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를 비교하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는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小카토의 삶에 대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정치인이 잘못되었다면 그를 뽑은 사람의 책임도 크다'는 카토의 말을 보며 2023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카토와 같은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살아갈 때 올바른 정치 속에 국민들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라는 선출직의 역할이 막중하다. 그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다양한 국민들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선출직들의 위치가 중요한 만큼 그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냐에 따라 공무원들의 행위가 달라진다. 자신의 사욕을 충족하기 위해 서로를 비난하고 경쟁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 속에서 국민은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다.
2023년 대한민국은 혼돈 속에 있는 느낌이다. 국민이 단합된 모습으로 국난을 극복해가야 한다. 카토와 같은 정치인이 절실하다. 국민이 웃음을 띠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는 청렴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카토의 말과 같이 그들을 뽑은 국민의 책임도 크다.
처음에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찬양하며 사랑했다. 그는 평소에 자기는 아버지보다 선생님을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신을 낳아 주셨지만 선생님은 자신을 고결한 인물이 되도록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뒷날 아리스토텔레스를 다소 의심했다. 그 의심의 정도가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코지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 (25)
카이사르는 이 전투의 신속함과 치열함을 로마에 있던 친구 아만티우스에게 편지로 알리면서 이렇게 썼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말은 라틴어로 쓰면 'veni, vidi, vici'인데, 그 어두와 어미가 모두 같고 단어도 간결하여 매우 인상 깊다. (193)
카이사르는 죽을 무렵에 만 56세였으니 폼페이우스보다 4년밖에 더 살지 못했다. 그는 모든 생애에 걸쳐 그토록 많은 위험을 겪으며 추구하던 권력을 마침내 겨우 손에 넣었지만, 그가 얻은 결실은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이름뿐이요, 그를 따르던 시민의 질투만을 불러일으킨 영광뿐이었다. (218)
트로이[Ilium]는 세 번 멸망했는데, 첫 번째는 라오메돈왕이 주기로 약속한 천마를 주지 않아 헤라클레스에게 멸망했고, 두 번째는 목마를 타고 온 아가멤논의 손에 멸망했고, 세 번째는 성문 앞에서 말이 넘어져 문을 일찍 닫지 못하게 되면서 그리스 용병대장 카리데모스의 침략을 허용했다. (282)
그 때문에 이방 민족조차도 이 섬이야말로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Ⅳ : 563~568)에서 말한 축복의 땅 엘리시온(Elysion)이라고 굳게 믿었다. (291)
카토가 공무에 몰두한 이유는 다른 의원들처럼 인기를 얻으려거나 어떤 기회를 보아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공인으로서 국가를 위해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함이었다. 카토는 벌이 꿀을 탐내는 것보다 더, 공직자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402)
그러자 카토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처음 장군의 집정관 취임에 반대한 것은 장군을 미워해서가 아니고, 나중에 장군을 지지한 것도 장군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어느 쪽이었든, 나는 국가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롭게 말하자면 제가 장군의 초대를 받아 온 것은 제가 장군의 고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441)
정치인이 잘못되었다면 그를 뽑은 사람의 책임도 크다. - 카토 (473)
허락 없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현명한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스토아학파의 현인이라고 해도 제우스 신보다는 낮은 곳에 있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사슬의 주인이, 그러니까 신이 그것을 끊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499)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989
독서습관 754_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_플루타르코스_2021_을유문화사_230717
■ 저자: 플루타르코스
서기 45~50년경 보이오티아섬의 북쪽 마을 카이로네이아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에 아테네로 가 암모니우스의 지도를 받으며 그리스 철학을 익혔고, 이후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방문하며 학식을 쌓았다. 로마에서는 황제를 비롯한 명사들과 친교를 맺으며 로마 시민권을 얻었으며, 만년에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사제로도 일했다.
그러나 그의 본분은 철학자이자 저술가로, 모두 200종이 넘는 저술을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담은 기록이자 플루타르코스 자신의 인간관을 투사한 대작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삶의 영감을 선사하는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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