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살아있는 매 순간이 소중하다. 건강할 때는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 생각을 멀리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에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몇 일, 몇 주, 몇 년으로 지정되는 순간 시한부 인생이 시작된다. 죽음이 삶을 회색으로 만들어버린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베스, 제이미, 루이스 그리고 잭 등 네 명의 시한부 환자의 임종을 경험하며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지를 알려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녕이라고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고 말한다. 이것이 책의 핵심이다.
인구의 고령화와 노인인구의 증가는 우리들에게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외로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고향의 어르신들이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자식들은 요양원으로 모신다. 요양원은 곧 돌아올 수 없는 장소요, 삶의 질보다는 단체로 생존을 유지하는 장소일 뿐이다.
저자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병원이나 요원원보다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호스피스 시설에서 삶의 질을 찾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아할 것을 권한다. 최근에 읽었던 죽음과 관련한 국내외 책들은 모두 가족이나 지인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는 것을 권한다. 나도 충분히 공감하는 바다. 여러 가지 사유로 본인이나 가족, 지인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면 이 책이 좋은 가이드를 줄 것이다.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는 방 living room’을 꾸미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환자들의 방은 집 한구석의 침실이 아니라 집 안 한가운데에 꾸며졌다. 거실을 병실로 사용하는 이유는 부엌과 가까워서 수프나 커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원을 내다보면서 봄이 오고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볼 수 있고 집배원이 우편물을 들고 오는 것,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것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환자들이 침실에 홀로 고립되기보다는 죽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기를 원했다. (24)
암환자들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는 영국산 브롬프턴 혼합제를 미국식으로 개조했다. 이 진통제는 미국에서 사용이 금지되어 있는 헤로인 대신 모르핀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주사 대신 입으로 투약할 수 있기 때문에 시한부 환자들이 진통제 한 병을 들고 퇴원해서 각 가정의 침대에 누워 통증이 올 때마다 마실 수가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환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의 약을 써야 하는지 의사에게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고 오히려 환자 자신이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수가 있다. (25)
인간적인 대우를 기대할 수 없는 요양원에서 먹는 것과 씻는 것을 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 채 자신의 몸에 행해지는 일을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특히 약물에 중독이 되어서 그녀 자신의 모습이 아닌 멍한 상태로 사는 것은 루이스는 끔찍하게 싫어했다. (99~100)
통증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주치의는 ‘척추시상로 절단술’을 받을 것을 권했다. 척추의 통증 전달경로를 차단하는 수술로 결과적으로 루이스의 통증을 크게 경감시켰다. (107)
어느 괴팍한 할머니의 시(146~151)
간호원 아가씨들!
당신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나요?
내가 어떻게 보이냐고 묻고 있잖아요.
당신들은 날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죠?
당신들한테 난 그저,
별로 똑똑하지도 않고 성질머리도 고약한 데다
눈동자마저 흐릿한 할망구일 테지요.
식사할 땐 칠칠맞게 흘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큰 소리로 나에게 “흘리지 좀 마세요!”라고 소리를 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양말 한 짝, 신발 한 짝을
수시로 잃어버리는 한심한 노인네…
목욕 하라면 목욕하고
밥 먹으라면 밥 먹고
좋건 싫건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는 무능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나”인가요?
그게 바로 당신들 눈에 보이는 “나”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 보세요.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나를 제대로 바라보아 주세요.
이렇게 여기,
당신들이 주는 대로
음식을 씹어 넘기고 있는
내가 과연 누구인지 말해 줄게요.
난 열 살짜리 어린 소녀랍니다.
사랑하는 아빠와 엄마 오빠 언니 동생들도 있지요.
난 꽃다운 열여섯 살 처녀랍니다.
두 팔에 날개를 달고 이제나 저제나 사랑을 기다리며
밤마다 꿈 속을 날아다녀요.
난 스무 살의 아리따운 신부랍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지요.
나는 또 스물다섯 엄마이지요.
아기를 품에 안고 보듬고 있어요.
그러다가 서른이 되고 보니
아이들이 훌쩍 커 버리고 더 이상 내 품에 안겨 있지 않네요.
