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2018년 6월에 이 책을 보며 세상에는 평범하지 않은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 읽은 책 <화성의 인류학자>도 일곱 명의 환자를 소개한다.
저자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의사이면서도 환자의 병력과 면담을 통해 알아낸 사실들을 마치 소설처럼 읽기 쉽게 엮어내는 능력이 있다. 그의 책은 독자가 보호자나 환자 혹은 의사인 것처럼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여러 희귀한 질병을 접하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비록 의대를 진학하는 목적이 순수한 의도보다는 자본시장적 논리가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도 올리버 색스와 같은 의사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첫 번째 환자는 ‘색맹이 된 화가’ I 씨다.
평범한 60대 화가였던 그는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경험한 뒤에 색감을 잃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화려한 칼라가 아니라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해지는 노을을 바탕으로 낚시하러 가는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구분이 되지 않고 희미한 태양만 조금 보인다. 망막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서 보내오는 색채 신호를 처리하는 뇌의 문제라고 한다. 그의 삶은 교통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우리는 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런 사례를 보면 감사하게 된다. 단순한 교통사고나 어떤 외력으로 머리에 충격이 가해지기만 해도 우리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되고 그로 인해 알 수 없는 미묘한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만큼 뇌는 우리의 신체를 균형과 역할을 관장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두 번째 환자는 ‘마지막 히피’ 그레그다.
1960년대 히피 생활을 하다 크리슈나 의식에 빠져 사원을 다녔고 열렬한 신자로 변했다. 사원에서 독실한 신도 생활을 하면서 눈이 침침해지며 넋을 잃는 경우도 생겼다. 4년 후에 그를 만난 부모는 그가 변화된 모습을 보며 놀라 병원에 확인하니 거대한 종양이 뇌하수체와 양쪽 전두엽까지 번지고 뒤쪽 측두엽, 아래쪽 간뇌까지 뻗어 있었다.
인간의 의식과 내면세계는 과거와 현재, 경험과 의미의 끊임없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그레그에게는 내면세계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에게는 ‘다음’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삶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짜릿한 기대감이나 목표의식이 부족했다. (95)
결국 그의 기억은 뇌종양이 발달하기 전인 1960년대에 영원히 머무르고 그 이후의 삶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의 뇌는 부분마다 역할이 있다고 한다. 그레그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손상되고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역할이 사라진 사례다.
세 번째 환자는 ‘투렛증후군 외과의사’ 베넷이다.
말이나 행동을 참을 수 없어서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증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외과의사가 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례다.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인 베넷은 자신의 증상을 주변의 상황에 맞게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자제하고, 특히 외과수술처럼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일을 할 때처럼 집중할 경우는 그는 증상을 잊어버린다. 다만 집에서는 뭔가를 집어던지기도 해서 냉장고가 찌그러져 있고 벽에 구멍이 있다. 가족들 모두 그의 증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놀라운 점은 투렛증후군이 있지만 그는 유명한 외과의사라는 점이다. 지인의 자녀 중에 틱 증상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는 아이가 있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베넷을 보면 환자 본인도 의식하고 있고 상황에 따라 약간은 자제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네 번째 환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버질에 대한 이야기다.
버질은 40년 만에 백내장 수술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신약성경에도 예수가 눈을 뜨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버질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시각장애인은 비록 눈으로 보는 세상을 살지 못하지만 대신 청각과 촉각이 발달해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다. 40년을 이렇게 살아온 버질은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시각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뇌에서 가공해서 판단을 해야 한다. 이런 모양은 무엇이고 어떤 상황이라는 등등의 정보로 연결돼야 하는데 그런 연습이 어린 시절 되어있지 않아 뭔가를 인식하지만 정보로 사용되지 못한다. 공간지각력이 회복되지 않는다.
