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의 <소년의 눈물>은 해방 후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교포 1세와 후손들의 힘겨웠던 삶을 엿보게 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정체성 혼란과 한국전쟁 이후 조총련과 민단으로 나뉘어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모국에 대한 선택도 힘겹다.
부모 세대는 한반도에 고향이 있고 한글이 자연스럽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들에게 부모의 고향은 멀고, 언어는 단절되어 일본어가 모국어가 되었다. 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도 재일교포 2세들의 내면에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비해 낙후되고 가난한 나라였던 남북한에 대해 '조선'이란 고향을 생각하며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조국, 대한민국은 저자 서경식의 가족에게 유학생 간첩사건이란 테러를 가했다. 그의 작은형 서승과 막내형 서준식을 감금하고 젊음을 빼앗았다. 부끄러운 과거다.
저자는 책에 청소년기까지 만났던 다양한 책에 대한 사연을 소개한다. 책을 좋아하는 형들의 영향으로 주변에는 늘 책이 있어 그는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주변에 독서의 필요성을 설명해 주고 강권하는 사람이 없었던 나의 과거를 반추해본다.
어린 시절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잘 구비해놓은 문학전집을 보며 부러워했다. 한두 권 빼서 본 기억도 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는 요즘은 거의 없는 세로줄로 인쇄된 심훈의 <상록수>를 심취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게 전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학입시에 나온다는 현대 단편소설 중심으로 시험을 위해 읽었을 뿐이다. 서경식의 책과 관련된 경험에 비추어 깊이와 폭에서 부끄러울 지경이다.
중년이 되어서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독서의 향기를 즐기고 있다. 학창 시절에 숨겨진 보석과 같은 독서의 유익함을 알지 못하고 멀리했던 것을 자녀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책들은 SNS로 포스팅을 공유하며 함께 나누고 있다. 읽을지에 대한 결정은 물론 아이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다만 독서의 즐거움과 그로 인한 인식의 확장에 대해 직접 보여줌으로 아이들도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를 바랄 뿐이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내용을 발췌했다.
당시 몇 차례던가 요시카와 에이지 붐이 일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전집을 산 것은 물론 그 때문은 아니었고, 그해부터 한국의 형무소에서 옥중생활을 하게 된 작은형과 막내형에게 차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몇 년 뒤 차입했던 그 전집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101~102)
일본의 조선 지배 및 아시아 침략에 대해 일본 내부로부터 책임과 자성을 요구하는 시를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시인 이시카와 이츠코의 노정이 바로 이 시에 예견되고 있다. 그러나 중학생이던 내가 충격을 받고 이 시인에 열중하게 되었던 것은, <검은 다리>와는 성격이 다른 <틈이 벌어진 오두막집을 장난 삼아 엿보고...>라는 시였다. (138)
그대들의 평범하고 안락한 아침식사, 일, 일요일의 산책
그것들을 일거에 흔적도 없이 만드는 무엇인가가
오두막집 속에는 있다
알지만 돌이킬 수 없는, 화상의 경련 같은 무엇인가가
1970년대 말, 당시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던 셋째형이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아니었다. 고문이 가해지고, 때로는 '징벌'이라 부르던, 수개월 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 편지였다.
나는 곧바로 형의 이 말을 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항변의 여지가 없었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돼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46)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며 불의와 두려움에 맞선 ‘인간 정신’을 책과 글에서 무수히 목격한 한 주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갈다(연·硏) 못해 뚫는(찬·鑽) 지경에 이르는 독서와 정신적 투쟁이란 무엇인지, 한동안 깊이 곱씹어봐야겠습니다.
'다보스?' 그때 갑자기 다보스라는 지명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왜일까? 불현듯 다보스가 <마의 산>의 무대였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내가 이 장소를 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다보스에 와 있는 것이다.
작가 토마스 만은 요양소에 입원한 아내의 수발을 들면서, 이곳에 3주 동안 머물며 <마의 산>을 착상하고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12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162)
중학교에서 T와 서로 알고 지내던 즈음 나는 시를 읽기 시작했다. 조선인이 쓴 시를 처음으로 읽은 것은 아오키에서 발간한 허남기 시인의 <조선의 겨울이야기>라는 책에서였다. (196~197)
오늘도 온종일
조선의 딸들은 빨래를 한다
물에 적셔서는 두드리고
눈물에 적셔서는 헹구고 하여
오늘 온종일
이 강가에서 빨래를 한다
(...)
아아, 그리고 그것은
이 불쌍한 녀인들이
불도 없는 어둔 생활 속에서 보내는
단 하나의 위로이고
말동무인
그 불행한 아낙네의 족보고
력사다.
이 땅의 녀인들은
그 짜디짠
족보를 씻고 있다
그 눈물에 젖은
력사를 헹구고 있다.
<영산강>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 조상들의 터전인 그 땅에서, 나는 자신의 성조차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실격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듯 나의 언어는 폐멸돼 있었고, 나와 그들은 그렇게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208)
그 가운데 <식민지주는 하나의 체제다>와 <하나의 승리>는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었다. 전자는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 특히 토지의 수탈을 고발하고 프랑스 식민주의의 기만성을 폭로한 작품이다.
사르트르는 여기서 프랑스인들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유일한 시도'는 "알제리 인민의 편에 서서 식민지의 폭정으로부터 알제리인과 프랑스인을 동시에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일이다"라고 결론짓는다.
이 글을 읽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시 해방'이라는 이미지가 내 안에서 부풀어 올랐다. 그 이미지를 조선과 일본의 관계로 치환하여 상상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17~218)
나로서는 주위의 일본인들과 똑같은 인생 경로를 그려볼 수가 없었다. 당시 재일조선인들은 공무원이나 국립대학의 교수가 될 수 없었다. 변호사도 될 수 없었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넘어야 할 벽도 두텁고 높았다. (220)
독서습관581_소년의 눈물_서경식_2004_돌베개(220613)
■ 저자: 서경식(1951~)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1974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했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받았고,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그 외에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분단을 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청춘의 사신> 등의 책을 썼고, 현재 도쿄 케이자이 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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