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유쾌한 상상력과 재치가 넘치는 소설일 뿐만 아니라 여성학 이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과 여성 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훌륭한 여성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억압의 기원이나 성과 계급의 문제, 동성애를 둘러싼 논의, 가사 노동에 대한 논쟁을 이갈리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학과 관련된 지식을 많이 알면 알수록 이 책은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 언어의 남성 중심성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낸 많은 신조어들이 옮기는 작업을 더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지은이의 뛰어난 관찰력과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351)
이 소설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게 된, 일상 생활 곳곳에 스며 있는 성차별적 요소를 깨닫게 해 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특히 생물학적인 것이어서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까지도 사실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구성물임을 보여준다. 그러한 것들로 가장 대표적인 것들인 월경, 임신, 출산조차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가치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생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관계도 이갈리아에서는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352)
다른 책에서 두 번씩이나 인용된 <이갈리아의 딸들>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바로 빌려봤다. 소설에 들어가기 전에 '이갈리아의 용어들'이 설명된다. 처음 접하는 용어지만 소설 이해를 위해 꼭 필요한 단계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움'과 '맨움'은 소설을 관통하는 언어다. 여성과 남성을 의미하는 이갈리아어다. 가부장적인 현실과는 반대되는 상황설정과 맨움(현실의 남성)이 경험하는 억압과 불편함이 독자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며 생각해 보게 한다.
여성학, 여성해방, 동성애 등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중년 남성으로서 접하는 <이갈리아의 딸들>은 설정된 맨움의 어려움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여성이 겪게 되는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 요소를 뒤집어 이갈리아라는 가상의 사회에서 맨움이 겪도록 설정했다. 맨움처럼 살아야 한다면 참 힘들고 고달프겠다 싶었다.
이것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의도한 바라고 생각했다. 여성학과 여성해방에 대해 이론적, 지식적으로 접근을 배제하고 실제 상황을 상상하도록 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책이다. 여성으로서 가사노동, 월경, 임신, 출산에 대한 성역할과 사회적으로 외모에 대한 관심, 성폭력에 대한 위험, 브래지어와 같은 의복에 대한 불편함, 성관계에서의 남성 중심의 사고 등이 비판적인 사례로 담겨 있다.
남성으로서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작가의 여성학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에 놀라는 책이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부분을 발췌했다.
늘 이런 종류의 사건은 폭력범죄과로 직행하게 마련이지. 그러나 넌 내 아들이기 때문에 그건 면하게 될 거다. 이런 일은 그걸 겪어야 하는 맨움들에게는 엄청나게 모욕적이거든.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이런 이야기가 있은 후에 부성보호를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다는 거야. 너를 위해 최상의 것을 해주고 싶어하는 어머니를 가진 것을 기뻐해라, 페트로니우스. 폭력범죄과로 가는 건 내게도 모욕적인 일이지. 나 정도의 지위에 있는 움은 쉽게 상처받을 수가 있지. (93)
요즘 들어 맨움이 아무리 항의한다 해도, 생명을 부여하고 보호하는 자는 움이며 움이 없다면 맨움도 소멸할 것이라는 - 그 반대는 아니지만 - 사실엔 변함이 없어요. 정자는 정자와 난자 모두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보호할 만한 능력이 없어요. 아이가 맨움의 성기 안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한 없죠. (125)
예를 들어 작살물어와 같은 몇몇 종에서 보금자리를 만들고 어린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은 아버지랍니다. 그래서 물고기, 특히 작살물어가 남녀 간에 평등하고 합리적으로 역할이 분담되는 사회, 우리 어머니 나라, 이갈리아의 상징이 되었답니다. (127)
크리스토퍼는 가장 큰 출산실을 예약했다. 산달에는 준비해야 할 것이 끝이 없었다. 의식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준비해야 했지만 그가 루스에게 자문을 구하면, 그녀는 자잘한 것을 챙기는 것은 맨움의 몫이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게다가 임신 중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충분히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가 언제 그녀에게 일일이 다 걱정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가? (167)
대성장 시대 동안 이갈리아는 움 중심적인 사회였다. 공공 생활은 전적으로 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맨움들은 이등 시민으로 간주되었고 성장 시대의 이갈리아인들은 맨움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이들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맨움들은 오늘날처럼 가정에서 움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를 낳는 목적이 있을 때에만 움들과 함께 있도록 허락받았다.
또한 아이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소년들의 운명은 <열 살 분류소>에서 결정되었다. 매년 봄에 열 살짜리 소년들은 그들이 씨내리가 될지 일꾼이 될지를 결정하는 판관들 앞에 섰다. 십 퍼센트만이 씨내리로 선택되었다. 나머지는 팔루리아로 보내 광산과 노역장에서 일을 시키거나 목재를 자르도록 대황야로 보냈다. (189)
하지만 발굴하고 연구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야, 판당고. 그것은 항상 연구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그 사람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찾은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도 중요하지. 너희들 모두 <곡괭이를 든 수수께끼 같은 맨움>이라는 이갈리아 국립박물관의 유명한 조각을 알고 있지? 곡괭이를 들고 있는 근육질 맨움의 고대 조각상 말이야. 난 대담하게도 그것을 <땅을 경작하는 맨움들>이라고 부르지. 그러나 모든 전문가들은 움들이기 때문에, 손에 그런 도구를 들고 어떻게 맨움이 그런 자세로 서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맨움들은 땅을 경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205)
그들이 주요하게 주장하는 다른 요구는 노동 집단과 다른 직업 간의 사회적인 성별 분업이 철폐되어야 하며, 그래서 양성 간의 기회균등 원칙이 효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움이 맨움보다 더 좋은 직업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맨움 운동은 기회균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맨움들이 엄청난 어려움에 부딪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맨움들 대부분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 때문에 - 보호를 받든 안 받든 -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한 어떠한 고등 교육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움들이 맨움들보다 더 능력 있다고 믿는 맨움들은 맨움 운동 내에도 많이 있었다. (272)
그리고 만일 세세한 부분까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 스물네 시간 내내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야. 페트로니우스! 만일 내가 너라면, 지금... 만일 네 입장이라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거야. 가정과 아이에 대한 모든 꿈은 집어치우고 내 자신을 찾고 싶어. (311)
독서습관580_여성 해방과 성역할에 대한 인식 전환_이갈리아의 딸들_2008_황금가지(220612)
■ 저자: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Gerd Brantenberg (1941~)
1941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1970년 오슬로 대학을 졸업한 뒤 1982년까지 코펜하겐과 오슬로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0년대 초반부터는 여성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해, <오슬로 여성의 집>과 <매맞는 아내들을 위한 쉼터>에서 일해오고 있다. 노르웨이 작가연맹 위원이기도 하다.
주요 작품으로 <전 세계의 동성애자여, 일어나라>(1973), <그래, 이제 그만>(1978), <성 크로와에게 바치는 노래>(1979) 등이 있다. 작품마다 수개국어로 번역되어 나올 정도로 유럽에서는 상당한 독자층을 갖고 있다. 특히 <이갈리아의 딸들>(1977)은 영어로도 번역되어 커다란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유럽에서는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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