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2권을 읽었다. 다양한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장별로 단편소설처럼 이어진다. 장과 장이 서로 연관이 되면서도 다르다. 독자에게 특히 어려운 점은 단순한 스토리 전개가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 장치를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읽기는 하지만 집중하지 않으면 잡념으로 빠지기 쉽다.
더 이상 무얼 말하란 말인가. 전등 아래에서 태어나고, 세 살의 나이에 일부러 성장을 멈추고, 북을 얻고, 노래로 유리를 부수고, 바닐라 냄새를 맡고, 교회 안에서 기침을 하고, 루치에게 먹이를 주고, 개미를 관찰하고, 다시 성장을 결심하고, 북을 파묻고, 서방으로 가서 동쪽을 잃고, 석공 일을 배우고 모델 일을 하고, 다시 양철북으로 되돌아가서 콘크리트 요새를 시찰하고, 돈을 벌고, 손가락을 보관하고, 손가락을 선사하고, 웃으면서 도주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서 체포되고,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되고, 그 후에 석방되어, 오늘 30회째 생일을 축하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검은 마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 아멘 (488)
<양철북> 2권 후반부에 '양파주점' 부분은 재미있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양파를 통해서 억지로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사람들, 눈물을 흘리며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또한 '무명지'에서 오스카가 왜 정신병원에 감금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정신병원에서 현재 이야기하는 화자가 먼 길을 돌아서 다시 책의 말미에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자는 애인인 폴머로부터 몇 번이고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마음은 돌처럼 굳어버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거듭해서 쉬무의 값비싼 양파 주점에 다녀야만 했던 것이다. (384)
독자 여러분 중에서 눈치깨나 있는 분은 이미 알아차리셨겠지만, 세번째 교사란 바로 나의 교사이면서 스승인 베브라, 오이겐 왕자의 직계이며 루이 14세 가문 출신인 난쟁이 광대 배우 베브라를 말한다. 그리고 내가 베브라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물론 그의 옆에 나란히 있는그 부인, 즉 위대한 몽유병자이자 영원한 미녀인 로스비타 라구나를 포함한다. (12~13)
그렇지만 긴 여행을 목전에 두고 있었으므로 나는 모레를 기약하면서 교회 현관으로부터 고수(鼓手)의 등을 돌렸다. 예수가 나에게서 도망치는 일은 없으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42)
<양철북>은 쉽지 않은 소설이다. 그래서 처음 읽는 내게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유튜브를 통해 독자평을 봤는데 '영화를 먼저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소설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라고 한다. 나는 소설을 먼저 어렵게 읽었고,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번역자의 해설(아래 인용)을 통해 알게 되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
오스카라는 예술적 형상을 매개로 그라스는 20세기 초반과 중반의 독일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스카의 개인사는 거의 언제나 독일의 역사와 병행한다. 예컨대,
① 1927년에 오스카 자신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지하 창고에서의 추락 사건은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독일 소시민 계층이 급격하게 나치즘을 추종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② 어머니의 외사촌 형제이자 애인이며 오스카의 실제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브론스키의 죽음은 폴란드의 패배를 의미한다.
③ 오스카가 그레프 부인과 벌이는 질퍽거리는 성교는 수렁에 빠진 러시아와의 전쟁을,
④ 아버지 마체라트의 죽음은 독일 제국의 붕괴를 암시한다.
⑤ 그리고 화물열차 안에서의 오스카의 성장은 나치 독일의 패망과 일치한다.
