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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40]할매의 탄생_우록리 할머니들의 생애구술사로 보는 인생 철학

by bandiburi 2023. 6. 4.

사라지고 있는 농촌 여성 노동에 관한 구술은 여성사이자 노동사이며, 농업의 역사이자 지역사이고, 생활사일뿐더러 복식사이고 음식의 역사다. 누린 사람들의 취향과 문화가 아닌 몸으로 만든 사람들의 역사여서 더욱 꼼꼼히 묻고 기록하려 했다.(456)

<할매의 탄생>을 잘 요약한 말이어서 인용했다. 한반도에는 수많은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있다. 도시로의 이동과 저출생 고령화로 인해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 60대 이상의 고령층만이 남아 있다. 시골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변하고, 전원주택 등을 찾아 유입되는 인구도 있다. 하지만 원주민들과 서로 융화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저자는 우록리라는 마을을 방문에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들을 인터뷰하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진한 사투리 그대로 책으로 담았다.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고 구어체를 글자로 옮겨놓아 읽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투리에 담긴 그녀들의 진심이 온전히 전해지는 장점이 있어 좋았다.

책의 주인공들과 유사한 연배의 부모님을 시골에 두고 있고, 비슷한 농촌 환경의 변화를 직접 체감하고 있어 유익하게 읽었다. 특히 부모님의 삶에 대해서도 구술한 그대로 책으로 옮기는 작업을 계획해 본다. 부모님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가면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그 자체가 소중한 역사가 될 수도 있다. 최소한 가족 내에서 공유할 수 있는 역사는 될 수 있다. 자서전은 좀 거창하고 이 책과 같이 생애구술사 정도면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래는 책에서 할머니들과 저자의 대담 중에서 남기고 싶은 글과 느낌을 정리했다.


우리가 미누리(며느리) 할 때는 그래도 어른들 집에 모시가 죽을 때꺼정 집에서 똥오줌 받아내고 안 했능교? 오새는 마 전부 갖다옇고. 그때만 해도 잘했는 택이지. 그게 법이라 다들 그랬는 거라. (17)

어르신이 잘 하신 거예요. 살던 집에서 그렇게 가시니 좋지요. 병원에 가면 곧 숨넘어갈 사람한테 인공호흡기 달고, 혼자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죽지도 못하고 살다가, 결국 부인이랑 자식도 없이 혼자 숨넘어가버리고. (374)

정신 오락가락카믄 어떻고, 치매 좀 걸리마 어떻노? 마실에 그대로 혼차 살았어도 그렇게는 안 갔다. (...) 내는 그렇게 안 죽고 싶다. 집에서 죽고 싶다. 내내 살던 여 마실서 죽고 싶다 카이. (378)

집에서 아픈 부모를 돕던 시대가 있었다.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부모를 보낸다. 현재의 직업이 부모와의 관계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결국은 돈과 인간관계의 문제다. 우리는 요양원의 실태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책에서도 치매가 있는 어르신이 마을에서는 도움을 받아 살아갔지만 요양원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내용이 담겼다. 이를 보고 할매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는 요양원보다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돈보다 사람 간의 관계와 시간이 더 소중하다. 

많이 배워가 돈 많은 사람들은 우예 살길을 만들겠지만서도 세상이 망가지면 마 그 사람들도 살 데가 없어지는 거라예. 지네만 살길 찾아대녀봤자 그기 다 막힌 길인 기라. 살아보이 그럽디다. 돈으로 안 되는 거도 많고, 외려 돈 따문에 망가지는 거가 많습니다. 부모 자슥 간도 그렇고 넘들하고도 그렇고 돈이 다 좋은 게 아닙디다. 이 깡촌서도 보마 돈 벌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웃 간에 싸움이 나고 미워지고 그랬거든요. 내도 그렇고 다린 사람들도 그렇고. 그때는 욕심 채우니라꼬 몰랐는데 이제 죽을 날 가차이 놓고 보이 그게 다 헛짓이라, 그래 보인다 카이. (106)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할매의 돈에 대한 철학이다. 돈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미움이 생기고 경쟁하려 한다. 가까운 이웃도, 가족들 사이에도 그렇다. 모두가 헛짓이다. 욕심이었다고 고백하는 할매의 깨달음이 강하게 머리를 두드린다. 



담뱃잎이 독해가 그런 거제. 담뱃잎을 따는 기 한참 더울 때거든. 딱 삼복 때라. 그러이 안 그래도 더운데, 담배 일 그기 아주 힘든 거라. (274)

대학교 시절 부모님이 담배농사를 지으셨다. 무더운 여름에 담배를 따고 엮고 말리는 과정을 도와드렸다. 더위로 힘들 때면 그 시절을 되돌아본다. 참 힘든 게 담배농사다. 우록리에서도 돈이 되는 농사일이 담배농사였다고 한다. 농촌은 어디나 비슷했다. 

