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사진 에세이 <내 작은 방 My Dear Little Room>은 사진과 함께 관련된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독특한 점은 한글과 함께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어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아름다움 사진과 시를 알릴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이 인도, 파키스탄, 터키, 페루, 몽고, 시리아, 캄보디아, 버마, 수단, 러시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에서 살아가는 가난과 전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글로벌 시민 모두가 함께 할만한 가치가 있다.
'박노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보긴 했지만 진지하게 인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이 책이 그와의 첫 만남이다. 독서생활을 4년간 해오면서 다양한 책을 읽었다. 그 중에서도 리영희, 신영복, 서준식과 같이 박정희 정권 시대에 억울한 조작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던 인물들을 만나 왜곡된 현대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박노해를 만났다.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을 만나며 우리는 희망을 본다.
이 책은 사진을 보며 시를 읽고 상상하게 한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물질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우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의 방'과 '나의 존재 의미'를 생각해 본다.
‘어찌할 수 없음’ 투성이인 우리 인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있고’ ‘어찌해야만 하는’ 것은 내 마음 하나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목적지는 내 마음의 빛이고, 내 마음의 방으로부터다. (15)
Integrity, self-restraint, even when alone.
Self-restraint is really important.
Because the way you look and act when you are alone is your true self. (20)
“나에게는 낮의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을 밝히는 밤의 시간이라오.”
밤은 그 사람의 진실한 모습이 비쳐 나오는 시간.
어둠은 그 내면의 은미한 빛이 비쳐 나오는 시간.
자기만의 방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행위와 마음이 다음날 세계의 사건으로 드러나는 것이니.(54)
아이들은 혼자만의 비밀스런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누구인지, 무얼 꿈꾸는지,
자기 안에 살아있는 신성이 깨어나는 시간,
어둠 속 별의 지도를 읽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96)
집집마다 마당 한가운데는
둘씨 나무를 심은 성소가 있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둘씨는 5천 년 넘게 약재로 쓰였으며,
인디아인들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
자비의 미덕을 불러일으킨다고 믿는다.
“집안의 중심은 성소이지요.
성소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지요.
마음의 중심에 사랑과 자비가 없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과 같지요.”
하루의 시작과 끝. 고요한 둘씨의 시간. (108)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언젠가 어느 날인가 죽음 앞에 세워질 때,
나는 무얼 하다 죽고 싶었는가.
나는 누구 곁에 죽고 있었는가.
내가 죽고 싶은 자리가 진정 살고 싶은 자리이니,
나 지금 죽고 싶은 그곳에서
살고 싶은 생을 살고 있는가.
이름 없는 수선화 꽃 무덤이 물어온다. (113)
이 지상에 나만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그 무게가 오늘도 나를 걷게 하는 힘인 것이다. (114)
지상에 집 한 채 갖지 못한 나는
아직도 유랑자로 떠다니는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나만의 작은 방이 하나 있어
눈물로 들어가 빛으로 나오는 심연의 방이 있어
나의 시작 나의 귀결은 ‘내 마음의 방’이니.
나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주어져도
내 마음의 방에 빛이 없고
거기 진정한 내가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너를 만나고
무슨 힘으로 나아가겠는가
이 방, 사랑의 불로 내 마음의 방을 밝히네.
- <내 마음의 방> 중 (119)
■ 저자: 박노해
1957년 전라남도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상경해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를 다녔다.
1984년 27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년 <남한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년 7년여의 수배 끝에 안기부에 체포, 24일간의 고문 후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1993년 감옥 독방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출간했다.
1997년 옥중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하고 비영리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2010년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전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12년 만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2년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 상설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현재 20번째 전시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 33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2014년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전(세종문화회관) 개최와 함께 <다른 길>을 출간했다.
2019년 박노해 사진 에세이 시리즈 <하루>,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길>을 출간했다.
2020년 첫 번째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를 출간했다.
2021년 <걷는 독서>를 출간했다. 감옥에서부터 30년간 써온 한 권의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이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오늘도 시인의 작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심고 기르며 새로운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728x90
반응형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584]서준식의 옥중서한(1971~1988)①_억울한 사연 (0) | 2022.06.19 |
---|---|
독서습관583_군복무를 유익한 기회의 시간으로 만드는 습관_군대 18개월 돌려받기_전선재_2022_청년정신(220618) (0) | 2022.06.18 |
[581]소년의 눈물_재일교포의 정체성 고민과 책을 통한 성장 이야기 (0) | 2022.06.16 |
[580]이갈리아의 딸들_여성 해방과 성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 (0) | 2022.06.12 |
[579]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_글쓰는 피아니스트의 클래식과 삶의 이야기 (0) | 2022.06.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