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에게 절망할 권리가 없다>에서 여러 번 인용된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작품 <양철북> 1권을 읽었다. 작가 유시민이 '알릴레오 북스'에서 <양철북>의 도입부가 독특해서 긴장감을 가지고 읽지 않을 수가 없다고 소개해서 도입부를 유심히 읽었다. 역시 아래와 같이 선언하듯이 시작한다.
그래, 사실이다. 나는 정신 병원에 수용된 환자다. (...) 그래서 나는 이 문 뒤의 감시자가 내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내 생애의 일들을 그에게 들려주곤 하는 것이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감시 구멍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나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9)
왜 '양철북'이란 제목을 지었을까란 궁금증을 가지고 소설 속으로 들어갔다. 주인공 오스카가 자신의 탄생에 대해 소개하면서 자신의 조모와 조부의 이야기고 시작한다. 조부인 콜야이체크가 쫓기다가 4겹의 치마를 입는 조모의 치마 속으로 도피해서 추격자를 따돌린다. 자신의 어머니의 탄생을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암시했다.
자신의 어머니 아그네스 콜야이체크는 독일인 마체라트와 결혼하지만,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은 폴란드인 얀 브론스키다. 그래서 아그네스는 마체라트가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얀 브론스키와 사랑을 속삭인다. 그래서 오스카는 자신의 실제 아버지는 얀 브론스키일 거라고 생각한다.
오스카는 1924년에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정신적 성장이 완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세 살에 양철북을 선물 받으며 육체적인 성장을 멈춘다. 태아로 돌아가려는 욕구를 막아주는 양철북은 그의 분신과 같다. 누군가 양철북을 빼앗으려 하면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는 주변의 유리를 깰 정도다. 이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소개된다.
나는 태어났을 때 이미 정신적 성장이 완결되어 있어서, 나중에는 단지 그것을 확인하기만 하면 될 뿐인 그러한 총명한 갓난아기였다. 태아였을 때에는 외부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귀를 기울였으며, 양수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구 밑에서 양친의 입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최초의 말들에 비판적으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62)
나의 장래와 관련된 이러한 모든 걱정 말고도,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마체라트가 나의 반대나 결심을 이해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존경해 줄 수도 있는 기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스카는 이해받지 못한 채 고독하게 전구 밑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60년이나 70년 후 모든 전원이 일시에 단전되어 전류가 끊길 때까지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리라고 추론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전구 아래에서 인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삶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다만 나에게 약속된 저 양철북만이 당시 태아의 머리 위치로 되돌아가려는 나의 욕구가 강력하게 표출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65)
돈상자를 들고 짤랑거리지 않기 위해 나는 북에 매달렸고, 세번째 생일날 이후 단 1센티미터도 성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세 살짜리 어린애 그대로 머물렀지만, 세 배나 현명한 어린애였다. (...) 하지만 오늘날 그 어떤 어른이 영원히 세 살에 머무르는 양철북 연주자 오스카에 대해서 눈길을 주고 귀를 기울여줄 것인가? (84~85)
30살의 오스카가 정신병원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주변 인물이나 장소에 대한 자세한 사연을 각 장마다 소개한다. 상황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어 상상하며 읽어야 하고, 직접적이지 않은 표현은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출 필요도 있다. 쉽지 않은 책이다. 독일과 폴란드의 다양한 지명과 인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1권에서는 오스카의 탄생과 관련한 가족과 자신의 성장 이야기와 독일이 점차 히틀러 중심으로 바뀌며 전쟁 중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된다. 초기에 어머니 아그네스가 사랑했던 폴란드인 얀 브론스키는 총살당한다. 어머니도 죽고 아버지 마체라트는 30살이나 어린 마리아와 재혼한다.
오스카가 외모는 세 살 어린애지만 청소년기를 겪으며 성적인 부분에 눈을 뜬다. 마리아와 오스카 간에 벌어지는 탐색은 이런 청소년기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오스카야, 너는 겨울날 조용히 시내를 산책하다가 가지고 싶은 물건에 홀딱 반해 버린 그 사람들의 사소한 욕망이나 그저 그런 정도의 평범한 욕망을 만족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쇼윈도 유리 앞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인식하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 이들은 자신들 속에 도벽이 도사리고 있음을 결코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너의 소리가 그들을 도둑질하도록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197~198)
오늘 나는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는 말할 것이다. 그를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실패였노라고, 어찌 된 영문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우선 그로부터 북채를 빼앗았고 또한 양철북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그 북채로 그 가짜 예수 앞에서 처음에는 조용하게, 나중에는 성급한 교사처럼 한 곡을 시범으로 쳐보였다. 그의 손에 다시 북채를 쥐어주어서, 그가 오스카로부터 배운 것을 연주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20)
작가 귄터 그라스는 자신의 청소년기의 전쟁 경험을 오스카를 통해 회상의 형식으로 전하고 싶은 것으로 생각된다.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2권을 모두 읽고 나면 좀 더 <양철북>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겠다. <양철북> 영화를 통해 이해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겠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27
독서습관 671_양철북 1권_귄터 그라스_2019_민음사(221225)
■ 저자: 귄터 그라스
1927년 10월 16일 폴란드의 자유시 단치히 교외 랑푸우르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인, 어머니는 가톨릭계 카슈바이인이었다.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는 강제로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당하기도 했고, 공군 보조병, 전차병 등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1954년 서정시 대회에 입상하면서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같은 해 전후 청년 문학의 대표 집단인 '47그룹'에 가입했다.
1958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작 <양철북>의 미완성 초고를 47그룹에서 강독하여 그해 47그룹 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음 해인 1959년에 <양철북>을 출간했다. 이후 <양철북>으로 게오르그 뷔히너 상, 폰타네 상, 테오도르 호이스 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3년 <개들의 시절> 출간으로 <양철북>, <고양이와 쥐>와 함께 '단치히 삼부작'을 완성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미국,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자신의 작품들을 강독했으며, <국부마취>, <넙치>, <텔크테에서의 만남> 같은 대작들을 출간했다.
1986년 인도 콜카타를 여행했다. 1992년 소설 <무당개구리 울음>을 출간했다. 1990년대에는 독일 통일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대작 <아득한 평원>을 출간하여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1999년에는 그의 전 생애를 갈무리하는 장편 <나의 세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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