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팀 마샬의 <지리의 힘 2>를 읽었다. 국가가 바다와 산맥, 사막 등 지리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며 독자에게 통찰을 주는 책이다.
<지리의 힘 2>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그리스, 터키, 사헬, 에티오피아, 스페인 그리고 우주를 사례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팀 마샬은 지리적 요인이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하며, 독자들에게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주요 시사점을 세 가지로 포스팅한다.
석유가 아니라 물이 혼란을 빚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아프리카의 급수탑인 에티오피아는 물에 관해서라면 이웃 나라들에 비해 결정적인 이점을 안고 있다. 특히 이집트에 비해 그렇다. 이 때문에 이번 세기에 벌어질지도 모를 물 전쟁에서 핵심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는 향후 국운을 바꿀 수 있는 수력 발전 기술의 위력도 보여주고 있다. (15)
첫째,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국가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다
팀 마샬은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국가의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는 넓은 면적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국제 무대에서의 영향력이 제한될 수 있다. 반면, 터키는 전략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지만,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지리적 위치와 면적이 강점이자 약점이 된다.
(...) 그렇다고 이 만남이 훗날 뱅크스가 영국이 보터니만을 죄수들의 유형지로 탈바꿈하는 것을 막게 해준 것은 아니었다. 당시 영국 감옥의 끔찍한 과밀화를 해소할 수 있는 데다 범법자들이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 곳에 그들을 데려다 놓는다는 일거양득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 또 제국의 중심부에서 1만 7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영국의 깃발을 꽂는다는 전략적 함의 또한 고려됐을 것이다. (31)
새 정부가 초기에 통과시켰던 법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위 <백호주의 정책 White Australia Policy>(1901년부터 1978년까지 지속되었던, 백인 이외 여러 유색 인종의 이민을 배척하던 백인 우선주의 정책)으로 알려진 이민 제한법이었다. (38)
터키,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았지만 친구는 별로 없다.
그것은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나토의 입장에서는 냉전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터키를 가입시키면 가까운 미래에 터키가 도박을 걸거나 모스크바에 의지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동맹의 남쪽 측면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을 터였다. 1952년에 그리스도 같은 이유로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비록 서로 으르렁대는 사이지만 두 나라 모두 나토의 선택지와 화력을 증강시켰다. 터키의 해군에게는 흑해에서 소련을 묶어두는 역할이, 육군에게는 불가리아 국경지대에서 소련 지상군을 묶어두는 역할이 주어졌다. (265)
둘째, 지리적 요인이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한다.
마샬은 지리적 요인이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영국은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분리의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으며, 이는 브렉시트와 같은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헬 지역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테러와 폭력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지리에서 파생된 분리의 정서가 남아 있다.
이제 노르만족과 그들이 영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연도인 1066년으로 올라가 보자. 그해, 훗날 정복자 윌리엄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는 노르망디의 대공 윌리엄이 영국해협을 건너와서 남쪽 해안에 상륙했다. 그는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대를 물리친 뒤 런던으로 진군하여 스스로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런던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수도가 되지 못했는데 윌리엄 치하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그는 런던탑을 건설했고 노르만과 잉글랜드 사이의 중개 도시로서 런던의 위치를 정립했다. (176)
적어도 그것은 영국에서는 늘어난 부가 군사력과 정치 권력의 향상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선순환이었다. 영국은 유럽의 대다수 전쟁과 혁명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이 나라의 군대도 나름 바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미얀마, 크림 반도, 인도 등은 대중이 잘 알지도 못하는 머나먼 곳들이었지만 그곳에서 이 나라는 상당한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원자재들이 영국의 공장들로 들어와서 그 소유주들에게는 재산을, 노동자들에게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184)
이는 부분적으로 5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국어로, 10억 명의 사람들이 제2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어에서 기인한 바도 있다. 영어는 여전히 통상과 국제 계약에서 주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또 영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가장 총명하고 훌륭한(게다가 돈도 많은) 학생들을 전 세계에서 끌어들이고 있다. (200)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찬반이나 경제적 찬반 논쟁이 아니다. 스코틀랜드가 떠난다면 영국의 국제적 위상에 미치는 악영향은 영국이 EU를 떠나는 것에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이 절교에 두 손 벌려 크게 환영할 나라는 아마 러시아일 것이다. (...) 파리와 베를린 정부는 유럽연합군을 창설하려는 계획에 늘 훼방을 놓았던 영국의 경제력이 축소된다는 점에는 주목할 것 같다. (206)
사헬, 테러와 폭력의 악순환에 시달리는 갈등의 한복판에 있다.
