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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68]어머니_재일교포의 삶의 이해와 기록의 소중함

by bandiburi 2022. 5. 17.

 

작가 강상중이란 인물과 그의 가족사를 알아가는 책 <어머니>다. 작가와의 첫 만남이었지만 과거의 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글을 통해 얻은 소감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기록의 소중함이다.
강상중이란 작가가 자신이 듣고 경험한 부모님의 삶을 <어머니>로 풀어내지 않았다면 일부에게만 한정된 기억으로 그쳤을 이야기다. 작가만의 스타일로 읽기 쉽게 글로 남겼기에 우리는 강상중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의 전후 힘들었던 삶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작가와 유사한 시대를 살았던 나의 부모님을 본다. 그리고 부모님 자서전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머니와의 기억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살아갈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25)

전등은 고사하고 촛불조차 없는, 문자 그대로 암흑의 인생으로 전락하여 모자는 숨을 죽인 채, 버림받은 채, 그저 생존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85)
"알았네, 이와모토. 여기서 같이 살자고. 끼니를 때울 벌이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구마모토에서 일해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나서 우리나라의 상황을 봐서 돌아가면 돼."(115)

 

 

둘째, 재일 교포들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다. 재일교포 1세들은 일제 강점기에 강제노역 등을 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본에서 살게 된 분들이 많다. 전쟁이 끝난 후 곧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차별받아도 그 희망으로 버텼다.

해방 후 한반도는 극도의 혼란의 시기였던 반면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경제가 잠시 살아났다. 작가의 부모는 고물장사를 통해 사업을 키워갔다. 1950년대 일본에 비해 남한의 상황은 열악했다. 특히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정치적으로도 혼돈이었다. 한국과 일본 두 곳에서 삶의 흔적과 추억을 가진 재일교포들이 고향을 찾았지만 기억 속의 고향은 사라져 간다.



텔레비전이 세 평짜리 안방에 주인이 되자마자 우리 집에 드나드는 소매인들과 그 자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 늙은이나 젊은이나 이때만큼은 마치 성스러운 본존불을 예배하듯이 화면에 등장한 역도산의 모습을 못 박힌 듯 바라보았다. (157~158)

그 돈은 너희에게는 큰돈이지만 산소를 지키는 일이 있기 때문에 준거다. 하지만 돈에는 보이지 않는 발이 달려 있는 법이니, 금방 없어질 거다.(201)

나는 할머니가 불쌍해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지만 제대로 말을 걸어주지도 못하고 그저 우두커니 서서 할머니의 몸짓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가 조선은 이다지도 비참하단 말인가. 왜 좀 더 편하고 넉넉하지도 못하고 즐거운 표정이라고는 찾을 수도 없는지 모르겠다.'(231)



마지막으로 역사에 대한 이해의 필요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언제든지 검색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즉시성은 유익하면서도 위험하다. 다양한 앱을 이용해 원하는 활동이 가능하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콘텐츠는 문자의 한계를 넘어 실물을 보고 이해할 수 있다.

시공간을 넘어 세계 어느 곳이든 가볼 수 있고 역사의 한 장소로 안내해준다. 그 속에는 사실과 가짜가 혼재되어 있다. 검증은 사용자의 몫이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문자와 동영상의 콘텐츠 홍수 속에서 우리의 역사 인식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단편적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적인 자료들이 우리의 시간을 잠식한다.

좋은 책을 통해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현재를 있게 한 과거를 돌이켜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의 삶의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을 디딤돌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부득이하게 혼란의 시기에 태어나 과도기를 살았던 조부모, 부모 세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확장한다면 우리의 인문학적 소양도 깊어질 거라 본다.



누가 어디에 살아도 해는 뜨고 또 진다. 특별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함을 당연함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 있는 그대로 사는 거야. 있는 그대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 나라에서 태어났고 또 나는 어쩌다 우연히 일본에서 태어났다. 단지 그뿐 아닌가.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233)

그러나 한편 생각으로 자신들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아이들이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쓸쓸했다. 아들들의 성장은 기쁘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까웠다. 어머니 내면에 우울한 감정이 쌓여가고 있었다. (243)

형수 순자가 보낸 소포가 우리 집에 배달된 것은 어머니의 1주기 제사를 마치고 난 얼마 후였다. 생전에 어머니가 나한테 목소리 편지를 보내고 싶다고 형수에게 부탁하여 녹음을 해둔 카세트테이프가 있다는 이야기는 어머니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형수가 어머니의 1주기를 맞아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우연히 발견한 모양이었다.

독서습관 568_어머니_강상중_2011_사계절(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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