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도서관 기증코너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중국 소설가 모옌의 <인생은 고달파>를 발견했다. <붉은 수수밭>이란 영화의 원작 소설가로 알려진 모옌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한글 번역본은 전체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0년 1월 1일부터 주인공 서문뇨가 염라대왕 앞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시작된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195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서문뇨가 자신의 마을에서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며 겪는 내용을 담았다.
인민공사가 설립되기 전에 홍태악이 거의 포효하듯이 우리 주인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남검, 네가 고밀현에서 유일한 개인농이다. 너는 반동의 전형이다. (146)
우리 소, 용감하고 사람과 교감할 줄 아는 우리 소가 뒤에서 계속 사납게 쫓아갔다. 고개를 숙인 채 쫓아가는 소의 두 눈에서 붉은빛이 나와 사방으로 퍼지는데 그 빛을 따라 역사의 시간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230)
중국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무엇을 추구했고 그 속에서 인민들의 삶은 어땠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서문뇨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랐지만 나귀로, 소로, 돼지로 생명을 시작하면서 인간과 짐승의 특징을 모두 보여준다. 자신이 죽은 뒤에 세 명의 부인들과 자녀들, 그리고 머슴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짐승의 입장에서 지켜보며 일부는 개입한다.
옛날 철강제련운동 때 우리 검둥이 나귀를 타고 곳곳을 시찰할 때 사람들이 그에게 '나귀 현장'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홍위병들이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 노선을 가는 반동들이라고 문혁 때 비판당한 일파-옮긴이)들을 거리에 끌고 다니면서 조리돌릴 때 볼거리와 재미로 사람들을 더 끌어들이려고 놀이패들이 쓰던 종이나귀를 태운 것이다. (261)
나무들이 매우 크고 뿌리가 발달한데다 마을 사람들이 큰 나무를 숭배하는 심리까지 더해져서 이곳 나무들은 1958년 제련운동과 1972년 양돈운동 때에도 사라지지 않고 무사히 넘겼다. (500)
일련의 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휘둘리는 인민들의 모습, 인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가벼운 인민의 목숨, 그리고 나귀, 소, 돼지로 거듭나는 서문뇨의 동물적 본능과 인간적 관계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펼쳐진다. 인민공사, 개인농, 제련운동, 양돈운동, 주사파, 홍위병 및 문화대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녹아들어 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2권이 기대된다.
"혼자 개인농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 의미 없다.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 그런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싶어 그런다. 다른 사람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단 말이다." (342)
내가 죽어야 전 현에서, 전 성에서, 전국에서 유일한 흑점이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죽지 않는다. 저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버틸 방법이 없다만, 나 스스로 죽길 바란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난 잘살 것이다. 전 중국에 이 흑점을 남길 것이다!" (347)
서문소는 우리 아버지의 땅에서 죽었다. 그 모습은 문화대혁명의 물결 속에서 정신이 나갔던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들게 만들었다. 서문소야, 너의 행동은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었다. (371)
(...) 50년대 사람들은 비교적 순수했고, 60년대 사람들은 열광적이었고, 70년대 사람들은 겁이 많았고, 80년대 사람들은 남의 눈치를 보고, 90년대 사람들은 지극히 사악했다. 내가 서둘러 뒤에 일어난 일을 당겨서 이야기하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막언녀석이 즐겨 쓰는 방법인데 나도 모르게 그 녀석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473)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887
독서습관 720_인생은 고달파 ①_모옌_2008_창비(230423)
■ 저자: 모옌
본명은 꽌모예. 1955년 중국 샨뚱성 까오미현에서 태어났다. 소학교를 중퇴한 뒤 공장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78년 군 복무 중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해방군예술학원 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베이징사범대, 루쉰문학원 창작연구생반을 졸업하여 문예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단편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1985년 <투명한 홍당무>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고, 그 작품의 일부를 장이모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면서 모예의 작품이 전 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밖에 <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1988), <술의 나라>(1993), <풀을 먹는 가족>(1993), <풍유비둔>(1995), <탄샹싱>(2001), <사십일포>(2003), <인생은 고달파>(2006)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삼십 년 동안 농촌 배경의 소설만 창작해 온 모예은 현재 중국어권 작가 중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2]인생의 밀도_IT감수성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사유 및 기록하는 만족스런 삶 (0) | 2023.04.26 |
---|---|
[721]인생은 고달파 ②_서문뇨가 남천세로 환생까지 반세기 동안 중국 농촌의 변화 (0) | 2023.04.26 |
[719]항암제로 살해당하다 ③_암 자연치유편_음식 몸 마음 환경을 바로잡고 암 마피아를 경계하자 (1) | 2023.04.23 |
항암제로 살해당하다 ②_웃음의 면역학편_암은 불치병이 아니며 생활습관과 식습관이 중요 (0) | 2023.04.22 |
[717]대한민국 부동산을 보는 눈_저성장 저출생 시대 부동산은 여유있게 접근하자 (0) | 2023.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