사헬 Sahel이라는 단어는 해안 또는 해변을 뜻하는 아랍어에서 나왔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건조한 사하라 사막을 건너려던 초창기 여행자들이 이 지역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말이다. (...) 이곳은 그만큼 안락한 생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드는 험난한 지역이다. (295)
여기서부터 열대우림이 시작되기 때문에 상인들은 짐을 나르는 짐승의 천적인 체체파리의 본거지로 말이나 낙타를 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300)
1964년에 아프리카연합의 전신인 아프리카통일기구의 회원국 수장들은 지역의 안정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서구 열강이 임의대로 지도에 표시한 기존의 국경선을 고수하는 게 낫다는 데 마지못해 합의했다. 만약 식민지 이전의 종족 간 유대 관계를 기반으로 영토를 교환하는 협상을 하다가는 자칫 대륙 전체에 분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고, 남수단이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수정된 사항을 제외하면 이 합의는 대부분 지켜지고 있다. (303)
그런데 유목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투아레그족은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 나라로 일거에 내던져진 것에 분개하고 있다. 북쪽에서 오는 전사들을 두려워했던 남쪽의 정착민들에게 이제는 오히려 지배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305)
사헬 지역 국가들에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하는 프랑스 국적자들이 있다. 이 중에는 니제르라는 나라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나라는 프랑스 원자력 산업에 연료를 제공해서 프랑스 가정에 전기를 밝혀주는 우라늄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309)
니제르는 서구 세력을 반겼으며 사헬 G5 가운데 지역 협력 활동을 가장 활발히 펼치고 있는 나라라 할 수 있다. 또한 군대와 경찰에 적절히 예산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정적이나마 소수 민족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데도 자원을 쏟고 있다. (317)
우리는 수천 년에 걸친 기후변화로 어떻게 한 지역이 형성됐는지, 때로는 얼마나 극적으로 변했는지를 보아왔다. 그런데 대략 1950년대부터 여기에 인간이라는 요소가 끼어든다. 인구 증가에 발맞춰 땔감 수요도 증가해서 이 땅의 초목이 사라져 갔다. 게다가 동시에 증가한 가축들이 그만큼 많은 풀을 먹어 치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상황은 토양 침식과 사막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척박해진 표층은 점점 바람의 침식 피해를 입어서 드넓은 곳에서 모래폭풍을 일으킨다. (321)
지금까지 사헬 지역의 정부들은 능력이 안 되었거나 또는 자비심 부족으로 부족들 간에 전면적이고 공평한 협상을 통해서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형편에서는 정부내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감안해 보면 외국 군대가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주변 상황을 바꿔서 안정적인 국가를 세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정부의 엘리트와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권과 권력에만 신경을 쓰고 자신들이 속한 부족이 이득을 취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민족성이라는 지리가 국경선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335)
셋째, 지리적 요인을 고려한 국제 관계와 외교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마샬은 지리적 요인을 고려한 국제 관계와 외교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이란은 지리적 위치를 활용하여 전 세계와 기싸움을 벌이며,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한다. 그리스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열강들의 게임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는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란, 전 세계와 기싸움을 벌이며 신의 과업을 수행 중이다.