수술 전 컴컴한 세상에 너무나 적응을 잘했던 그레고리의 환자는 눈을 뜨자 처음에는 기뻐했지만 곧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난관에 봉착했고, ‘선물’이 저주로 바뀌면서 우울증의 나락으로 추락한 지 얼마 만에 숨을 거두었다. 사실 초창기 환자들은 대부분 환희가 지나간 뒤 새로운 감각에 적응하느라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발보가 강조했다시피 일부는 적응에 성공했다. 버질은 과연 도중에 좌절한 수많은 선배들과 달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224)
결국 그는 자신의 지팡이가 있어야 편안하고 글을 읽는 것보다 점자를 손으로 읽는 것이 훨씬 빠르다. 시각장애인 모두가 세상을 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해 보는 장이었다.
다섯 번째 환자는 ‘꿈에 그리는 풍경’의 프랑코다.
갑작스런 신경쇠약증이 걸린 이후 자신의 고향인 ‘폰티토’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이를 부름으로 생각하고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다. 너무나 세세하게 떠올라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폰티토를 여러 각도에서 사진처럼 그렸다. 하지만 실물과는 약간 다른 자신의 생각이 들어가 있다.
그의 그림으로 인해 폰티토가 되살아났지만 대한민국의 시골과 같이 젊은이들이 직업을 찾아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폐허처럼 퇴락하는 과정을 피할 수 없었다. 프랑코의 그림이 폰티토에 머물러 있고 그의 이야기가 그곳에 머물러 있어 평범한 대화는 어렵다.
여섯 번째 환자는 ‘자폐증을 가진 천재 소년’ 스티븐 월트셔다.
자폐증은 역사 이래로 인류와 함께 했다. 음악이나 미술, 수학 등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자폐증 환자들이 있다. 영화 ‘레인맨’에도 나온다. 스티븐은 눈으로 본 주변 환경을 기억했다가 순식간에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 복잡한 형상을 가진 대성당, 궁전 그리고 다른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낸다. 우리가 그린다면 여러 번 보고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스티븐이 그린 그림은 기억을 소환해서 2차원으로 그린 것일 뿐 스티븐의 생각이나 창의력이 들어가 있지 않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설명하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짧은 시간에 그려내는 능력이 비범한 것이다. 그래서 정상적인 화가와는 다르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지적으로 보인다.
마지막 일곱 번째 환자는 ‘화성의 인류학자’ 템플이란 자폐증을 앓는 40대 여성 교수였다.
자폐증을 앓는 경우 나와 너의 구분이 없어 자서전을 내기가 어려운데 그녀는 자서전도 출간했다. 그리고 동물학과 교수까지 되었다. 저자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자폐 증상을 보여준다. 자신의 학문적 업적에서 자폐를 가진 사람의 집중력이 드러난다.
그녀가 인터뷰 마지막에 한 말이 마음에 남는다. “ (…) 사람들은 대부분 유전자를 남기지만 저는 발상이나 글을 남길 수 있죠. (…) 권력이나 돈에는 관심 없어요. 죽은 뒤에도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거지. 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그래야 내 삶도 의미가 있죠.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라고요.”
■ 저자: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1933.7.9 ~ 2015.8.30)
올리버 색스의 소설에 가까운 독특한 병력 작성법은 인간의 의식과 두뇌 기능을 탐구하는 가장 통찰력 있는 방식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색스는 신경병 환자들의 병력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병리적 상태뿐 아니라 내면의 감춰진 부분까지 파고들어 질병의 습격으로 인해 달라진 인간의 존재 방식을 들여다본다. <화성의 인류학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쓰인 뇌신경병 환자들의 독특한 초상화다.
올리버 색스는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교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가 이듬해부터 베스 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과 뉴욕 대학을 거쳐 컬럼비아 대학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 영국 워릭 대학교 객원교수, 뉴욕 대학교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 등으로 재직하다 2015년 8월 30일 향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만난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고, 그 책을 통해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뉴욕 타임스>는 이처럼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 시인’이라고 부른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엉클 텅스텐> <뮤지코필리아> 등의 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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