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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38]세월②_굴종과 가난 속에 위로가 필요했던 대학시절

by bandiburi 2024. 2. 17.

1권에 대한 포스팅에서 전체적인 소설의 내용과 특징을 언급했다. 2권에서는 남기고 싶은 문장들과 소감을 포스팅한다. 가족들과 함께 본 영화 <서울의 봄>에서 등장한 박정희의 죽음과 전두환의 등장은 주인공 '그 여자'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

어머니는 조만간, 딸의 교육비와 생활비가 당신의 몫이 될 거라는 걸 짐작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 여자의 생활비와 학비는 어머니의 부담이 된다. (26)

그 여자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부담까지 하기에는 벅차다. 결국 어머니의 도움을 졸업할 때까지 받게 된다. 과거에는 대학교 학비는 일반 국민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자립해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부모들은 자식들에 투자하고 노후를 의탁했다. 

이만큼 살면서 그 여자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 (69)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 남자의 일방적인 태도에 그 여자는 굴복한다. 성폭행으로 인한 원치 않는 경험이 마치 자신의 삶을 결정한 듯한 여자의 모습과 남자에 대한 무저항은 독자로서 많이 답답했다. 그만큼 부모로부터 받은 선입견은 버리기 어렵다. 

그 여자는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제가 들은 최초의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그건 아마 우리 문학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성폭행 문학이기도 할 것이다. 옛날에 옛날에,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 그렇지만 늘 현재인 이야기,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그러나 냉혹하고 잔인한 이야기. (95)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어린이를 위한 전래동화로 인식되어 반론 없이 받아들여졌던 이야기를 그 여자는 냉혹하고 잔인한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충분히 공감되는 신선한 부분이었다. 

그 여자는 역술가의 충고나 결정을 바라는 게 아니다. 이미 결심이 선 상태에서, 후원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 잘될 거야. 그런 격려의 말. 그리고 대부분의 역술가들은 그 여자에게 용기를 준다. 그거면 충분하다. (169)

자신의 내면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그 여자에게는 격려의 말 한 마디가 필요했다. 오늘날로 보면 심리상담을 통한 회복이 절실했다. 그 여자는 역술가를 통해 그 위로를 받는다. 

그 여자에게 죽음은 단 한 가지 의미를 갖는다. 자신이 제 생명과 운명의 주인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굴욕을 참으며 억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존엄성을 훼손당하면서 꾸역꾸역 사는 삶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언제든 제 생명을 제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자살에 대한 그 여자의 생각이다. (179)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책을 통해 얻으려 하는 그 여자다. 그 남자와의 관계에서 굴욕적이고 인간적 존엄을 잃어버린 채 끌려다니는 삶을 살면서 죽음을 생각한다. 자살이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그 여자는 정리한다. 

10.26, 그 역사적인 사건의 새벽은 그렇게 찾아온다. 연탄가스를 맡아 마당에 쓰러지곤 하는 일과 함께, 기쁨도 슬픔도 아닌 멍한 충격과 함께, 교정에 주둔해 있는 군인들의 위협적인 발짝 소리와 함께, 추운 거리에서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망연한 느낌과 함께. (233~234)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마무리 지은 순간에 그 여자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연탄을 피우고 자다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쓰러졌다 간신히 살아났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졌고, 그 여자의 삶도 방향을 잃고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 여자가 1987년의 6월항쟁 때, 하루도 빠짐없이 시청 앞으로, 광화문으로 나갔던 이유도 그것이다. 1980년 5월, 시민들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 온 국민이 다 함께 민주화를 외쳤어야 했다는 뒤늦은 안타까움, 그런 것들 때문이다. (292) 

저자는 1980년 봄에 민주화가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강하게 느껴 1987년에는 시민으로 열심히 참석했다. 당시 대학생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이 현실이 되어 오늘이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는 진일보되었지만 경제적 민주화는 갈수록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멀어지는 2024년 현재다. 

브레히트가, 영웅이 없는 시대는 불행하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더 불행하다고 했잖아. 김우창 교수는 의사(義士)를 필요로 하는 시대는 영웅의 시대보다 조금 더 불행할 거라고 말해. 의인을 낳지 못하는 시대는 더 불행하고, 그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인만을 가진 시대라는 거야. 한용운을 가졌던 시대...... (302)

지금은 어떤 시대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문장이다. 민주화 시대에 희생된 의사(義士)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영웅이 있나, 의사가 있나, 시인만이 있는 시대인가 자문해 본다. 비교와 경쟁을 부추기는 기형적 자본주의 속에서 가진 자들의 횡포에 다수가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여자가 지금도 황순원 교수의 가르침 중 소중히 여기고 있는 몇 가지 역시, 그 나머지 반 시간에 들은 얘기다. 그중 하나는,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이미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 독자나 평론가가 무어라 하든, 한 생명체로써 그 작품이 답하도록 내버려 두라. 문학작품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므로 남들이 무어라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마라. 그 대신, 작품이 혼자서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튼튼한 팔다리와 건강한 심장을 달아서 내보내라. (332)

저자가 황순원 교수의 가르침 중에서 작품이 하나의 생명체라는 부분이 많이 공감되었다. 특히 세상에 나가기 전에 작가는 작품에 튼튼한 팔다리와 건강한 심장을 달아서 보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조언이다. 

이제 진정으로 아버지의 삶에서 떠나야겠구나. 거의 이루어낸 당신의 삶에, 지난날의 실패와 실수의 흔적인 내 모습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겠구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아버지 당신을 위해서. 그건 그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냉철한 판단이다. (...) 그 후로도 오래도록 가슴속에서 시린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결심이다. (351)

그 여자는 아버지를 몇 번 찾아간다. 찾아갈수록 그 여자와 아버지의 관계는 멀어진다. 아버지의 자리를 어머니가 대신하고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점차 어머니의 등장이 많아진다. 

3권으로 이어진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211

 

[839]세월③_그 여자를 키운 것은 세월

3권에서는 그 여자가 자신의 장단점을 깨닫고 직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며 이 소설을 쓰게 되는 계기를 보여준다. 1권과 2권에서 경험했던 어둡고 힘들었던 과정들이 결국은 세월의 흐름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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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38_세월 2권_김형경_2008_푸른 숲(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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