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 도서관에 갔을 때 사회학도였던 아내가 빌린 책이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란 제목이라서 왕년의 사회학도가 '사회학'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나 보다 싶었다. 재미있냐고 물으니 '읽을 만하다'라고 한다. 그래서 책을 들었는데 '머리말'부터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배경과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갔을 때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 공감하며 읽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에서 오랜 기간을 살면서 무의식중에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회적 가치들이 있다. 책에서는 우리 사회를 잘 보여주는 영역을 '상식', '명품', '언론', '종교', '자살', '노동', '집'과 같은 총 25개의 단어로 정리했다. 그리고 각 단어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관련된 책의 내용을 인용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 언급한 로드리게스의 노래집 '콜드 팩트'가 이런 사회적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용어라고 본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사회의 구성원들이 '콜드 팩트'를 직시해 문제점을 인식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회복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개인의 불행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그런 환경이 되도록 방치한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하는 것처럼 조장한다. 현실은 개인의 불행에 대해 개인만을 바라보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려 한다. 세계적으로 대학진학률이 높은 나라지만 지적 성숙이 아닌 성장만을 지향하고 있다는 저자의 비판은 통쾌하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교육, 보여주기식 스펙 경쟁일 뿐인 배움은 즐거움이 아닌 고역일 뿐이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해, 자신에 대해 제대로 볼 수 있는 배움이 돼야 한다. 내면에 대한 성찰이 없이 맹목적인 암기와 시험 위주의 교육은 허상이다.
욕심으로 가득찬 노년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숙함이 드러나는 인생 후반기가 돼야 한다. 성숙한 노년이 성숙한 장년을 이끌고, 젊은이들이 올바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성숙의 과정을 지나도록 안내해야 한다.
우연히 접한 좋은 책이다. 저자인 노명우 교수에 대해서도 응원을 보낸다.
아래는 책에서 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을 발췌했다.
이 책은 이름난 명주는 아닐지라도 잔치를 위해 정성과 관심으로 빚은 술과 같다. 술을 나누는 자리를 우리는 잔치라 하고 서양에서는 심포지엄이라 한다. (10)
부자 되기라는 상식은 부동산 거품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내가 사둔 아파트의 가격은 하락해서는 안 된다는 자폐적 사유가 자라는 온상이 된다. (26)
선진국 타령은 내치의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이 단골로 사용하는 무기이다. 노동조합이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파업을 해도, 복지를 확대하자고 주장해도, 그 어떤 주장이나 요구도 모두 잠재우는 만병통치약은 "선진국이 될 것이냐 여기서 주저앉을 것이냐"라는 협박성 구호이다. 유길준의 안경을 변조한 박정희의 선글라스를 여전히 쓰고 있는 사람들은 이 협박에 쉽게 굴복당한다. (57)
혜초는 723년 당나라를 출발하여 천축(인도)을 거쳐 서쪽 대식국(아랍)의 페르시아까지 갔다가, 중앙아시아를 통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장안으로 되돌아오는 장장 4년에 걸친 여행을 떠났다. 그 여정을 <왕오천축국전>에 남겼다. (59)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 각각의 생활 방식, 직업, 성격 혹은 지적 수준과는 상관없이 단지 그들이 군중에 속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합체 공동의 영혼을 지니게 되며, 이로 인해 그들은 개인으로 머물 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64~65)
군중을 폄하하지 않고 기다리면, 군중 속에서 공중이라는 꽃을 피는 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사람의 떼가 군중이어야만 이득을 얻는 패밀리는 공중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공중은 자신들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세력이지만, 군중은 자신들의 악행을 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69~70)