마흔 살이 되고 보니
아이들은 모두 자라 집을 떠났지만
다행히 남편이 곁에 있어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로만 밤을 지새우진 않아요.
쉰 살이 되고 보니
또 다시 내 무릎 위에 아기들이 앉아 있네요.
사랑스런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난 참 행복한 할머니지요.
그러다가 암울한 날들이 찾아오네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어요.
홀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두려움에 저를 떨게 하네요.
나의 자식들은제 자식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젊은 시절 내가 자식들에게 쏟아 부었던 그 사랑을
나 역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그러다가 또 어느 날 문득 자신을 바라보니
이렇게 오갈 데 없는 늙은이가 되어 버렸어요.
세월은 참 잔인하기도 하죠.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 놓으니…
몸은 쇠약해지고
한때 지녔던 기품과 열정은
영원히 날 떠나 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고동쳤던 나의 심장이 있던 자리에,
이제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자리 잡고 있네요. 하지만 아세요?
쭈글쭈글한 이 몸뚱이 안에 아직도 열여섯 살 처녀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이 쪼그라든 심장도 쿵쿵거리기도 한다는 것을.
지금도 난 기억한답니다.
젊은 날들의 기쁨을,
그리고 또 아픔을. 할 수만 있다면 사랑도,
인생도 다시 한번 누려보고 싶어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도 짧았고,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제발 눈을 크게 떠 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보아 주세요.
괴팍한 할망구라니요.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나를 바라보아 주세요.
‘나’의 참모습을 말이에요.
이 시는 스코틀랜드의 한 노인 병원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의 유일한 유품으로, 병원 간호사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는 가족들은 극히 드물다. 죽음에 임박할수록 병원을 떠나선 안 된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런 생각은 단순한 통념 수준을 넘어서 가족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도리로까지 여겨졌다. 그렇게 해야만 최선을 다한 것으로 여겨졌고, 환자의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최고의 화학 치료나 방사선 치료 장비가 대기하고 있는 병원에 남아 있어야만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172)
테이블에 촛불을 밝혀두고,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멀지 않은 곳에 아이들이 잠들어 있고, 아이들이 꺾어온 꽃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병원에서 맞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죽음을 맞이했다. 그 아이들은 앞으로 죽음을 외로움, 소외감, 거짓말, 속임수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179)
호스피스라는 말은 원래 수백 년 전 스위스의 어느 산속에서 산을 타는 사람들을 도와주던 수도승들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했다. 그 수도승들은 바로 ‘세인트 버나드’라는 수색견을 훈련시킨 사람들로도 유명하다. 세인트 버나드는 눈사태로 실종된 등산객들을 구조하는 개로 잘 알려져 있다. 세인트 버나드를 훈련시킨 수도승들은 조난당하거나 곤경에 처하거나, 부상을 입거나, 지친 등산객들을 돌보아 주었다. 훗날 영국에서 호스피스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장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81)
요양원은 많지만 환자들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고, 나누고, 베풀고, 창의성을 할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은 많지 않다.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요양원이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곳에 있는 환자들의 자존심이나 자기 존중의식, 품위 같은 것까지 생각해 주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일 뿐이다. (189)
각 주마다 호스피스가 있을 것이고 우리가 운영하는 성장과 치유를 위한 명상의 집, ‘샨티 니라야’도 각 주마다 세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죽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미쳐 끝내지 못한 일들과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 같은 것들을 불치병에 걸리지 않고도 대면할 수 있고, 비로소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194)
내 무덤가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잠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천 개의 바람이에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흰 눈이고요.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살이지요.
나는 잔잔한 가을비입니다.
아침의 고요 속에 당신이 눈 뜰 때,
포르르 날아오르는 평화로운 새들의 날갯짓,
밤하늘에 반짝이는 여린 별이랍니다.
내 무덤가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 <내 무덤에서 울지 마세요> (208)
인간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소중한 메시지가 이 책의 글과 사진들 속에 담겨 있다. (210)
■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1926.7.8 ~ 20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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