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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53]철학의 위안_보에티우스가 신 안에서 위안 받으라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메시지

by bandiburi 2023. 7. 8.

<철학의 위안>은 제목은 건조해 보이지만 저자 보에티우스의 삶을 이해하고 읽는다면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보에티우스는 서로마제국이 게르만족인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당한 476년 즈음에 로마 근처에서 태어났다. 489년 경에 동고트족인 테오도리쿠스가 오도아케르를 죽이고 사실상 서로마제국의 황제로 군림한다. 저자 보에티우스는 멸망한 서로마제국에서 귀족 신분으로 살았다. 522년 자신의 두 아들은 집정관으로 임명될 정도로 잘 나가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523년에 반역죄로 체포되어 파비아에 가택연금되었고, 그곳에서 몰락한 자신의 처지를 철학이 위로하는 형식의 책 <철학의 위안>을 집필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525년 경에 처형되었다. 

부와 명성과 권력, 쾌락을 모두 경험했던 저자는 한순간에 반역죄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입장이 되었다. 어쩌면 목숨도 자신의 손을 떠난 상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의인화된 철학(그녀)은 보에티우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매 장마다 산문과 시가 동시에 등장하며 글의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강조하고 있다. 

딱딱한 철학이 아니라 철학이 보에티우스에게 조언을 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아래 그림과 같이 누워있는 보에티우스에게 그녀(철학)가 등장해 위로의 말을 전한다. 

세월이 흘렀지만 인간의 삶에서 부, 명성, 권력, 쾌락에 대한 추구는 반복된다. 신과 운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인간이란 100세라는 한정된 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과거를 배운다고 해서 완벽해질 수 없고 실수를 반복한다. 여기서 실수란 인간이 과도하게 위의 네 가지를 추구해, 절대선, 즉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점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속에서 한 인간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추락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속에서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철학이 보에티우스에게 등장하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철학의 위안>은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알기를 원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인생의 깊은 의미를 통찰해서 모든 운명의 파란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을 주관하는 신 안에서 위안을 받으라고 하는 철학적이고도 종교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20)

나는 이렇게 해서 근심의 구름이 내게서 흩어져서 비로소 다시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자, 나를 치유해 준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눈을 돌려 그녀를 응시했을 때, 나는 그 여인이 나를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오랜 세월 동안 키워 주었던 나의 보모 "철학"이라는 것을 알았고, (...) (43)

(...) 먼저 나를 재판정으로 불러내어 심문해서 자백을 받아낸 후에 형벌을 선고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원로원을 지나치게 편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형선고를 받고 가산을 몰수당한 것은 물론이고, 지금 이렇게 로마에서 800km나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와 있습니다. (53)

Philosophy Consoling Boethius and Fortune Turning the Wheel (출처: picryl)

너는 만유가 우연에 의해 무작위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이성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네게 이 믿음이 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작은 불씨에서 생명의 불길이 일어날 것이고, 너는 그 불길로 말미암아 뜨거워지게 될 것이다. (65)

이렇게 네가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불행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감내하기만 한다면, 너의 운명은 무엇이 되었든 네게 행복하고 복된 것이 된다. (92)

부의 기준을 더 많이 갖는 것에서 찾지 않고 본성적인 필요의 충족 여부에서 찾는 사람들은 본성이 만족하면 그것으로 자신이 부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최소한의 것만을 필요로 할 뿐이다. (99)

보에티우스와 철학 (출처: picryl)

철학은 이제 모든 사람이 열망하는 참된 행복을 정의해서, 참된 행복은 모든 선을 그 자신 속에 담고 있는 완전함이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부나 높은 관직이나 정치 권력이나 명성이나 육신적인 쾌락 속에서 자신들의 선을 추구할 때, 그러한 선의 추구는 자연의 법칙에 부합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126)

그런데 악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선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만물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만물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것만이 힘이기 때문에, 악을 행할 수 있는 힘은 질제로는 힘이 아니다. (197~198)

신의 정신 안에 있는 단일성이 원인들로 이루어진 불변의 질서를 만들어 내고, 이 질서가 제멋대로 흘러가서 변할 수 있는 것들을 자신의 불변성으로 억제되고 있는 것이라면, 만물은 최고로 잘 다스려지고 있는 것이 된다. (224)

헤라클레스 (출처: pixabay)

가혹한 고난의 연속이 헤라클레스에게 복이 되었으니, 
오만방자한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를 굴복시켰고, 
사나운 사자의 가죽을 벗겼으며,
귀신 같은 활솜씨로 식인 새들을 꿰뚫었고, 
용이 지키고 있던 황금 사과를 손에 넣었으며, 
저승 입구를 지키는 개인 케르베로스를 삼중의 쇠사슬로 묶어 놓았고, 
폭군 디오메데스를 쳐서 이긴 후에는 그가 기르던 네 마리 잔인한 말들에게 먹이로 주었으며,
히드라를 불로 지져서 죽였고,
강의 신 아켈로스는 이마에 상처를 입고 뿔이 부러져서 수치스러움에 강둑 아래 물속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으며,
리비아 사막에서 안타이오스를 때려눕혔고,
카쿠스를 죽여 에반데르의 분노를 풀어 주었는데,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잡아 메고 오느라고 그 침으로 더럽혀진 그의 불굴의 두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고난이었으니, 
그 상으로 하늘에 올랐도다. (237~238)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진 일에 여러 가지 원인들이 결합되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우연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44)


독서습관 753_철학의 위안_보에티우스_2018_현대지성_230708


보에티우스 (출처: picryl)

■ 저자: 보에티우스 BOETHIUS, 475?~525?

최후의 로마인으로, 또는 저작이 미친 영향으로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로 불리는 보에티우스의 원명은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세베리누스 보에티우스이다. 그는 475년경 로마의 유수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490년경 집정관이던 아버지가 죽고, 로마에서 가장 존경받던 귀족 심마쿠스의 양자가 되었다. 후에 심마쿠스의 딸과 결혼했다. 
보에티우스는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며, 문학 철학 산술학 음악 천문학 등 다방면의 학문을 공부하였다. 그의 학식과 인품이 테오도리쿠스 왕의 인정을 받아 510년에 집정관이 되었고, 522년에는 왕의 마기스테르 오피키오룸(오늘날의 비서실장)이 되었다. 같은 해에 그의 두 아들이 집정관으로 임명되었다. 
520년에 원로원 의원들과 테오도리쿠스 왕은 알비누스(전 집정관)를 반역죄로 고발하였는데, 보에티우스는 그를 변호하다가 반역혐의를 받아 파비아의 감옥에 갇혔다. 이때 그의 대표작인 <철학의 위안>을 집필하였다. 그는 그리스어를 알지 못하는 로마인에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사상을 알려주기 위해서 두 사람의 모든 저작의 번역과 주해를 계획했으나 525년에 처형되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저서로, <철학의 위안> 외에 <신학논고집>, <4학과 입문> 등이 있고, 포르피리오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입문>의 번역과 주해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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