⑥ 또한 양파 술집에서의 우스꽝스러운 눈물 짜내기 장면은 슬퍼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세태에 대한 풍자라고 하겠다. 오스카의 머릿속으로는 정상적인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외형상으로는 난쟁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⑦ 18세기 독일 시민 계급의 예민한 지성이었던 시인 횔덜린이 <생각은 많으나, 행동은 빈약한>이라고 하면서 당대의 독일 지성이 처한 딜레마를 표현한 것처럼, 오스카라는 인물은 이념과 현실의 참담한 괴리에 짓눌려 있는 20세기 초중반 독일 시민 사회의 딜레마를 나타내는 또 다른 전형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⑧ 어쨌든 2차 세계대전 후 오스카는 조금 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다름아니라 독일 시민사회의 정신적 성장에 대한 작가의 기대를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작가는 독일 시민 사회가 양차 대전을 통해 지독하게 혼쭐이 났으니, 이제 각성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 작가 그라스의 문제 의식은 이 같은 <소시민 의식에 대한 해부>와 함께 <역사적 책임>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가 있다. (502~503)
운명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이라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의 추정상의 아버지는 당을 꿀꺽 삼키고 죽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아니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칼뮈크인의 옷에서 방금 잡은 이를 손가락 사이에서 눌러 으깨고 있었다. (159)
이제 추정상의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너는 왜 <자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두 개의 푸른 유리병으로 곡예를 하고 있느냐?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보기라도 하겠다는 심사인가?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의문시하는 저 말라비틀어진 소나무를 향해서인가? (172)
그리고 이제는 <자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아니라 <자라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관 위에다 북을 던졌다. (...)나는 북채도 잇따라서 던졌다. 북채는 모래 속에 꽂혀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것은 먼지떨이 시대 이래로 내가 사용하던 북이었다. 전선 극장의 예비품 중의 하나였으며, 베브라가 내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스승은 나의 이 행동을 어떻게 판단할까? 예수도 그 양철을 두들겼었다. 상자처럼 네모나고 커다란 마마 자국이 있는 러시아 병사도 그것을 두들겼었다. (177)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막대한 배상금에 허덕이는 독일 민중의 지지로 성장한 히틀러의 파시즘이 새로운 어둠을 독일인들에게 가져왔다. 죽음이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는 암울한 시대였다. 옆집 아저씨와 상점 아주머니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시대다. 그런 시대적 환경에서 작가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2차 대전 패전으로 신음하는 독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전쟁을 겪는 과정을 오스카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보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죽음과 폭력의 위험 속에서도 주변 인물들은 죽게 되지만 오스카는 세 살 아이의 모습으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종일관 살아남아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작가의 고심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다시 몇 시간에 걸쳐 연주를 계속했다. 나의 할아버지가 뗏목 위를 건너서 도망치던 일을 충분하게 변주했을 때, 우리는 약간 지치기는 했으나 만족해하면서 이 콘서트의 마지막을, 사라져 버린 방화범이 기적적으로 구조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는 찬가로 장식하였다. (350~351)
귄터 그라스는 1927년 10월 16일 단치히 근교인 랑푸우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 태생으로 식료품 가게 주인이었고, 어머니는 폴란드령 카슈바이의 빈농 출신이었다. 이처럼 그는 부계와 모계가 서로 다른 폴란드계 독일인으로서 전형적인 소시민 출신이었다. 그의 소년기는 당대 대부분의 독일인들과 마찬가지로 1933년 히틀러의 정권 장악이라는 사건으로 대표되는 시대적인 참상의 영향하에 있었는데, 이것이 이후 그의 삶과 문학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단치히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둔 - 그러므로 그의 정식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이다 - 그라스의 인생유전은 다채롭기만 하다. 1942년에는 독일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으로 전체주의의 멍에를 강요했던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하게 되었고, 1943년에는 공군 보조병으로, 1945년에는 전차병으로 종군한다. 전쟁 동안에 부상을 입은 그라스는 바이에른에 있는 미군 관할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다. 종전 후에는 생계를 위해 농사일을 하였고, 광부로 일한 적도 있다.
1947년에는 뒤셀도르프로 와서 석공 및 석각 견습 생활을 하고, 재즈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하는데, 이때의 경험은 <양철북> 제3부에 아주 자세하게 반영되어 있다. 1948년에서 1949년까지는 뒤셀도르프 예술 대학에서 석판화와 동판화를 정식으로 배운다. 1951년에는 팔레르모까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1952년에는 프랑스로 무전여행을 떠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포장지에 그림을 그리고 종이 조각에 글을 쓰기도 하면서 창작 수업을 한다. (495)
무엇보다도 그라스는 일상성 속에 잠재해 있는 폭력성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인간이 원래 잔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약하기 때문에 폭력적 범죄에 동원되는 역설적 과정을 리얼하게 파헤치는 것이다.(500)
독서습관 672_양철북 2권_귄터 그라스_2019_민음사(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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