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초에 양정무 교수의 강의를 듣고 그의 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여러 권 중에 최근에 나온 책 <벌거벗은 미술관>을 골랐다.
저자 소개란에서 저자가 유학 시절에 도서관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더 많이 찾았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설명하는 여행 가이드로도 유명한 학생이었다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재미있게 설명하다 보니 유명해졌을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지식도 정리가 되었겠지.
강연을 하고 책을 집필하는 활동도 결국은 여행 가이드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사람으로 보인다.
미술에 대해 저자의 설명을 따라 작품을 보고 이해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직접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서 본 것이 아니라서 기억에 남아 있는 체류시간이 짧다. 설명을 하려면 머릿속에서 맴맴 돈다.
그래도 저자에 따라 동일한 작품도 약간은 다른 각도에서 설명을 해주기에 늘 새롭게 다가온다. <벌거벗은 미술관>을 통해 얻은 점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파르테논을 보더라도 아는 만큼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이 책에 소개된다. 신전 상단에 페디먼트, 메토프, 프리즈라는 공간이 있고 이곳에 조각 작품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들에 대한 수탈의 역사가 있었다.
2015년에 두 아들과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경비를 아끼며 제한된 일정 속에 여러 곳을 방문하는 계획으로 여행을 했다. 파르테논 신전도 방문했다. 가이드의 설명 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기억에 담았다.
이 책을 보니 여행을 통해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든다. 양정무 교수와 같은 사람이 가이드를 한다면 더욱 좋겠다.
그래도 당시에 방문한 기억과 책의 설명을 접목해 지금이라도 이해했으니 방문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둘째,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을 현재의 팬데믹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며 과거의 전염병 관련된 작품들을 다시 보며 그림이 더욱더 깊이 이해된다.
특히 새의 부리 모양을 한 복장을 하고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를 그린 그림은 이번 팬데믹 경험을 통해 방역복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이라면 왜 그런 복장을 했을까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술작품도 하나의 작은 역사다.
각각의 작품을 만든 사람에 대한 가정환경이나 시대적 환경을 설명하며 작품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유사한 그림이나 조각도 시대마다 종교, 사회, 정치의 영향에 따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미술작품을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고 역사에서 미술작품을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가끔은 예술과 관련된 책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성해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빙켈만은 그리스와 별 관계가 없는 독일 출신이었습니다. 구두를 만드는 제화공 집안에서 태어나 드레스덴 근교의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가 문헌을 통해 고대를 발견하고 이를 예찬하는 책을 1756년 출간합니다. 그 유명한 <그리스 미술 모방론>이 빙켈만의 첫 히트작인데 앞서 언급한 그의 글들도 여기서 인용한 겁니다. 10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자에 빙켈만은 자신의 사상을 압축해 담았고, 이를 통해 유럽 지배층이 관심을 고전으로 돌렸습니다. (29)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일종의 '그랜드 투어'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랜드 투어란 당시 유럽의 상류층 자제가 20세 무렵 이탈리아를 2~3년 돌아보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은 가정교사와 보디가드 역할의 하인까지 동반해서 떠나는 호화로운 여행이었습니다. (35)
파르테논 신전의 상단에는 페디먼트 pediment, 메토프 metope, 프리즈 frieze라는 구역이 있습니다. 삼각형 지붕선을 따라 페디먼트가 자리하고 그 아래 메토프가 자리합니다. 안쪽 기둥 위를 따라 연속적인 띠처럼 구성된 공간은 프리즈라고 불립니다. (53)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보이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다시 말해 그리스 남성 조각들이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리스 미술에 드리워진 신비를 한꺼풀 걷어내면 드러나는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사실 그리스 남성 조각상은 크게 보면 전사 아니면 운동선수였습니다. 그리스 사회에서 스포츠가 전사의 신체 단련과 관계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운동선수조차도 군국주의적 함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 고대 그리스인들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다른 초월적인 것에 매달리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존의 문제를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이 인류의 역사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65~66)
손기정 선수가 이룩한 업적은 조각가 김복진에게도 벅찬 감동으로 다가갔을 겁니다. 당시 김복진은 조선중앙일보사에서 학예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 신문사는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 시상식 사진에서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삭제해 실었습니다. 이 때문에 신문사는 결국 폐간하게 됩니다. 김복진이 1940년에 제작한 조각상 <소년>을 여기서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 김복진은 이 소년상에서 이상화된 청년의 모습을 통해 미래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담아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72~73)