이란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35년부터인데 인구의 40퍼센트가량을 차지하는 비페르시아계 소수 민족을 고려해서였다. 이란의 국경은 수 세기에 걸쳐 바뀌어 왔지만 기본적인 지리적 형태는 여전히 난에 바르바리 빵 모양으로 남아 있다. (68)
결국 아랍인들은 패했지만 이슬람교는 이겼다. 조로아스터교가 탄압을 받고 그 사제들이 죽임을 당하면서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았다. 페르시아는 칼리프 왕국에 통합되었다. (...) 투르크족과 몽골 전사들이 물밀듯이 몰려온 적이 있었다. 중앙 권력이 붕괴된 뒤에 연이은 침략을 받게 된 페르시아는 소왕국들로 분할되었다. 사파비 왕조(1502~1736년)가 들어서서 나라를 통합하고 스스로 통치하고 국경을 방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이러한 상황은 이어졌다.
사파비 왕조의 탄생은 이란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1501년 이스마일 왕은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선포했다. (79)
호메이니가 강조한 벨라야테 파키(이슬람 성직자에 의한 통치)라는 개념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시아파 신앙 안에 담겨 있는 이 개념은 가장 학식이 풍부한 이슬람 성직자가 정치와 종교를 통치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배경에서 호메이니는 헌법에 명시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88)
사실 유럽인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국경선이 그어지지 않은, 교육 수준이 높고 교양 있는 이란이야말로 주변의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정통 민주주의 국가가 될 기회를 가지고 있다. 당분간은 어렵더라도 말이다. (104)
그리스, 그 위치 때문에 고대부터 현재까지 열강들의 게임의 대상이 되다.
이 결정에 그리스인들이 실망하자 여왕은 당시 영국 보호령이었던 이오니아 제도를 요르요스 국왕에게 선물로 주는 것으로 그리스인들을 달래고자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2천2백 년 전에 로마인들이 고대 그리스를 점령하기 위해 도약대로 썼던 바로 그 섬인 코르푸가 포함돼 있었다. 요르요스 1세는 러시아와 영국 왕가와의 친분을 이용해 더 많은 영토를 그리스로 가져왔다. 테살리아 지역 대부분을 병합했으니 이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224)
반면 터키 민족주의자들은 그리스 군대의 출현을 터키 독립전쟁의 시발로 보았다. 1922년 여름, 터키 내부로 꽤 깊숙이 밀고 들어와 있던 그리스군은 무스타파 케말(후에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됨)이 지휘하는 터키군에게 밀리면서 허겁지겁 해안지대로 퇴각해야만 했다. 결국 그리스군이 아닌 터키 부대가 스미르나로 입성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 더불어 비잔티움 제국을 재건하려던 그리스의 꿈도 한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228)
(...) 서방 국가들은 이 상황을 무엇보다 소비에트 세력이 발칸 반도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경종으로 받아들였다. 1947년 영국은 더 이상 그리스를 방어하는 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면서 미국에게 이 역할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러자 미국은 그리스 군대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힘이 세진 그리스군은 공산주의자들의 본거지인 산악지대를 소탕했다. 지난 세기들처럼 외부 세력이 상황을 주도했고, 이전 세기처럼 지중해 유역에서 현재는 러시아가 된 소련을 저지한다는 것이 주요 명문이었다. (230)
그리스는 더 이상 영국, 러시아 또는 미국의 것일 필요가 없다. 그리스는 그리스다. 그런데도 또다시 외부 세력에게 이 나라는 중요한 부동산이 되었다. 위기 상황에 처한 러시아 해군이 흑해에서 탈출해야 할 때 그리스는 2차 방어진지가 될 수 있다. 또한 그리스는 유럽의 난민 위기 최전선에 있는 데다 동부 지중해에서 나오는 가스 파이프라인의 핵심 경로가 될 운명으로 보인다. (246~247)
팀 마샬의 책 <지리의 힘 2>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지리적 요인을 고려한 정책 결정과 외교 전략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한 가문의 성이 나라 이름이 되다.