엄마 있을 때는 엄마가 가로막아 몬했고, 오매 가고는 동상들이 내 말을 들을라꼬를 안 해가 몬했어. 그라이 내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기라. 내가 이제 와가 집이 누구 거고 돈이 누구 거고를 따지자는 기 아이라. 거는 마 다 끝난 기라. 다문 내랑 앉아가 얘기 좀 하자는 기라 (...) 이제라도 동생들하고 잘 지내고 싶어서라. (303~304)

할매들마다 구구한 사연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사연이 있다. 어머니로 인해 동생들과 사이가 멀어진 할매가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동생들과 여전히 거리가 있다. 그녀에게 소망은 지금이라도 동생들과 화해하고 자주 만나 이야기하는 거다. 화목한 가정을 가졌다면 그 자체로 행복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취미 없으마 암만 봐도 모르고, 취미 있는 사람은 돌라 캐, 돌라 카믄 주고. 그래저래 살다보마 여도 살기 좋지. 공기 좋제, 물 좋제, 마음대로 나다닐 데 많제. 여행이니 문화생활이니 그런 꿈은 마 한 개도 못 꾸니 그기 아숩고, 어떤 때는 갇혀 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런 기 뭐 별거 있을까 싶기도 해. (325)

그냥 철없을 때 생각으로 막연히 부러벘던 거라. 나만 촌구석에서 처지는 거 같고, 지금 생각하마, 도시생활이 뭐 안 좋다 이거는 아이고, 그거대로 사는 방식이 있고 장점이 있고 하는 거제. (...) 근데 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에 남아 있기 잘했다 싶은 기라. (...) 이제는 자연 좋은 거를 알게 되고 보게 되고 그런다 그 말이라. (334)

자연헌티 배울 생각을 해야 하는 기라. 불편하고 힘든 거도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자연이랑 사람이랑 어울려 살 생각을 해야 되는 거지. 근데 마 자연헌테서 저 좋은 거 챙길 생각만 하는 기라. 그기 사람도 망가지고 자연도 망가지는 길이라. (335)

이 문장을 보며 어머니가 떠올랐다. 시골로 시집오지 않고 도시로 돈 벌러 갔더라면 도시에서 정착해서 편하게 살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말씀하셨다. 할매들의 말도 비슷하다. 한창 산업화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친구들의 삶과 비교할 수 있는 연배의 할매들이다. 자신은 시골에 갇혀 있고 발전과는 동떨어진 낙후된 삶을 사는 열등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60세가 넘어서의 생활을 비교하면 도시보다 시골이 좋다. 인간관계를 지속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퇴가 없는 일을 가지고 계속 몸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무리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병원이 멀리 있는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근데 그런 거 없이 아예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문제라.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으니 노후에 여서 살라꼬 늙기 전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예. 그 사람들이 동네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인사하고, 동네 일 의논하는 그런 거를 아예 안 할라꼬 하는 기라. (...) 아무캐도 여에 오래 사는 사람들이 나이도 많고 하이, 노인들 생각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괘씸치. (331)

원주민과 새로 마을로 들어온 사람들과의 갈등이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지나친 간섭을 싫어한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서로를 잘 알고 상부상조, 품앗이가 기본이다. 사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더욱 이해 못 할 괘씸한 태도로 보인다. 고향 마을에도 귀촌한 사람들이 있다. 일부는 잘 소통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또는 정착하나 싶었는데 다시 훌쩍 떠나는 경우도 있다. 

많이 배워서 도둑질하는 놈이 훨씬 많아요. 적게 배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착하게 살아요. (369)

돈이나 마이 처무울라 카는 기 무신 중이가? 세상이 그래 돼삐있다. 그래가 내 이제 절에를 안 간다 카이. 절에 안 가도 기도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 사는 게 기도라. (373)

우록리 근처에 있는 절에서 수목원으로 수익사업을 하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종교가 일종의 새로운 신분제도처럼 특정한 사람을 위한 집단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는 다른 직업에 비해 특혜를 받으며 무위도식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종교가 본연의 역할이 아닌 돈을 추구할 때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했다. 우록리 할매들은 중은 중답게 살기를 바란다. 



김충신: 임진왜란 때 한국에 귀화한 일본인.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조선을 침략했으나, 곧바로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했다. 이후 우록동(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정착해 살면서 가훈 향약 등을 마련하여 향리교화에 힘썼다. (437)

김충신이라는 분이 일본 장수였지만 조선으로 귀순한 사람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접했다. 이후로 우록리 지역에 정착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왜 귀순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이었다. 

한 번도 깡촌을 벗어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8090세대 여성 노인들과 달리, 60대 여성들에게서는 도시를 향한 욕망과, 도시로 떠난 어릴 적 친구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엿보인다. 한편으로는, 도시도 별거 아니더라는 혹은 더 불안하고 각박하더라는 깨달음이 있기도 하다. (466)


독서습관 740_할매의 탄생_최현숙_2019_글항아리_230606


■ 저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사. 저서로 <할배의 탄생>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가 있고, 공저로 <이번 생은 망원시장>이 있다.

천주교로 인해 사회운동을 시작했고, 민주노동당 여성위원장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후 요양보호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서 노인 돌봄노동에 몸담아왔다. 

노인들을 만나면서 구술생애사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근간으로 어머니의 노년을 지켜보며 그 생애사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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