회적 기여의 수단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즉,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하는 시대에 노동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정부나 기업들이 계속 일이 우리 삶의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또 이른바 사회 엘리트층이 '탈 노동' 후의 미래를 아주 두려워하는 데는 이런 숨겨진 동기가 있는 것이다. 일이 없는 세상은 통치하기 쉬운 국민을 만들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27)

한나 아렌트는 <인간 조건>에서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노예들을 활용해 어떻게 노동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졌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고대 사회에서 노동과 일은 노예들이나 하는 짓이어서 경멸의 대상이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현대 역사학자들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대인들은 다른 방법을 모색해봤으며, 결국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모든 직업이 갖고 있는 천한 속성 때문에 노예를 소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8)

신자유주의가 인간의 모든 행동에 시장 가치를 적용해, 인간의 모든 행동을 보다 본질적인 그 어떤 가치가 아닌 시장 가치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래서 영국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냉소가는 모든 것의 가격은 알면서 그 어떤 가치도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한 것이다. (34)

고용주들은 늘 자신들이 제시하는 임시직 일자리는 노동 시장에 '유연성'을 주기 위해 생겨나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지지하는 유연성이란 대개 일방통행적인 것으로, 전적으로 고용주들에게만 유리하다. 이런 유연성은 노동자 입장에서 볼 경우 대개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경제적인 필요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의 어떤 조건에서건 일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건 유연성보다는 착취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189)

 

둘째, 노동 시간의 감소와 삶의 질 향상이 병행되야 한다. 

던럽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함으로써 노동 시간이 감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노동자들이 임금노동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여유를 갖고 사색을 즐기며,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던럽은 이러한 변화가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노동 시간의 감소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간이 더 많은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칼 마르크스는 재산을 가진 소유주들과 재산이 없는 노동자들 입장에서의 생산 수단과의 관계에 관심을 쏟은 데 반해, 막스 베버는 고용주와 고용인들 입장에서의 의식 발달에 관심을 쏟았다." (42)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건 신자유주의 철학에 맞지 않으며,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자율적인 자세로 늘 자신 있게 우리 자신을 계발하고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 받는다. 그리고 이 같은 자기 계발 속에는 거의 늘 일종의 소비(더 나은 집이나 자동차를 사는 일이든 아니면 더 많은 교육을 받는 일이든)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71)

가이 스탠딩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워낙 설득력 있었음에도 유연성에 대한 그들의 이런 접근방식은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정을 위험과 불안 속에 밀어 넣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런 종류의 '유연성'에 노출되는 새로운 계급의 노동자 개념을 새로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precarious(불안정한)와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가 합성된 프레카리아트(precariat)였다. (75)

"임금 노동에 대한 의존도에서 탈피함으로써, 노동자들은 노동 시장에서 큰 힘을 갖게 되어, 얼마나 많은 노동을 제공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노동자 계급의 힘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더 커진다. 노동자들은 더는 파업 기간 중의 급여 삭감이나 파업 자금 등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파업 등 단체 행동에 나서는 게 더 쉬워진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시간도 자기 생각에 맞춰 조정할 수 있고, 자유 시간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거나 정치에 참여하는 등의 일에 쓸 수 있다. 여유를 갖고 사색을 즐길 수도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끝없는 압력들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 일과 실직을 둘러싼 불안감 또한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사회 안전망 덕에 줄어들 수 있다. 게다가 보편적 기본소득은 취업한 사람들은 물론 실직한 사람들, 능력 이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이주 노동자들, 임시직 노동자들, 장애인들 등, 모든 사람의 필요에도 부합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모든 집단의 공동 관심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192)

 

셋째, 기본소득과 사회 안전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던럽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하는 노동 시장에서, 국가가 사회 안전망으로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불안정을 줄이고, 사회적 평등을 증진시킬 수 있다. 이는 노동 없는 미래에서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방안이다. 요약하자면, 기본소득과 같은 사회 안전망은 노동 없는 미래에서 경제적 불안정을 줄이고, 사회적 평등을 증진시키는 중요한 방안이다.