국토의 중심부로 향하면 수도 리야드와 네지드 지역이 있다. 비록 수도는 가장 큰 도시이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적 심장부이긴 하지만 다른 인구 밀집 지역들과는 꽤 떨어져 있다. (...) 사우드 가문의 본거지였던 네지드는 사막 3개가 에워싸고 있고 산악지대가 북서부의 헤자즈와도 분리시켜 놓아서 외따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네지드는 물조차 귀한 후미진 곳이었다. (121)
이제 이븐 아우드야말로 진정으로 독자적인 아랍 지도자가 되었다. 그의 지위를 넘볼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영국과의 협약이 그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면서 사우드 가문이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32년에 이븐 사우드는 다시 한번 자신의 타이틀을 변경한다. 이번에는 아예 자신의 성이 나라의 이름이 되었다. 이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이 된 것이다. (127)
세계가 석유로부터 점차 몸을 돌리고 있는 바로 이때 정작 자국의 석유 소비는 점점 느는 추세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생산하는 석유의 4분의 1을 자국 내에서 소비하는데, 이는 곧 정부가 얻을 수 있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태워 버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154)
이 나라의 지도자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경제, 그리고 유능한 군대를 건설해야 한다. 아직은 그 검은 물질로 세계 경제의 바퀴가 잘 돌아가도록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위해 싸워줄 수 있겠지만 이곳의 태양광 패널을 지켜주기 위해 싸워줄 리는 만무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향해 우리는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161)
에티오피아, 그래도 지리는 에티오피아 편이다.
지역 강국이라고는 해도 에티오피아에 산적한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사실 에티오피아는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자족할 만큼 잠재력이 높은 나라다. 농업은 에티오피아 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가뭄에 시달리고, 삼림의 남벌, 과도한 방목, 군사 독재, 빈약한 인프라 등이 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운항에 적합한 강이 바로강 하나뿐이라는 점도 국내 교역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346)
에티오피아의 자립과 경제 성장을 본 이탈리아는 또다시 이 나라에 눈독을 들인다. 이탈리아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선전 수단으로 에티오피아의 노예제 관행을 들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제국의 일부로 삼으려고 했던 곳이 바로 에티오피아였다. 이곳에서라면 프랑스나 영국과 부딪히지 않고도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353)
제나위 정권 아래에서 개정된 헌법은 부족에 따라 나뉘어진 지방 정부에서 권한을 위임하는 연방국을 지향했다. 비록 현실에서는 중앙 정부가 되도록 많은 통제권을 고수했어도 말이다. 어쨌거나 각 지역에게는 독립을 도모할 권한이 주어졌고 그 결과 1993년에 에리트레아가 독립된 국가로서 합법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서명으로 에티오피아는 홍해 연안의 해안선 전체를 잃었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내륙국이 되고 말았다. (357)
이집트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논쟁의 시작점은 식민지 시대에 맺었던 합의들과 1929년에 영국과 맺은 앵글로-이집트 조약이었다. 여기서 이집트는 영국으로부터 물의 연간 할당량에 더해 강을 따라 댐을 지으려는 상류 쪽 국가의 시도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추가로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입장은 다르다. 자신들이 서명하지도 않은 조약에 얽매일 이유가 없으며 상류 쪽 국가만의 지리적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수년 동안 에티오피아의 국민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 왔으며 그 나라 미래의 중심에 있다. 이 댐에 엄청남 양의 전력이 생산될 것인데 에티오피아는 그 여분을 수단에 공급할 예정이다. (368~369)
스페인, 지리의 방해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나라의 산악지형과 면적(영국보다 2배나 큰!)은 늘 교역과 강력한 정치적 통치력을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으며, 각 지역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및 언어적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게 한 요인이 되었다. 이런 상이함이 낳은 복잡다단함과 열정은 아직도 스페인의 국가에 가사가 없다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무슨 내용을 넣어야 할지 서로 동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들은 현대에 들어서도 마드리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려는 최북단의 바스크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르는 테러를 수반한 분리 독립운동부터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는 카탈루냐의 정치 운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379)
