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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43]그렌델_다시 쓴 베어울프의 전설_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있는 존재의 비애

by bandiburi 2023. 6. 11.

다른 책에서 언급된 '베어울프'라는 내용이 궁금했다. 영웅서사시 <베어울프>를 읽어보고 싶어 도서관 검색을 했지만 어린이용만 있다. 대신 '다시 쓴 베어울프의 전설'이란 부제목의 <그렌델>이 있어 읽게 되었다. 다독의 장점은 호기심의 영역이 계속해서 확장되는 점이다. 세상을 보는 시공간적 관점이 과거에 비해 많이 넓어졌다. 그만큼 사람과의 직간접적인 관계에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베어울프>의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렌델>을 읽다 보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렌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의 말을 하며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미와 동굴에서 지내며 용을 만나기도 하는 면에서는 신화적인 존재로 보인다. 인간을 죽이고 잡아먹는다는 측면에서는 사나운 동물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의 입장에서 파편적으로 주어지는 묘사를 통해 상상할 뿐이다. 

고로 그는 동물이되 동물이 아니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다. 즉 그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존재다. 경계에 있으므로 그는 모든 곳에 속하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다. 이를 공간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장자리를 걷는 자', 즉 경계를 걷는 자가 된다. '그렌델'이라는 이름은 '지구의 가장자리를 걷는 자(earth-rim-walker)'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렌델은 1장에서 자신을 "그늘을 찾아다니는 괴물", "지구의 가장자리를 어슬렁거리는 괴물", "괴상한 세상의 벽을 걷는 괴물"이라 일컫는다. (214)

경계에 있다는 것의 장점은 경계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렌델은 '인간'을 관조하게 된다. 인간의 행동과, 인간의 마을과, 인간의 관계와,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예술을 다시 말해 인간의 '역사'를 지켜본다. (218)

책의 말미에 있는 아래 문장을 읽으며 <베어울프>와 <그렌델>의 관계가 명확해진다. 원작 <베어울프>에서 베어울프에게 죽게되는 괴물 그렌델을 주인공으로 해서 존 가드너가 창작한 소설이 <그렌델>이다.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존재인 그렌델의 입장에서 경계의 존재로 살아가는 그렌델이다. 셰이퍼의 노래를 들으며 아름다움에 감동받지만 인간일 수 없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마지막 장면에서 꿈속에서 자신의 팔을 잃어버리는 모습은 원작 <베어울프>의 내용과 연결된다. 

<그렌델>은 고대 영어로 쓰인 최초의 영웅서사시 <베어울프>(길이가 3182행에 달하는 이 시는 구두로 전술되어 오다 700~750년 사이에 한 앵글로-색슨 수도사에 의해 처음 문자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 책으로 만들어진 것은 1815년으로 추측된다.)를 다시 쓴 작품이다. 스웨덴 남주의 예이츠족 베어울프는, 십이 년 동안 덴마크 왕국에 출몰하여 흐로드가르 왕의 용사들을 잡아먹는다는 괴물 그렌델을 죽이기 위해 덴마크 왕국에 온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날 밤에 왕궁을 습격한 그렌델과 맞붙어 그렌델의 한쪽 팔을 뜯어낸다. 치명상을 입은 그렌델은 왕궁을 빠져나가지만 곧 죽는다. 다음 날 그렌델의 어미가 복수를 하기 위해 나타나 흐로드가르 왕의 용사를 죽인다. 베어울프는 그렌델의 동굴로 쫓아가서 어미까지 죽인다. 그리고 그렌델의 시체에서 목을 베어 돌아온다. 여기까지가 <베어울프> 서사시의 앞부분이다. (뒷부분에서 베어울프는 용을 죽이는데, 이 용은 <그렌델>에서도 등장한다) 존 가드너는 바로 그 괴물 그렌델을 주인공으로 하여, 베어울프가 그렌델을 죽이는 장면까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215)