방금 본 것처럼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라간 아르카익 스마일이 고대 그리스의 남성 누드 입상인 '쿠로스'부터 여성 조각인 '코레 kore'에도 공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파이아 신전에서 나타나듯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미소는 일관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아파이아 신전의 조각상 제작에는 여러 다른 조각가 집단이 참여한 것 같습니다. (84)
그리스 연극은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이어질 만큼 현대 연극의 기원으로 평가됩니다만,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한다는 점에서는 오늘날의 연극과 달랐습니다. (91)
단체 초상화는 각 인물을 개별적으로 그린 뒤에 하나의 장면으로 합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구성은 아닙니다. 이 같은 형식의 단체 초상화는 일종의 공식 초상화로 모든 구성원이 굉장히 위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120)
계몽주의 사상을 주도하고, 전제군주제, 즉 앙시앙 레짐의 부조리함을 비판한 철학자들이 당시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거침없고 매서웠던 이가 바로 볼테르였습니다. 그의 사상은 후에 벌어진 프랑스혁명의 기반이 되어주었죠. 이런 볼테르가 초상화와 조각상에서는 웃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134)
진실의 미소에 뒤센의 이름을 붙인 것은 심리학자 폴 데크먼 Paul Ekman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진짜 미소는 입꼬리 근육이 올라가고 이마 근육과 눈 밑 근육이 내려가서 눈꼬리에 주름이 생겨야 한다고 합니다. 뒤센 미소와 반대로 감정 없이 억지로 웃는 미소를 일러 '팬암 미소' Pan Am smile라고 하는데요. 눈가 근육의 미동 없이 입꼬리만 올려 가짜로 웃는 이 미소가 과거 팬암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짓던 미소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142)
루브르는 12세기 후반에 바이킹을 방어하는 요새로 건설되었다가 16세기부터 궁전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1872년 루이 14세가 왕궁을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로 옮기면서 왕국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집니다. 이후 루브르의 빈 공간에는 여러 왕립 기관들이나 협회 등이 들어서는데 이 과정에서 미술 아카데미와 공예 공방도 자리하게 됩니다. 한편 루브르는 왕실이 수집한 미술품의 수장고 역할을 하면서 이를 전시하는 장소로도 쓰이게 되는데, 향후 들어설 박물관 기능을 예견한 것이죠. 특히 1725년부터는 루브르에서 미술 아카데미 회원들의 전시가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이 전시는 루브르 내의 살롱 다폴롱이나 살롱 카레에서 열러 '살롱'전이라고 불리게 되죠. (159)
마티스와 피카소는 전통적인 미의 관념을 따르지 않고 낯선 아프리카 미술과의 만남을 통해 과감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미지의 과감한 해체와 재분해 속에서 더 풍부한 예술적 에너지를 길어 올렸습니다. (192~193)
파울 퓌르스트 <17세기 로마의 흑사병 의상 슈나벨>, 1656년경. 감염을 막기 위해 코팅된 가운을 입고 새 부리처럼 생긴 가면을 썼으며 환자로부터 떨어져서 지팡이로 진료했다. (211)
현대인들은 과학과 의료의 언어로 전염병을 설명하지만 중세인들은 종교의 언어로 전염병을 이해했고 신의 벌을 피하기 위해 더욱 절실하게 종교에 매달리게 되었죠. 그럼으로써 중세의 문화는 또 한 번 변화하게 됩니다. (222)
프랑스 북부에 '작은 베니스'로 불리는 콜마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이 되기도 했죠. (243)
지금까지 본 르네상스 미술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그저 화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워서가 아니에요.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민낯을 마주했고, 사회적 고민들을 녹여냈기 때문에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249)
에곤 실레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이 작가의 생애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그의 아버지는 결혼하기 전부터 매독을 앓았고, 매독균으로 인한 광기에 시달리다가 정신착란으로 사망했습니다. 어머니와 누이도 매독에 걸렸고요. 이처럼 실레는 어릴 때부터 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자랐습니다. 그의 작품은 굉장히 에로틱하고 뒤틀린 시선을 보여주는데 묘사된 신체 대부분이 앙상하게 말랐으며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그림을 통해 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재해석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려 했던 것처럼 보이죠. (250)
뭉크의 가족은 오랫동안 정신병과 결핵에 시달렸습니다. 뭉크의 어머니는 뭉크가 5세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한 살 위인 누이는 뭉크가 15세 때 역시 결핵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남동생은 뭉크가 32세 때 폐렴으로 사망했고, 군의관이었던 아버지는 뭉크가 26세 때 우울증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52)
독서습관603_벌거벗은 미술관_양정무_2021_창비(220721)
■ 저자: 양정무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사전의 삽화에 마음을 빼앗긴 후 미술을 운명이라 믿게 됐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 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이자 한국미술경영학회 초대회장이다. 원시,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장구한 역사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서들을 꾸준히 집필 중에 있다.
유학 시절 도서관보다 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탔다.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인기 강사다. 국립중앙박물관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대중강연과 학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6> <그림값의 비밀> <상인과 미술>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그리스 미술> <서양 회화사: 조토에서 세잔까지> <신미술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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