많은 나라가 이웃 나라들과 물 배분 문제로 다투고 있지만 스페인은 국내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384)
들은 피레네 북부를 지속적으로 공략했다. 그리고 마침내 많은 역사가들이 유럽에서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계기로 보는 투르 전투가 벌어졌다. 732년, 북쪽의 루아르강으로 진격하고 있던 대규모 이슬람 군대는 프랑크 왕국의 궁재(서양 중세시대 최고의 궁정직) 샤를 마르텔과 맞닥뜨린다.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프랑크 왕국이 결국 승리를 거둔다. 마르텔을 무슬림들을 이베리아 반도에 묶어둬야지 만약 그들이 반도를 넘어 더 위로 올라온다면 그리스도교의 유럽은 패망할 것으로 생각했다. (386)
시간을 빨리 감아서 1469년으로 가보자. 우리는 그해에 무슬림 통치의 종말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공주가 아라곤 왕국의 페르디난도 왕자와 결혼을 한다. 아라곤과 카스티야 왕관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지리상으로 볼 때 이 사건은 스페인 북동부와 서부가 하나로 통합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실 이는 경제적으로 큰 효과는 없는, 어디까지나 정치에만 제한된 연합이었던 데다 여전히 자치권을 행사하는 지역들이 있었지만, 현대 스페인을 탄생시키는 전기가 되는 획기적인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후 20년에 걸쳐 엄청난 대약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388)
프랑코에게도 친구들은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와 베니토 무솔리니라는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패망하자 프랑코는 스페인만 파시즘이라는 늪에 빠져 홀로 허우적대는 신세가 되었다. 서구 열강은 동부전선에서 나치와 함께 협력하도록 병력 5만 명을 보낸 이 사내를 무시했다. 종전 후 스페인은 따돌림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유엔은 물론 마셜 플랜, 나토에게까지도. (404)
스페인은 가만히 앉아서 카탈루냐를 잃을 생각이 없다. 이런 입장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국가의 위신과 경제 문제도 있지만 때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바로 지리적 문제다. 스페인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쪽의 침략자들은 대개 피레네 산맥 양측에 좁게 펼져진 나지막한 땅을 통해 이 나라로 진입했다. 그곳이 바로 북서부의 바스크 땅과 북동부의 카탈루냐 땅이다. 북쪽에서 스페인이 펼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는 이 통로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카탈루냐나 바스크가 분리 독립해 버린다면 스페인에게는 끔찍한 저주가 될 것이다. (414)
우주, 또 다른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가 될 수도 있다.
한편 지구 가까이에는 5개의 칭동점들이 있다. 그곳은 지구와 달의 중력 효과가 서로의 힘을 상쇄해서 그곳에 정박한 물체들이 연료를 쓰지 않고도 제위치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경쟁은 이 지점들에서 벌어질 것이다. (443)
수십 년 전 양국 사이에 전쟁의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을 때 기술 협력은 긴장 완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1975년의 소유스-아폴로의 도킹을 이뤄냈다. 양 진영의 우주비행사들이 함께 그랬던 것처럼, 우주 공간에서 <창백한 푸른 점(pale-blue dot, 우리 지구)>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태초부터 우리를 감염시켜 <우리>와 <그들>로 갈라놓게 한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길이다. 우주는 그 무한대 속으로 우리 인간의 정신이 뻗어나갈 기회를 주고 있다. 인간은 늘 위를 바라보았고 깜깜한 밤하늘의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어왔다. (458)
독서습관 895_지리의 힘 2_팀 마샬_2022_사이(240603)
■ 저자: 팀 마샬
30여개 국가에서 출간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을 펴낸 저자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특파원과 외교부 출입 기자, BBC 기자로 일하면서 30년 이상 국제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전 세계 분쟁과 갈등 지역에 직접 뛰어들어가 생생한 현장의 상황을 보도한 저자는 전작에서 지리라는 렌즈를 통해 국제 정치와 경제, 전쟁, 빈부 격차 등을 조명하면서 <현대 세계에 대한 또 다른 뛰어난 안내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속편인 이 책에서는 저 멀리 남쪽 끝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시작해 우리 머리 위 저 높은 곳 우주까지, 전작에서 다루지 못한 지정학적 긴장 상태에 있는 10 개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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