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의 방식대로 유럽에 혁명을 일으켰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1789년 프랑스 군중을 봉기시켰던 대원칙들은 라인 강을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며 그 영향력도 곧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다른 왕들이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폴레옹이 다른 왕들의 '대오'에 들어갈 수 없었던 요소이자 다른 왕들에게 불안함을 주었던 요인은 민법이 내포하고 있는 원칙, 그중에서도 특히 평등의 원칙이었다. (548)
오랫동안 미루었던 조르주 보르도노브의 <나폴레옹 평전>을 읽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로마의 카이사르와 같은 반열의 영웅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 나폴레옹의 실체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기록물이 제한적인 이 천년 이전의 인물들에 비해 역사적 기록물이 많이 남아 있는 나폴레옹은 인간적이면서 현실적이다. <나폴레옹 평전>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겠다. 소감을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이어갔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평등한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바람은 나폴레옹이란 평범한 인물이 황제로 등극하며 이어졌다. 비록 그의 집권 기간은 짧았지만 오랜 기간 왕이 다스리던 구습을 유지하려는 세력들과의 갈등은 시대의 변화를 재촉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귀환했으나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을 때 주변국들이 그와의 협상을 외면한 것은 그가 왕족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둘째, 나폴레옹도 불완전한 인물이었다. 포병대 장교로 황제로 올라갈 때까지 환경이 따라줬다. 주변국과의 이어지는 전쟁에서 그의 전술과 용맹함은 승리를 선사했다. 천재성을 발휘한 18세기의 전쟁 기술은 19세기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판단과 고집은 그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러시아와의 전쟁 패배는 엘바섬으로의 유배를, 워털루 전쟁에서의 패배는 세인트헬레나섬으로의 유배로 이어졌다. 엘바섬에서 복귀했을 때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영민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참모들도 기회주의적인 인물들이 남았다.
셋째, 19세기 초반의 유럽정세를 이해한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로 유럽에서 승승장구할 시기에 유럽은 국가들 간의 이합집산이 이어졌다.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대륙봉쇄령을 뚫고 자신들의 상품을 유럽에 판매하려 했다. 러시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프러시아 등은 강력한 프랑스에 대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왕들이 지배하던 시대에 평범했던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자 혼인관계를 통해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추락은 동시에 프랑스에서 루이 18세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넷째, 푸셰를 다시 만났다. 2년 전에 <조제프 푸셰>에 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폴레옹 평전>에서는 나폴레옹 말기에 푸셰에 대한 언급이 조금씩 나온다. '당연히 총살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기용해야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독서를 통해 책의 모든 내용을 소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책의 내용이 구슬로 만들어진 목걸이처럼 이어졌을 때 독서의 즐거움은 새로운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이 무질서 상태와 파리에서 내려오는 걱정스러운 소식들, 넘쳐나는 슬로건들에 대해 나폴레옹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이 모든 사태가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만큼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느꼈을까? 이직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다른 장교들이 프랑스 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애착이 나폴레옹에게는 없었다. (66)
1793년도의 공화주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탕달의 작품과 푸미에 박사의 회고록을 읽어야 한다. (82)
행정 기구나 법적 용어에 대해 잘 모를 경우 나폴레옹은 아는 척하면서 도박하듯이 아무 결정이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최고의 행정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전문 용어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조차도, 그는 토론을 유도하고 매우 진지하게 의견을 경청했으며 자신의 의견에 형태가 잡힐 때까지 계속 토론을 진행시켰다. (191)
나폴레옹 법전에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확고하게 하는 '단단한 초석들'이 있다. (238)
그러나 나폴레옹의 성격에 대해서 무엇보다 그 자신이 뢰데레에게 한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내 안에는 각기 다른 두 인간이 있소. 머리를 가진 인간과 가슴을 가진 인간." (346)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권력 남용과 압제로 보이는 이 조처들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었다. 무정부주의를 종결짓기 위해서는 단호한 결단과 새로운 관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 나폴레옹은 말한다. "내가 한 일은 모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밖에 없었다. 혁명을 이어가면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385~386)
이렇게 비교적 단기적인 원정에는 나폴레옹의 천재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다른 형태의 전쟁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는 18세기 사람으로 18세기의 전법과 전술을 좀더 완벽하게 발전시켰지만 스페인식의 저항은 그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퇴각과 초토화 전술도 그에게는 부당하고 비논리적인, 당황스러운 전술이었다. (438)
행운의 여신은 이미 그를 떠났다. 몇 달 동안 대제국은 지탱은 해나갔지만 겉모습뿐이었고 1813년 이미 뚱뚱해진 카이사르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보나파르트일 뿐이었다. 터무니없는 오만함과 담대함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보나파르트. 지혜도 정책도 없는 비현실적인 인물일 뿐이었다. (462)
나폴레옹은 폐위되었고 그들은 나폴레옹과도 그의 가족과도 협상하지 않을 것임을 재차 확인하며 그에게 불명예스럽지 않은 처사를 내릴 것임을 알렸다. 더구나 마르몽이 파리를 비우고 동맹군들이 들어오도록 길을 열어주었으므로 이런 협상 자체가 별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479)
교수형에 처해야 할지 그냥 둬야 할지 고민했던 푸셰는 경찰 수뇌에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고위직도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이처럼 통일성도 없고 자질도 부족한 정부 조직에서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503)
비열한 푸셰는 배신과 경찰 권력을 남용하는 데 타고난 소질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나폴레옹이 파리에 돌아온 것은 비상대권을 요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회를 해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522)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112
내 목표는 단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를 하나로 합치는 것, 모두를 화해시키고 증오를 없애고 수많은 간극들을 좁히고 결집해서 하나의 프랑스, 하나의 조국으로 만드는 것만이 내 목표였다. (538~539)
여기에 많은 역사소설을 남긴 작가답게 보르도노브는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과 현장들을 세밀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가 마치 당시 시대 상황 안에서 함께 사건을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생생함을 선사한다. 지나간 시간, 퇴색한 사건들을 되살려내는 뛰어난 필력으로 인해 지루해지기 쉬운 역사서는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읽힌다. (588)
독서습관 759_나폴레옹 평전_조르주 보르도노브_2009_열대림(230807)
■ 저자: 조르주 보르도노브
1920년 프랑스 출생. 역사가이자 역사소설가 문학과 법학을 전공했으며,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일생, 프랑스 역사에서 의미 있는 순간을 다룬 책을 집필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프랑스 문학상의 하나인 위그카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프랑스 한림원상, 부르스 콩쿠르 역사소설상, 서적인이 뽑은 그랑프리 등을 수상했으며, 전집 '프랑스를 이룬 왕들'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그 밖에도 예술과 문학 공로훈장을 받았다.
선구자, 카페 왕가, 발루아 왕가, 부르봉 왕가 시리즈가 포함된 전집 '프랑스를 이룬 왕들' 외에도, <잔 다르크>,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3세>, <마자랭> 등이 포함된 전집 '프랑스 역사의 위대한 시간들'에서는 눈부신 인물들을 강도 있게 되살려내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역사의 심오한 노래와 공동체 혼을 그리고 있다. 그 밖에도 역사서 <파리의 숨겨진 역사>, <에밀 망주노>, <템플 기사단>, <방데의 명성>, 역사소설 <어린이를 위한 궁중무곡>, <무기를 들고> 등 많은 책을 남겼다. 2007년 3월, 87세로 작고한 그에게 프랑스 언론은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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