여론의 순환을 막는 요인들은 사회의 콜레스테롤에 불과하다. 여론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정치권력만이 이러한 피의 순환을 방해하는 유일한 콜레스테롤은 아니다. 여론 기관이 아니라 이윤 기관이 된 언론 또한 위험한 신종 콜레스테롤과 다를 바 없다. 언론 그 자체가 권력이 된 언론권력은 난상을 거친 여론의 형성에는 관심이 없다. 언론권력의 최대 관심사는 여론 관리를 통한 이윤 창출이다. (75)
국가가 관리하는 기념일이 빈번해질수록, 승리자가 세운 기념탑이 높아질수록, 기념탑은 '망각'이라는 그림자를 길게 내리운다. 나치즘이 승리한 현실이 지속된다면 보호될 가치가 없는 유대인이었던 벤야민은 역사의 공허함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 오롯이 담아냈다. (83)
진보라는 대의를 강조하는 사람은 '역사를 위하여'라는 거룩한 논리를 내세우며 희생당한 사람들의 고통에 눈을 감거나 심지어 '역사의 진보'를 위하여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천사에 감정이입하는 벤야민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파국을 외면하지 않는다. (85)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학자가 있다. 그의 형은 1971년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으로 투옥되어 7년을 복역하고도,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0년을 더 갇혀 있어야 했던 서준식이다. 남과 북의 대치라는 현실에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또 더해진 가혹한 디아스포라의 운명 속에 갇힌 학자 서경식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에서 마흔아홉 명의 사람들에 대한 추념으로 우리를 이끈다. (87)
하지만 원자력 에너지가 청정에너지로 가장되는 의미의 전도가 일어나는 시뮬라크룸 simulacrum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위험'이라는 단어는 갈 길을 잃고 만다. (99)
종교에서 인간의 구원이 신에게 달렸다면, 종교가 된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돈에 의해 구원된다는 차이만 있다.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에 의해 구원받으며, 돈이 없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죄를 짓고 있음과 마찬가지이다. (106)
나는 어떻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건지 궁금했다. 수전노는 자본주의 하에서 가장 종교적인 인물이다. 수전노는 자본주의에게 모든 열정과 의지를 헌납하는 중세의 수도사와 같다. 반면 자본주의가 맥을 못 추면, 종교 역시 맥을 못 춘다. 스칸디나비아의 신 없는 나라들이 그렇다. (108)
같은 대학 출신임이 확인되자마자 형 동생이 되고 누나 오빠가 되며,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형제님 자매님이 되어 버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무리를 짓는 이유가 거룩한 믿음도 학문에 대한 열정도 아니라 이익 보장을 위한 멤버십임을 숨기고 있다. (116)
자기계발서는 성공을 보장하는 책이 아니라, 심리적 위안을 선물하는 책이다. 역설적으로 자기계발서의 독자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뿐이다. (...) 재벌 2세의 아들은 아무리 낭비벽이 있어도 가난뱅이가 될 수 없다. 가난뱅이는 아무리 근검절약해도 아파트를 살 수 없다. (126)
하지만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속물근성을 위장하기 위해 과거의 귀족적 호모 루덴스의 스타일을 끊임없이 소환한다. 그리하여 롯데'캐슬'부터 타워'팰리스', '경희궁'의 아침과 '갤러리아', '임페리얼'과 '다이너스티'에 이르기까지 귀족적 품격을 흉내 내는 제스처는 넘쳐 나지만, 명예를 지키기 위한 의무를 소중히 여기는 하위징아와 같은 진짜 보수주의자의 설 자리는 없어진다. 보수주의가 있던 자리를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보수를 사칭하며 차지하고 있다. (133)
소비자본주의는 수치심 자극이 그 어떤 판매 기법보다 효과적임을 알아냈다. 궁정의 '쿠르투아지'가 귀족에게만 수치심을 자극했다면, 소비자본주의는 '대중'의 수치심을 이용한다. (...)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던 이마의 주름이 창피해진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을 입고 나서면 망신스럽다. 휴가를 해외로 다녀오지 않았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141)
알코올 중독의 원인은 중독자의 '팔자'가 아니라 '술 권하는 사회'이며 자살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불행의 다른 모습이다. 불행한 팔자처럼 보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개인의 삶 속에는 그 시대의 불행이 스며들어 있다. (179)
도덕적 범주 속 노동은 완성된 인간성을 향해 달려가는 활동일 수 있지만, 현실의 노동은 간과 쓸개를 자존감과 함께 가져가고 결코 넉넉하지 않은 보너스인 양 스트레스와 직업병을 함께 담아 되돌려 준다. 이 거대한 격차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마르크스의 <임금노동과 자본>을 읽는다. (187)
