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4권 속에 녹아들어 있는 향약, 두레와 같은 사라진 전통을 만났다. 시골에서 마을 중심으로 살았던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농사일이라는 것이 서로 도와가며 해야 할 수 있었다.
두레 때 참은 하루 다섯 끼를 먹었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두 번의 새참이었다. 이 두레의 참은 두레꾼들만 먹는 것이 아니었다. 밥 하는 데 거드는 여자들이나 그 식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집은 온 식구가 다 나와서 먹었다. 그래서 두레의 참을 하려면 대사 치르는 것만큼이나 거판스러웠다. 가난한 집에서는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런 집 질은 농사가 많은 집에 얹혀서 일을 배당했다. (317)
도시화와 기계화의 물결 속에서 시골은 해체되고 농사일을 주업으로 살았던 노인들이 주로 남아 있다. 상여는 사라지고 병원 장례식장이 번성한다. 마을 사람들의 교류도 감소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우리는 소설을 통해 역사와 전통에 대해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이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준다는 것이 사람에 대한 이해를 돕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야기가 잠깐 빗나갔네마는 홍수전이가 나는 야소(예수)의 동생이다, 상제의 명을 받고 이 세상을 고치러 왔다고 했는데, 그런 허황한 소리가 먹혀들었던 것은 바로 그 평등사상 때문이었을 걸세.
헌데 동학의 평등사상은 그보다 한 단계 위니 그 소리가 얼마나 깊이 먹혀들겠는가? 수운 최제우가 큰 병을 고치면 작은 병은 저절로 낫는다고 했는데, 그는 반상과 빈부 격차를 제일 큰 병으로 보지 않았는가 싶어.
홍수전이가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것을 볼 때 지금 동학에 쏠리고 있는 백성들의 이 기세를 누가 제대로 휘어잡기만 하면,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 하나쯤 휩쓸어버리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걸세.(...)" (53)
모든 사람이 한울림이라는 인내천 사상의 동학도들은 복합상소를 올리지만 후에 조치하겠다는 명확하지 않은 답변을 듣고 지방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후에 조치라는 것은 동학도들에 대한 징벌이었다.
동학도 내부에서도 갈등이 일었다. 교조에 대한 억울한 누명을 벗겨달라는 신원을 우선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몇십 년째 제자리다. 그러는 사이에 백성들의 삶은 관료들의 횡포에 더욱 힘들어졌다. 일반 동학도들에게 우선은 이런 과도한 세금을 덜어주고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다.
황구징포란 어린아이들한테서도 군포를 징수한다는 뜻이며 백구징포란 노인들한테서도 군포를 징수한다는 뜻이었다. 법으로는 16세부터 병역의무를 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때부터 군포를 내게 되어 있었으나 사내아이를 낳았다 하면 낳은 해부터 군적에 올려 징포를 했다.
황구라는 말은 금방 깨인 새새끼의 부리가 누런 데서 새새끼를 일컫는 말로, 갓난아이를 새새끼에 빗대 귀엽게 일컬을 때 쓰는 말이었으며, 백구는 황구에 대응하는 뜻으로 노인을 일컫는 말이었다. 55세면 군역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무시하고 있었다.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은 약과고 죽은 사람까지도 군적에서 빼주지 않고 그대로 징포를 했다. 그걸 백골징포라 했다. 죽어 백골이 되었는데도 백골한테서까지 징포를 했던 것이다. (93)
조병갑의 횡포의 대표적인 것이 만석보라는 저수지를 만드는 일이다. 이미 보가 있는데 그 밑에 만석보를 새로 만든다. 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노동은 백성들이 제공하고 필요한 나무도 산주인으로부터 강제로 가져왔다. 백성을 위해 고부군수가 한 일은 없는데 불필요한 만석보를 만들어놓고 물에 대한 세금을 내란다. 만석보가 없어도 그 위에 있는 보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물이 흐르는 길목에 보를 만들어 세금을 내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온갖 이름을 붙여 세금을 요구한다. 벙거지와 포졸들을 보내 버티는 집에 들어가 돈이 될만한 집기와 가축을 빼앗아 간다. 지금으로부터 130년 전이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하기도 힘들다. 노예와 같은 삶이다.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탐관오리들은 자신들의 축재에만 관심이 있다. 인맥으로 이어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해서 백성의 힘이 없어 쓰러질 수밖에 없는 나라 상태를 보여준다.
연엽이는 부자로 살았으나 연엽이 아버지는 농사철이면 아들이고 딸이고 머슴들과 똑같이 논밭으로 내몰았다. 그때마다 살림을 모은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고 사람이 손에서 일을 때면 근기(根氣)가 사라진다고 이르기를 잊지 않았다.
근기란 사람의 근본이 되는 힘으로 일을 참아내는 정신력을 말하는 것이니 그는 노동에 대한 가치를 보다 높은 데서까지 찾고 있었던 것이다. 성실하게 살아오면서 체험을 통해 얻은 교훈인 듯했다. (130)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대원군에 대해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원군은 나라 안을 근심하든 밖을 근심하든 그는 어디까지나 왕실의 안위만을 생각할 뿐 백성은 안중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 점이 우리들하고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전에 그가 탐관오리를 그토록 엄하게 징치 했던 것도 어디까지나 사직을 위한 것이었고 양반들에게 군포를 물렸던 것도 상민의 군포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 아니고 그만큼 조정의 수입을 늘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대원군을 볼 때 항상 조심해서 보아야 할 점이 바로 그 점입니다."(194)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480
독서습관569_복합상소의 역풍과 만석보 물세 그리고 두레와 향약_녹두장군④_송기숙_1989_창작과비평사(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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