중세시대 스웨덴과 덴마크 지역의 낙후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구전되었던 영웅서사시 <베어울프>를 상상해본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암흑의 시대다. 자연은 인간의 생존에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그런 자연을 숭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간의 상상력은 자연 속에 다양한 형태의 괴물을 만들어내고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용감하게 무찌르는 영웅은 당시 사람들에게 수호신과 비슷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는 변했다. 내가 서 있는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새로운 중심이 된 것이다. 한때 발이 끼여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그 나무에서 세상이 한 번 폭발했다면, 이제 세상은 공포로 비명을 질러대며 바깥으로 폭발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한때 헛되이 절벽을 찾아 헤매던 어미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말하려는 것의 일부분일 뿐이다. 나는 이제 새로 태어난 듯 아주 굉장한 무엇인가가 되어버렸다. (98)

영웅의 삶을 빼고 세상에 의미 있는 건 없어. 영웅은 가능한 것을 넘어서 가치 있는 것을 보지. 그게 영웅의 본성이야. 물론 그 때문에 영웅은 결국 죽게 마련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인류의 투쟁에 가치를 더하는 거야. (110)

나는 진리의 스승, 환상의 시험자 그렌델이다! 오늘 이 순간부터 나는 그러한 존재가 되리라. 그것인 이 순간부터 내가 죽는 날까지 내게 주어진 임무, 내 본성이 되리라.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을 바꾸지 못하리! (135)

"다수의 욕심을 만족시키면 나머지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거죠. 여전히 합의라는 허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비천한 노동자들이 불평을 해대면 국가의 권위는 사회보다 우선한다고, 사회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가 완화하면서 질서를 유지시킨다고 주장하시면 됩니다. 국가는 개인을 뛰어넘는 정의의 최고 구현체라고 말이지요. 만약 노동자들을 도저히 구슬릴 수 없다면? 그때는 '법을 지켜라!' 혹은 '공익을 우선하라!' 하고 외치면서 억압하세요. 그리고 그자들을 체포하고 그중 몇몇을 처형하세요." (146)

이 문장은 오늘날 위정자들이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방법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소수의 편익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요구할 때 국가나 사회를 개인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한다. 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법을 교묘하게 회피한다. 공익을 우선하지만 그들에게는 사익이 우선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실천하는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회의 리더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전에 그렌델은 그저 경계에서 인간을 지켜보는 것에 만족했다. 그러나 셰이퍼의 노래에 매혹된 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절망과 환멸이 시작되는 것이다. 셰이퍼의 노래와 그 노래가 그리는 인간의 세상은 아름답다. 인간이라면 이 아름다움에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렌델은 '저주받은 끔찍한 종족'이므로, 영원히 그 세계에 돌아갈 수 없고 경계 바깥을 헤매야 하는 존재다. 그러한 존재에게 아름다움이란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환멸을 일깨울 뿐이다.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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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존 가드너 John Garnder

존 가드너는 1933년 7월 21일 미국 뉴욕 주 바타비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아버지의 목장에서 일을 도왔으며 셰익스피어 애호가였던 양친은 문학 낭독회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12세가 되던 해, 인간으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관통하는 대사건이 벌어지는데, 남동생 길버트가 사고로 사망을 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이 되었던 트랙터를 몰고 있던 사람이 바로 존 가드너였기 때문에 그는 동생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았다고 한다. 
이스트먼 음악학교 예비 과정에서 프렌치호른 연주를 배웠고, 워싱턴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오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시, 소설, 희곡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고 중세 문학 연구자로서 중세 영문학 작품과 길가메시 신화를 번역 출간했다. 1971년에 출간한 <그렌델>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성공한 대표작이다. 1976년 <10월의 빛>으로 미국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그는 평생에 걸쳐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는데 그가 쓴 창작에 관한 글들은 글쓰기 교재의 고전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1978년에 쓴 문학비평서 <도덕주의 소설에 대하여>는 문학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그 일로 가드너는 <뉴욕타임스>의 표지에까지 등장할 만큼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가드너는 그 책에서 '소설의 도덕성이란 종교적이거나 문학적인 협소한 지평에서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고, 그런 의미에서의 도덕적 감각을 지닌 현대작가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 해도 유행하던 허무주의에 빠져 있을 뿐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작가로서의 인생뿐 아니라 애정사 또한 질곡이 많았던 그는 1955년 사촌인 존 루이스 패터슨과 결혼해 자식도 얻었으나 이혼했으며, 후에 1980년 시인인 리즈 로젠버그와 재혼했으나 또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1982년 10월 14일, 수잔 손튼과 결혼하기 불과 며칠 전에 펜실베이니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2006년 그의 작품 <그렌델>은 미국에서 오페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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