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나의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이삼십 대 여성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저자가 '페미당당'에서 여성 운동을 하고,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상담사례와 달리 우울증에 대한 학문적 접근과 이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대한 비판은 생각의 긴장을 필요로 한다. 소감을 세 가지로 포스팅한다.
첫째, 가난이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삼십 대 여성들은 회복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족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고, 직장도 없이 수중에 달랑 3,000원만 가지고 있는 상태에 있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있다. 반면 카페 안에서 3,000원이 넘는 커피를 마시면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가 카페 안을 보는 심정이 책에 등장한다.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도 어디로 갈지 찾아야 하는데 그들은 카페의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아주 기본적의 의식주와 생리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없는 비참한 처지의 자신을 마주 봐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50만 원이나 100만 원이란 돈이 주어진다면 훨씬 더 해방감을 느끼고 삶에 대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글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청년들에게 독일처럼 자립할 때까지 일정 금액을 매달 지원하는 것을 지지한다. 공부하고 싶을 때 아르바이트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준다. 주변인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부여한다.
특히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가난과 학대로 고통받는 젊은이들이 있어 이들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고, 주어야 한다.
둘째, 우울증이란 진단과 약 처방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과거에 우울증이란 진단이 없었던 시기에 비해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울증이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상담이나 약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울증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가 우울증의 원인에 대해 가족과 연애, 사회의 영향으로 구분해서 사례 중심으로 설명했다. 가정환경이 중요하고 아이들에게 충분히 자기주장과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안정감을 줘야 한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런 가정도 있구나, 이렇게 남녀관계가 진전될 수도 있구나라며 놀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이 바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자유와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를 통해 사회를 개선하고 공동체 중심의 돌봄이 필요하다.
과거의 시골처럼 공동체 중심의 사회가 도시화되며 파편화되었고, 사회적인 관계가 단절되었다. 아파트는 이웃이란 말이 무색하게 만들고 우리 가족만을 생각하게 했다.
또한 모든 것이 돈에 의해 포장된다. 개인의 건강도, 개인의 행복도 내가 구매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의해 평가된다. 타인이 사용하는 집과 차와 옷과 복장을 보며 자신의 행복을 바라보게 조장한다.
이런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공동체를 이루고 뒤처지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이 생각의 폭을 확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내와 딸에게 그리고 두 아들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내가 발견한 고통의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이 문장에 매달린다.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엄살 좀 부리지 말라고, 너희처럼 편하게 자란 세대가 어디 있느냐고, 너희가 가난을, 전쟁을, 민주화운동을 아느냐고 묻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새롭게 쓰일 고통의 기록, 그 첫 번째 옹호자가 되기 위해서 이 책을 쓴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의 고통부터 믿어야 한다. (41)
요컨대 자가검사 도구 CES-D는 우울증을 진단하는 도구가 아닌 우울 증상의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이고, 그 정도를 측정하는 데에 사용되는 기준점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CES-D와 같은 도구가 '우울증 자가검사 도구'로 자주 소개되지만, 이것만으로는 한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다. (61)
우울증 당사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지 못해 왔다. 아프다고 말하면 엄살이라고 답하는 상대에게 지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립된다가 고통이 심화된 사람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이들의 고통을 승인하며 해방감을 준다. (75)
환자는 자신이 먹는 약이 무엇이고,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약을 복용한다. 일단 먹어보고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제야 의사에게 보고하고 약을 바꾼다. 다음 약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하는 데에 들이는 시간이 너무도 짧다. (84)
우리가 먹는 정신과 약 대다수는 그 작용기전(약이 신체에서 작용하는 방식)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 약의 역사는 너무도 많은 우연과 실수, 뜻밖의 발견과 직감, 그리고 제약회사의 마케팅으로 이루어져 있다. (89)
우울증과 제약회사의 관계를 둘러싼 이야기는 음모론처럼 들리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항우울제가 그토록 많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우울증 환자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항우울제가 탁월하다면 우울증 환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논리적인 결과이지 않을까? (95)
이러한 '우울의 약료화'가 우울증은 심각한 질환이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고, 병원에 가면 약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이중 메시지를 준다고 말한다.
항우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관리 방법의 하나로 여겨지면서, 개인의 고통에 내재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사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로 환원하게 만든다고도 지적한다. (103)
그는 스캇 펙 Scott Peck의 사랑의 개념을 빌려 와 사랑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려는 의지"로 다시 정의한다. (158)
사랑을 받는 일은, 사랑을 주는 이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거나 곁에서 사라지면 멈춰진다. 사랑은 주는 일은, 우리 마음 안에 타인을 향한 사랑이 남아 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186)
모두가 바쁘고 힘들지만 과중한 업무와 자기 관리를 해내는 상황에서, 이를 버거워하는 나는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나의 고통은 제대로 생활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이때 그나마 속 시원히 나의 고통을 인정해 주고 '잠시 멈춤'을 허용하는 것은 진단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과한 노동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를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환자로 본다는 뜻도 된다. (195~196)
또 이것은 앞서 지적한 "한 번도 온전히 받아들여져 본 적 없는 경험"과도 연결되어 있다. 존재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무언가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어떤 역할을 해야만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202)
가난은 건강을 해치고 스스로 밥을 먹을 자격이 있냐고 묻게 만든다. 숨 쉬듯 절망을 느끼게 되고, 아무리 시도를 해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기력에 시달린다.
살아남으려면 누구든 자기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 기술을 익히든, 학위를 만들든, 하다못해 밥을 먹어서 자신의 몸을 돌보든 말이다. 가난은 자기 투자를 막음으로써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게 막는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은 당연히도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206)
언젠가 한 번에 100만 원이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너무 삶이 살라지는 거예요. 최근 월세가 비교적 싼 집으로 이사를 왔거든요. 덕분에 당장 일을 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돈이 통장에 있고요. 인생 처음으로 그런 상태에 있으니까, 지난 6년 동안 살았던 게 뭐였는지 더 잘 알겠더라고요.
5,000원이 없어서 지금 당장 죽어도 될 것 같은 그 절박함이 단지 내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걸 잘 알겠어요. 이건 오히려 돈이 생길 때만 알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누가 옆에서 당장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통장에 얼마가 생기니까 알겠는 거예요. (216)
한 사회에서 '힐링'은 이제 개인의 몫이 됐다. 그것도 돈을 주고 소비해야 하는 상품과 서비스로서의 '힐링'이다.
이러한 관점이 무서운 이유는 무엇보다 이 일련의 과정이 자발적으로 추동된다는 점에 있다.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거나 공동체를 꾸리거나 관계 내에서 돌봄을 주고받기보다는 PT를 끊고, 1회에 10만 원이 넘는 임상심리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먹고, 원데이 클래스 힐링 글쓰기 수업을 듣는 쪽을 기꺼이 선택한다. (239)
■ 저자: 하미나
1991년생 출생. 논픽션 작가.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학부에서 지구환경과학과 철학을 함께 전공했다.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는 길을 조금 틀어 과학사를 공부했다. 같은 시기 2016년 강남역 여성 표적 살인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여성 운동 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가로 지냈다. 이 시기에 깊어진 우울증을 고민하다 이를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대학원을 탈출했다.
생계를 위해 칼럼니스트, 과학 기자, 글쓰기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작가로 살기로 결심, <시사IN>, <한겨레21>, <한국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짧은 글을 기고하고 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그간의 연구와 만남, 고민을 한데 모은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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