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독특한 사람들이 많다. <ZERO에서 시작하는 도시형 수렵채집생활>의 저자 사카구치 교헤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건축가로서 도쿄에 사는 노숙인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의 놀라운 ‘수렵채집생활’을 의식주로 나눠서 설명한다.
도시에서 집에서 산다는 것은 큰 비용이 든다. 입을 옷을 사고, 먹을 음식도 구매해야 한다. 모든 것에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숙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모습이 보인다. 넘쳐나는 옷은 버려지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버려진다. 자신이 거주할 1평 정도의 땅만 있으면 주변에서 구한 골판지 등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집을 짓고 자립형으로 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조금 더 나아가면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전자기기를 이용할 수 있다. 가스와 전기를 연결하지 않고도 온수까지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보는 관점에 따라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월급생활을 해서는 맞벌이를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주택 가격이 상승한 대한민국 서울 경기지역 거주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
특히 금리가 오르면서 은행에서 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구매하거나 전월세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은행에 매달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증가했다.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은행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현대판 소작농의 삶이다. 이런 구속이 없이 무일푼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노숙인의 삶은 나름 매력이 있다. 그만큼 잉여의 사회를 살고 있으면서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아픔이 보인다.
짧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이 책이다. 초반에는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저자의 건축가로서의 삶의 철학이 드러난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이미 나의 삶에도 일부 반영된 부분이 있음에 놀랐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부분을 인용했다.
‘남들은 원하지 않지만 당신에게는 가장 절실한 것.’ 그런 물건이라면 아주 효과적으로 질 좋은 것을 획득할 수 있다. ‘쓰레기’란 본시 못 쓰는 물건이 아니라 남들에게 필요 없어진 물건이다. 우선은 바로 이 점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24)
슈퍼마켓 진열대에 늘어선 상품일랑 저쪽 세계 사람들에게 양보하자. 똑 같은 것이지만, 진열대에서 내려지는 순간 그것은 ‘도시의 양식’으로 바뀐다. 운만 좋으면 매일 다 먹지 못할 만큼의 ‘도시의 양식’을 채집할 수도 있다. (66)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이 토지를 소유하고 그것을 매매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토지를 상업적 매매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 자체가 모순이라는 뜻이다. 이것만큼은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하지 않을까? (111)
가진 기술은 없겠지만 걱정 마시라. 기술이 없어서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없을 뿐이다. 인간이란 원래 자신의 몸을 이용해 경험을 쌓아 가다 보면 필요한 기술은 얼마든지 발전하게 마련이다. (142)
물론 자연을 상대로 하는 작업이라고 해서 다 성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죠. 실패도 많이 경험하게 마련이에요. 그럴 때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는 시행착오를 겪게 된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요놈에게 지금 필요한 게 뭔지, 또 저놈은 뭘 해 달라는 건지 요모조모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 다마 강의 자연이 나와 함께 있어 주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163)
가장 좋은 비료는 뭐니 뭐니 해도 인분이 최고죠. 인간의 배설물 말입니다. 우리 집 화장실은 폴리에틸렌 소재의 흰색 통이에요. 거기에 볼일을 보고 몇 개월 동안 숙성시키죠. 그러면 완벽한 비료가 되는 거예요. (…) 소변도 큰 종이팩에 받아서 숙성시켜 둡니다. 배설물에는 살균 효과가 있어서 발효시키지 않고 그대로 방뇨하면 식물을 말라죽게 하는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종이팩 안에서 한 달 정도 숙성시키면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서 식물에게 유익한 비료가 돼요. (165)
인간이란 사실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먹어. 그러니까 병에 걸리는 거 아니겠나? 원래는 주먹밥 두 개면 충분한데 말이야. 나는 주먹밥 두 개로 이틀은 거뜬히 버틴다네. 게다가 그 덕분에 몸이 아주 건강해졌는걸. 더 이상 바랄 게 뭐 있겠나?” (179)
교육받는 것도 싫어하고, 일하는 것도 싫어하며, 직업 훈련도 받기를 거부하는 일명 니트(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나 집 안에 틀어박혀 바깥 활동을 전혀 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은 꼭 한 번 노숙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보기 바란다. 자기 혼자서도 직접 자신만의 일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실감하게 될 것이다. (185)
사회 시스템은 아무리 변화시켜도 똑 같은 순환을 반복하며 인간을 괴롭힐 뿐이다. 따라서 우선은 당신의 정신, 관점, 창조성을 변혁시켜야 한다. 그런 행동들 뒤에 희망은 숨어 있다. ‘도시의 양식’으로 살아가기는 당신이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혁명이다. (188~189)
이것은 ‘도시의 양식’으로 살아가기 위한 핵심적 사고방식의 하나이다. 오늘날에도 도시형 수렵채집생활인들은 도서관을 자신의 서가로 인식하고 공원을 부엌이나 화장실로 삼으며, 편의점을 냉장고로 여기는 생활을 실천한다. (206)
물질에 의해 휩싸이고 압박당하는 듯 보이는 이 세계를 살면서 자유로운 감각으로 틈새를 찾으려는 노력은 그 어느 시대이든 시도된 흔적이 남아 있다. 선배들의 도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각성을 촉구한다. (207)
그들의 집은 아주 작지만, 실제로는 도시 전체를 마치 거실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면서 생활한다. 거기에 펼쳐진 무한한 공간은 나에게 어떤 예술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의 이름은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그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작품 속에서 보여 주려고 했다. 특히 <계단을 오르는 누드>라는 작품에서 그런 효과가 느껴졌다. (219)
■저자: 사카구치 교헤
1978년 구마모토 현 출생. 건축가, 작가.
와세다 대학 이공학부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에 노숙인들의 주거 형태를 담은 사진집 <0엔 하우스>(리틀모어 간행)를 출간했다. 2006년 캐나다 밴쿠버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07년에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회의 포럼에 참가했다. 2008년에는 스미다강에 사는 노숙 생활의 달인 스즈키 씨의 생활을 기록한 <TOKYO 0엔 하우스 0엔 생활>(야마토 서방 간행)을 출간하고 이듬해인 2009년에는 자신도 실제 다마 강변 생활을 경험한다.
기타 저서로 <스미다 강의 에디슨>(아오야마 출판사 간행), <TOKYO 1평 유산>(슌주샤 간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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