임금노동이 시작되는 순간 그의 삶은 정지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퇴근할 때야 되찾을 수 있다. 임금노동이 시작되는 순간 개성이나 성격은 자취를 감춘다.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도 승무원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감정노동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성격인 척해야 한다. (191)
혼자 피우는 게으름은 패악이지만, 사회가 허용하는 게으름은 사람의 목숨까지 살린다오, 일하다가 죽는 과로사를 조장하는 개미들의 사회가 정상이라 할 수 있나요? (202)
상품을 통한 개인 회복의 한계는 분명하다. 개인의 구원은 상품 소비에 의한 개성 회복이 아니라, 개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문제 삼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개인 구원의 최종 책임은 개인에게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책임을 개인을 둘러싼 사회에 물어야 한다. (219)
개인의 먹고살 걱정을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는 개인을 대리할 자격이 없다. 개인은 국가가 최소한 먹고살 걱정을 해결해 준다는 믿음에 따라 많은 권리를 국가에 양도했다. 개인의 권리를 양도받은 국가가 국가에게 귀속된 과대한 권리는 당연하고 개인은 국가에 대해 의무만 지는 개체라 주장한다면, 그때부터 국가는 정당성을 상실한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만약 그 이익집단이 소수 개인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면 그때부터는 국가가 아니라 패거리라 불러야 한다. (220)
이 정도로 엄청난 양의 배운 사람을 배출하는 성장한 사회라면, 군자는 아니어도 최소한 성숙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품격 있는 나라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배움에 투자했지만 '싸가지 없는 애들'과 '추접스런 중년'과 '나잇값 못하는 늙은이들'이 뒤섞인 지하철 풍경은 배움이 사람을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철썩 같은 믿음을 접도록 만든다. (241)
양적 팽창을 의미하는 것에 불과한 '성장'이 '성숙'을 대체하여 삶의 목표가 되는 사회에선, 배움조차 성숙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팽창 숭배 사회에서는 배움도 스펙의 도구로 전락했다. 전 국민이 죽어라 공부하고 졸업 후에도 승진하기 위해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지식사회의 외양은 갖추었어도 성숙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배운 사람과 성숙한 사람은 일치하지 않는다. (244~245)
거장들은 인생의 끝에서 소박한 깨달음을 얻는다. 삶의 끝자락에 와 있다는 건, "사회 내에 안착함으로써 얻게 되는 많은 보상들을 얻기"에는 이미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년의 거장들은 출세에 집착하지 않고, 지위로 인한 보상에 둔감해진다. 늙을수록 탐욕스러워지고 볼에 심술살이 늘어나는 사람과 달리 나이 들었기에 무르익은 사람은 "늙어 가지만 정신적으로는 민첩한, 그리고 금욕적인 평온함이나 향기로운 원숙함"을 보여 준다. (253)
지적 장인은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적 장인이 되라는 일종의 허가증이자 명령서인 박사학위증을 받고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경청하고 암기하고 반복하는 학생의 지위를 고집했다. 한 번 익힌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261)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책을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모범생은 '세계로서의 사회' 속에서 전문가 대접을 받을 수 있지만, '세상으로서의 사회'에서는 애송이일 뿐이다. (263)
나의 불행의 근원이 모두 기구한 팔자 때문이라고 믿게 만드는 환등장의 불을 끄고 그 어둠 속에서 세속의 리얼리티와 마주칠 때 그리고 '콜드 팩트'를 찾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힐리의 대상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임을 깨닫게 된다. (266)
독서습관561_세상물정의 사회학_노명우_2021_사계절출판사(220429)
■ 저자: 노명우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면서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학자들이 해석하는 학문적 세계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을 살면서 느끼고 생각한 세상에 대한 해석을 중개하는 헤르메스의 관점을 기대하며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한 사회학자의 세상 경험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자, 자기도 모르는 채 세속의 사회학자였던 세상 사람들의 경험이 하나로 묶이는 공간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으로부터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열정을 물려받았고, 버밍엄학파의 문화연구에서는 동시대에 대한 민감한 촉수의 필요성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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