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재의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에 소개된 책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을 읽었다. 김찬삼과 같은 1926년생인 정치인 김종필이 떠올랐다. 동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이다.
김찬삼은 대법관인 아버지를 둔 사람이지만 그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아버지의 지원을 바탕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가 되었다. 김종필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2018년 사망할 때까지 권력의 중심부에서 있었다.
김찬삼은 여러 여행기를 남겨 후배들에게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었고, 김종필은 <김종필 증언록>을 남기며 자신의 치적을 정리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이름을 남긴 셈이다.
몇 가지 소감을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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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유복한 환경을 잘 활용했다.
전후에 가난과 정치적 부패로 국민들의 삶이 바닥이었던 1950년대에 세계여행을 할 수 있었던 가정환경은 김찬삼에게 타고난 복이었다. 대법관이었던 부친의 명성과 권력을 기반으로 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지만 그는 국내 각지로, 나아가 세계 각 나라를 여행하고 기록으로 남겨 국민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둘째, 평범하고 검소했다.
부유한 가정이지만 옷차림이나 대화에서 그런 모습을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부모의 재력이 세습되고 그 부에 대한 기여가 없었던 자식들이 교만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우가 언론에 간혹 보도된다. 그런 측면에서 김찬삼은 겸손했다.
셋째, 슈바이처를 한국에 소개했다.
슈바이처 박사에 대해서는 과거의 역사적 위인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1963년 김찬삼이 아프리카 가봉을 여행할 때 함께 사진을 보니 그리 멀지 않은 시기를 살다 간 인물이었다. 김찬삼은 그의 존재를 대한민국에 알렸다.
마지막으로 인생수업에 여행이 가장 좋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접하며 일상의 틀에서 벗어난다. 고난을 겪기도 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여행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과시용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여행을 통해 체득한 점을 타인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타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더욱 의미가 크다. 독서도 일종의 간접 여행이다.
4월의 마지막 주말을 맞아 읽은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은 새로운 인물과 함께 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여행이었다. 아래는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문장들이다.
(...) 우리가 얻은 소중한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는, 사람에게 '미소'가 얼마나 큰 자산인가를 알려 준 것입니다. 여행 중에 수없이 부닥치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불소통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오직 미소만이 그 위험에서 구해 주었다는 사실을 큰 교훈으로 인식하게 한 것입니다.(...) 둘은, 머리 좋은 사람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기고,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즐기며 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을 입증해 준 것입니다. (23)
나의 자그마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인간 수업에 있어서 여행처럼 좋은 것이 없다. (64)
'이섭대천(利涉大川, 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은 큰 강은 인생에서의 곤경이나 위험, 이를 극복하면 큰일에 다가간다는 뜻이다. 고대인들의 도강(渡江)의 의미를 강조한 <주역>에 자주 나오는 말이다. (73)
이렇게 굶주리다시피 해도 무한한 힘이 솟구치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이른바 여신(旅神)이 있어 나를 돕는 때문일까? 매양 새로운 나라 사람과 자연을 보는 기쁨이 둘도 없는 영양제이기 때문일까. (86)
최근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폴 스톨츠는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라는 책에서 탐험가들은 IQ나 EQ보다 AQ(Adversity Quotient), 즉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선생도 이 역경지수가 대단히 높았던 분인 것 같다. (93)
슈바이처 박사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알린 사긴이 바로 선생의 여행기로부터인데, 1963년 11월 제2차 세계여행 중 아프리카 횡단 때 만나 15일 간 함께 생활할 때 찍은 사진이다. (...) 이때 선생은 슈바이처 박사로부터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카키색 바지', 또 하나는 좌우명이다. 전자는 가보로 삼았고, 후자는 선생을 보통명사 '김찬삼'으로 만든, 짧고 간명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잠언이다. '우물을 한 우물만, 물이 나올 때까지!'(96)
그러나 여행 중 다친 머리와 갈비뼈를 완전히 치료하지 못한 채 다시 여행을 한 것이 결정적인 발병의 원인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결국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고, 화가 클레가 그림물감 독소 때문에 죽고, 사냥을 즐긴 헤밍웨이가 자기 엽총에 죽은 것에 비할만한 '여행가 김찬삼은 여행으로 인한 사고로 죽다'로 회자되지 않겠는가? (109)
그는 해외여행 중 일과 처리에 철저를 기했다. 그날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데 매우 충실했다. 그래서 그의 기행문이 그토록 실감 나고 신선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그는 생생한 기록을 정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180)
독도에는 일본제 38 구경 총을 든 한복 차림의 경비인 3명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이끼 낀 절벽에는 노도가 철썩일 뿐이었다. 잘 곳도 먹을 것도 물론 없다. 아니 마실 물도 없다. 그곳 경비인은 동굴 천장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모아서 쓴다고 했다. 참으로 독도 체류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184)
1910년 망명길에 오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서간도 환인현으로 가서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남북 만주 일대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만 번 읽느니, 집안 유적지를 한번 보는 것이 낫다"고 감탄한 것도 같은 여행의 놀라움의 표현 이리라(<조선상고사>) (217)
이때 수도여자 사범대학 김찬삼 교수님께서 신문에 세계여행을 하고 쓴 기고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배낭을 메고 서울 근교를 두루 답사하고, 방학 때에는 전국 각지를 누비게 되었다. (220)
흔히 여행의 목적은 스스로를 재발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익숙하기 때문에 스스로 길들여진 한 장소를 버리고 떠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의 안정된 구조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킨다. 이러한 '분리'는 환경에 익숙해진 자신에 대해 일종의 자기부정을 수행함으로써 특정한 환경에 의해 굳어지기 전의 진정한 자기, '참나'를 재발견하려는 정신적 자아 추구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부정'으로서의 떠남은 자기 자신을 원래의 장소로부터 떠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만큼이나 진정한 자아를 자신이 버리고 떠난 그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결국 떠남은 되돌아가기 위한 긴 우회의 여정이자 자신을 발견하려는 정신적 편력의 과정과 밀접히 결합된 전체 과정의 시발점인 셈이다. (272~273)
흔히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라고 표현한다. 바꾸어 말하면 독서는 책으로 하는 여행이기도 한 셈이다. (277)
독서습관559_세계의 나그네 김찬삼_김찬삼추모사업회_2009_이지출판(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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