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릴레오 북스에서 소개된 손석희의 <장면들>을 보며 저자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과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저자가 1984년 MBC에 입사해 2020년 JTBC 뉴스룸을 떠날 때까지 있었던 굵직한 뉴스들에 얽힌 자신의 생각과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점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2014년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 JTBC가 다른 언론사와는 달리 팽목항으로 달려가서 287일 동안 지속적으로 보도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어젠다 키핑이다.
이 이슈들이 청와대나 정치인의 영향력에 의해 다른 뉴스로 가려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질 수도 있었지만 JTBC가 계속해서 이 어젠다를 들고 나왔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힘을 얻었고,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이 드러났고, 나아가 청와대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이끌어냈다. 어쩌면 2017년 대통령이 조기에 바뀌는 스모킹 건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어젠다 세팅과 어젠다 키핑이란 용어가 깊이 와닿았다.
언론에서 뉴스를 선정하고 얼마나 지속할 것인지 판단한다. 이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세월호 사고와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서도 JTBC가 보여준 모습은 어젠다 키핑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바탕임을 보여줬다. 태블릿 PC도 JTBC가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입수할 수 있었고 결국 역사에 남을 변화를 가져왔다.
자극적인 뉴스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 하는 기득권 엘리트층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어젠다 키핑이다.
셋째, 미디어의 역할에 감시견과 애완견, 경비견 이론이 있다.
일반 시민은 미디어와 언론이 감시견을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입법, 사법, 행정 기관의 감시보다는 이들을 대변하는 경비견의 역할을 하는 모습이 크다. 그래도 요즘은 유튜브 등이 있어 감시견의 역할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올바른 저널리즘을 실현하려는 손석희란 인물과 그의 노력을 봤다.
정치권으로 이동한 언론인들이 많다. 그들은 언론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권력을 얻기 위한 디딤돌 정도라고 생각하며 애완견 역할을 자청한 것은 아닌지...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손석희와 같이 그래도 자신의 위치에서 언론인으로서 '사실, 공정, 균형, 품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몇 명만 더 있어도 이 사회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장면들>을 읽은 뒤, 손석희라는 인물이 이 시대에 공존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2000년대에 있었던 주요 일들을 반추하며 저자와 함께 언론의 역할을 생각하고, JTBC에서 저자가 추구했던 바를 따라가 보며 그를 닮은 후배들이 많이 성장하고 사회를 이끌어가기를 기대한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그의 말을 다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들을수록 듣기 힘든 얘기들이었으므로... 그 밤에 3남매의 막내를 저 멀리 칠흑의 바닷속에 둔 아버지의 얘기를 듣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45)
세월호라는 어젠다를 왜 지키려 했을까를 가끔씩 생각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저널리즘이 될 수만 있다면...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50)
그렇게 해서 팽목항에서의 287일, 목포신항에서의 234일, 모두 521일간의, 아마도 전무후무할 현장 체류가 막을 내렸다.
그 시간들은 언론이 왜 존재하는가를 깊이 고민하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또한 언론이 단지 뉴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시간들이기도 했다.
굳이 어젠다 키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좀 더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다. (70)
미디어학에서 전통적으로 미디어는 '개'에 비유돼왔다. 대표적인 것이 감시견(watchdog)과 애완견(lapdog)이다.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은 이른바 제4부의 역할을 맡아 입법, 사법, 행정의 3부를 감시하고 비판함으로써 시민사회에 복무한다는 것.
애완견 언론은 말 그대로, 주인의 무릎에 앉아 귀여움을 받는 강아지처럼,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 등 지배 엘리트층에 충성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지배계급의 현상 유지를 위해 이용되는 도구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경비견으로서의 언론의 역할은? (78)
우리는 경비견이었을까, 아니면 감시견이었을까? 아니면 구분할 수 없는 것일까? 평자들에게 맡기겠지만, JTBC 뉴스는 독특한 위치를 점했음엔 틀림없다.
많은 평자들이 우리가 애완견 아니면 경비견의 숙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했으나, 우리는 그런 방향에서 벗어나 있었다. 주요 길목마다 JTBC는 감시견이길 원했고, 그렇게 행동했다고 믿는다. (149)
박정희 정권 초반기였던 1964년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인민혁명당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60명 가까운 사람들을 잡아들였던 것이 1차 인혁당 사건이다. 그 직전의 굴욕적 한일회담에 의해 촉발된 6.3 민주화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훗날에 결론이 났다.
그러다가 10년이 지난 1974년, 그러니까 그보다 2년 전에 있었던 10월 유신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이었던 '민청학련'이 점차 세를 얻어가자 유신 정권이 그 배후로 다시 인혁당을 꺼내 들었던 것이 2차 인혁당 사건이다. (167)
그 당시는 '보도지침'이라는 게 있어서, 특히 정치 분야는 무엇을 보도할지 안 할지, 얼마나 보도할지, 언제부터 혹은 언제까지 보도할지 등등이 상당 부분 정부에 의해서 정해지고 통제되던 세상이었다. (232)
보수정권하에서 대부분의 경우 MBC는 상대적으로 더욱 애완견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5공 시절의 직접적 통제에서 적어도 형식적으로 벗어난 뒤에도,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인적 구성 자체가 정부 여당에 유리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간접통제가 가능했다. 그 통에 구성원들은 싸워야 했고, 파업이 계속될 때도 있었다. (235)
사르트르는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인 우리에게 어느 길이든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사람은 그가 가고 싶은 길이면 어떤 길이든 선택해서 갈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해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 (238)
그렇게 해서 정리된 네 가지의 키워드, 즉 '사실, 공정, 균형, 품위'는 알게 모르게 우리 보도의 원칙으로 작동해왔다고 믿는다. (241)
조국 정국에서 우리가 놓쳐선 안 될 본질은 '검찰개혁'이었다. 그러나 개혁의 객체가 되어야 할 검찰은 조국 정국에서 수사의 주체로 나섰고, 개혁의 주체여야 할 법무부 장관은 수사의 객체가 되어 있었다.
동시에 사건이 진행될수록 검찰개혁의 본질보다도 조국 당시 장관 부부의 문제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280)
그날 나는 '앵커브리핑' 대신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를 인터뷰했다. 고 노회찬이 누구보다도 관심을 기울였던 사건이므로...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비통한 자들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의 글을 인용한 제목이었다.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진보한다'는...(320)
'뉴스'에서 '재미'있는 것이란 결국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고, 한 가지 이슈에서 아무리 새로운 사실을 계속 알아내서 보도해도, 그보다 더 자극적이거나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그것 이상으로 '재미'있기는 틀린 일이다.
바로 그런 뉴스의 속성 때문에 위정자들이든 언론이든 정보 우위에 있는 세력들은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인 뉴스로 프레임을 바꾸고 여론을 바꾸려 시도해왔던 것이 아닌가. (371)
미디어 생태계 속의 그들 역시 때만 되면 그 실체를 드러낸다. 우리를 포함해 어떤 언론이든(그것이 진보 성향이든 보수 성향이든) '합리성'을 잃는다면 민주주의나 인본주의는 고사하고 그 악어의 무리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377)
독서습관602_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장면들_손석희_2021_창비(220718)
■ 저자: 손석희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2006년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로 옮길 때까지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주로 맡았다.
성신여대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동안에도 <100분 토론>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진행했다. 2013년 JTBC 보도담당 사장으로 입사해 2020년 1월 초까지 <뉴스9> <뉴스룸>의 앵커를 맡았다. JTBC 대표이사, JTBC.JTBC 스튜디오 총괄사장을 거쳐 2021년 순회특파원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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