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 만났다. 좋아해서 들은 것이 아니라 들리니까 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와 음악은 평생 각인되어 음악은 과거를 소환한다. 어느새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도서관에서 '라흐마니노프'로 검색해서 구한 책이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란 추리소설이다.
두 가지 점에서 이 소설에 만족하고, 한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첫째, 라흐마니노프의 곡에 대한 세밀한 평가다. 저자는 음악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것인지, 이 소설을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한 것인지 마치 작곡가인 듯, 연주자인 듯 깊이 있게 곡을 설명한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관련된 전문 용어를 가득 담아서 상황을 그린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삶과 그의 곡을 이어 붙여서 설명하는 부분은 간접적이지만 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라흐마니노프와 톨스토이의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비록 라흐마니노프에게 좌절을 안겨주었지만...
둘째, 꿈을 추구하는 젊음의 아름다움을 본다. 주인공 기도 아키라는 자신을 스스로 돌봐야 하는 가정환경이 되었다. 학비를 준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분주히 움직이지만 학비를 모으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생활이 꿈을 좀먹는다'라는 저자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들의 모습이다. 부모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없는 대학생들이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전공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생활이 그들의 꿈을 좀먹는 사례다. 국가에서 부모를 잘 못 만난다고 하기 전에 국가가 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활로 인해 멋진 꿈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해서야 되겠는가.
아쉬운 점은 미사키의 존재다. 미사키는 주인공 아키라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등장한다. 마치 그의 주변을 늘 맴돌고 있었던 것처럼 대학교에서도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도 등장해서 그를 위기상황에서 구해준다. 현실적인 부분도 중요한데 중후반을 넘어서며 미사키의 등장이 예견될 정도로 그의 극적 역할이 빈번하다. 저자 나카야마 시치리의 추리소설 시리즈를 처음 접해서 '미사키'의 역할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다른 소설에서도 미사키의 역할이 비슷하다면 저자의 소설의 특징이라고 봐야겠다. 어쨌든 추리소설의 감흥을 낮추는 점은 사실이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생활이 꿈을 좀먹는다. 그것이 가난한 음대생의 숙명이라 해도 연습의 기본은 반복과 고찰이다. 생활과 꿈, 하나만 열심히 해도 부족한데 둘 다 게을리하면 발전은커녕 퇴화하는 것이 자명한 이치다. (35~36)
불경기는 어쩔 수 없지만, 실업률이 높은 건 반드시 불경기 때문만은 아니야. 월급의 8할은 참고 버티는 값이라는 걸 모르는 녀석들이 많아진 탓도 있다고. (60)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다단조>. 협주곡 작가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을 단숨에 휘날리게 한 손꼽는 명곡이며 러시아 낭만파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멜로디가 섬세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편, 피아노 솔로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오케스트라 파트에서도 고도의 연주 기교를 요구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전편에 넘쳐흐르는 긴장감은 곡조 그 자체에서 오는 것과 함께 피아노 솔로를 포함한 연주자 전원의 긴장이 겹겹이 포개어진 것이다. (142)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취사선택의 연속이거든. 몇 시에 일어날지. 뭘 먹을지. 뭘 하며 지낼지. 그리고 뭘 목표로 할지. 수많은 선택이 쌓여서 지금에 이른 거야. 사람들은 대부분 서툴러서 뭔가를 선택하면 그 외의 것을 버려야 해. 버린 것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선택한 것을 소중히 해야만 하지. (214)
자네라면 될 수 있어. 프로를 해 나갈 수 있다고. 보게.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네들 연주에 용기를 받지 않았나. 음악이란 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움직인 사람이 프로가 되지 못할 리가 없지. (260)
재클린 뒤 프레를 덮친 것은 감각장애였다. 연주 중에 손끝의 감각이 둔해지더니 1973년 연주 여행 때 마침내 연주 불능이 되었다. 같은 해 가을에 그녀는 사실상 첼로 연주가를 은퇴하고 그로부터 14년 후에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283)
언제부터였을까. 실패할 확률을 핑계로 도망가는 법을 익혔을 때가. 도전해도 안 될 것이 뻔하다. 헛된 수고는 다른 방향으로 돌리자. 그러니 이번에는 패스. 그 핑계를 대면서 피땀 흘리기를 아까워하기 일쑤였다. 도망가고 넘어가서 결국 도달한 곳은 불투명한 앞날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푸념하고 억지나 쓰는 나날이었다. (326)
독서습관 762_잘 자요, 라흐마니노프_나카야마 시치리_2021_블루홀식스(230815)
■ 저자: 나카야마 시치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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