평가 시스템은 품질을 평가하기 위한 신뢰할만한 방법이라기보다는, 자기 직원들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긱 경제 기업들은 대개 노동자들에게 의료 보험, 휴일 급여, 병가, 최저 임금 등은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평가 시스템을 활용해 직원들에 대한 나름의 관리 표준을 유지해 노동자들이 이에 저항할 수 없게 만든다. (145~146)

기본소득은 단순히 임금 체계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임금 체계 안에 편입시키는 메커니즘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물질적 지원을 해주려는 시도이다. 사실 일부 사람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은 기술적 실업의 위험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기술적 실업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는 방법이라는 데 그 매력이 있다. (175)

보편적 기본소득제도는 개혁적인 경제 제도로 보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그 속에 감춰진 정치적 함의는 아주 중요하다. 그 제도는 불안정성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노동을 인정하며, 계급 권력을 더 쉽게 집결시키고, 지역 사회와 가정을 조직화하는 방법을 실험해 볼 여지를 확대해주며...... 완전 실업은 가정과 공식적 경제 사이에서 노동의 성별 분업에 의존하지 않게 해주고, 노동자들이 자기 삶에 대한 자주성을 갖게 해주는 등 다른 여러 장점도 있다. 이 모든 이유 때문에, 완전 고용에 대한 전통적인 사회 민주적 요구는 완전 실업에 대한 미래 지향적 요구로 바뀌어야 한다. (185)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배불리 보내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자기 대신 물고기 잡는 일을 해줄 로봇을 주면, 그 사람은 보다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될 것이다. (242)

 

이와 같은 세 가지 메시지를 되새기며, <노동 없는 미래>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방향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만일 노동자에게 보편적인 기본소득형태로 들어오는 보장된 소득이 별도로 있을 경우, 고용주들이 임시직 일을 제시하면서 보이는 '하든가 말든가' 식의 태도는 아마도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닉 스르니첵은 이런 말을 했다. 
"기본소득은 프롤레타리아에게 일자리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188)

닉 스르니첵과 캐시 위크스 두 사람 모두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완전 실업' 또는 '탈 노동'의 미래를 만드는 방법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가 기본소득제도야마로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나타나게 될 일자리의 상실과 지속적인 실업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기술을 소유하고 좌지우지하는 엘리트들뿐 아니라 대부분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실에 대처할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195~196)

더 이상 유급 고용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뒷받침되는 세상은 이를테면 보다 활발한 사회 참여와 지역 사회 참여도 가능케 해주는 세상이 될 것이다. (221~222)

그의 책 제목 <사람에게 물고기를 줘라>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제임스 퍼거슨은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배부르게 해줄 것이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다.'라는 진부한 격언을 들먹이는 개발 기관이나 정부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 격언은 가난 문제는 근본적으로 생산 문제(충분한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이며, 더 많은 사람을 생산적인 노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훈련을 통해 더 많은 어부를 추가해) 해결책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은근히 분배(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의 중요성을 비웃고, 또 배고픈 사람을 생산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이(단순히 물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잡음으로써) 지속성 있는 해결책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226~227)

직업윤리라는 것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부가 굼뜨고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괴물이어서 시장의 자연스러운 기능들을 둔화시키고 방해한다는 믿음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통제의 신화이며,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장화를 촉진해왔다. 신자유주의의 큰 거짓말은 작은 국가를 원한다는 것이다. 실은 고분고분한 국가를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으로 볼 때, 그것은 할 만한 일이 있든 없든, 사람들에게 일할 것을 강요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235)

신자유주의자들은 어떻게든 국가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려 하며, 민간 기업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은근히 국가의 힘을 이용하려 든다. 예를 들어 구글 같은 기업들은 무인 자동차나 드론 같은 첨단 기술 개발을 통해 미래를 바꾸려 할뿐 아니라, 정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새로운 장난감들이 제대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될 법률을 제정하거나 인프라를 구축하게 하려고 적극적인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239)


독서습관 894_노동 없는 미래_팀 던럽_2017_비즈니스맵(240531)


■ 저자: 팀 던럽

정치 및 철학 박사이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혁명 초창기에 관해 다양한 각도에서 흥미롭게 분석한 <뉴 프론트 페이지: 뉴 미디어와 청중의 부상(The New Front Page: New media and the rise of the audience)>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 미국과 호주에서 정책과 미디어, 일의 미래 등에 관해 광범위한 저술 및 방송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호주 멜버른에서 아내 타냐, 아들 노아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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