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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42]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_아동문학가 이오덕과 권정생의 편지 우정

by bandiburi 2022. 3. 12.

'세상의 모든 음악'이란 프로그램에서 권정생 선생이 교회의 종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권정생'이란 분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강아지 똥> <몽실언니> 정도만 알고 있고 그분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이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십니까>은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1973년부터 아동문학가로서 서로를 위로하며 교환했던 편지를 담고 있습니다. 12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서로를 선생님이라 존중하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특히 결핵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글을 쓰고 있는 권정생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또한 가난한 교사로서 권정생의 글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오덕 선생의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떠올려봤습니다. 

부동산과 돈, 빈부격차, 수도권과 지방의 간극, 정치 갈등 등에 대한 기사가 우리의 눈을 뒤덮고 있는 현재입니다.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급성장한 대한민국은 50년만 되돌아봐도 살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때로는 과거를 되새기고 현재를 비추어보며 반성하고 심기일전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한쪽으로 쏠려 있는 우리의 관심을 잠시 끊고 잠잠히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이 싫었습니다. 더욱이 거짓말 잘하는 어른은 보기도 싫었습니다. 나 자신이 어린이가 되어 어린이와 함께 살다 죽겠습니다. 선생님만은 제 마음 이해해 주실 겝니다. - 권정생(73.2.8) (13페이지)


저도 성인 문학을 했더라면 벌써 이전에 좌절해 버렸을 겝니다. 동화는 그만큼 저의 정신적 무기가 되어 줍니다. 그러나, 그것도 언제쯤 힘이 다해지면 저도 미치고 말 것입니다. -권정생(73.11.6) (39)

모레 월요일은 안동에 갑니다. 선생님이 부쳐 주신 것으로 약도 구입해야 되겠습니다. 제가 가장 곤고할 때, 선생님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결코 죽는 날까지 갚아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만 잊지는 않겠습니다. - 권정생(74.2.15) (44)

제가 돈이 생기게 되면, 건강해진다면, 사회가 알아주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싫답니다. 
각혈을 해 가면서도 공부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 아이도, 저를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가발공장 가 있는 그 애도, 방직공장 가서 나를 위해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가기도 하고 있다는 그 애도, 아침저녁 찾아와서 보채는 이 많은 제 친구들은 나를 마다하고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 권정생(74.4.22) (55~56)

선생님은 저의 동화를 자꾸 좋게 보시려 하는데, 저는 아직 만족한 작품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제 역량 가지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것 같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일인(日人) 작가들의 작품을 능가할 수 있는 동화를 단 한 편이라도 쓰고 싶어요. - 권정생(74.5.6) (60)

<여성동아>에서 원고료가 하만 하만 올까 싶어 기다리던 중입니다. 책은 벌써 5월 초에 왔는데, 왜 고료는 아직 소식이 없을까요? - 권정생(74.7.5) (66)

사실 병들고 가난하게 겨우 목숨을 이어 가는 작가에게 국가에서 밥 한 그릇 먹여 주지 않으면서 세금은 또 무슨 세금이겠습니까. 그런 건 못 내겠다, 낼 돈 없다고 거부하고 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선생님만은 그럴 수 있습니다. - 이오덕(75.1.29) (97)

생활에서 도피한다는 것, 저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생활이 없이 어떻게 글을 씁니까? 제 동화가 무척 어둡다고들 직접 말해 오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 권정생(77.7.5) (159)

선생님, 지금부터라도 저는 인간학을 공부하겠습니다. 한 인간의 선행이나 악행은 모두 그 역사와 사회의 소산물이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살인강도가 있었다면 그건 그 사회 모두의 공동 책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권정생(77.9.24) (171)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길, 그리고 인간이 고루고루 잘 살려면, 많이 벌어 남을 돕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적게 가지는 길이 가장 현명한 짓이라 생각했습니다. - 권정생(79.6.5) (187)

서울에서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 벌어졌는데, 하느님의 뜻인 것 같기도 합니다. 부디 우리 역사가 전진할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데 생각하니, 이것이 앞으로 닥쳐 올 인류의 크나큰 비극의 한 조그만 서막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비관론이지요. - 이오덕(79.11.1) (195)

요즘 젊은이들은 사물의 깊은 곳까지 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의 분단 원인을 너무도 단순하게 취급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 권정생(80.5.13) (204)

월급 적게 받고 많이 받는 것 따위로 문제 삼는 것조차 저는 싫습니다. 다만 일한 노력만큼 대가를 받지 못한 데 대한 문제는 있어야겠지요. 많이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보다 생각과 행동이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배운 사람의 가치는 그가 일터에서 앞장서는 데 가치가 있는 것이지 많이 차지하거나 못 배운 사람을 지배하는 데 있는 것이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 권정생(80.7.24) (207)

도둑놈인 장본인보다 도둑놈을 만들어 준 주인이 더 큰 도둑놈입니다. 사치한 여인들이 값비싼 귀고리를 달고 다니는 것과 문학가란 이름을 달고 다니는 글쟁이와 다르다고 보시는지요?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 차라리 침묵하고 있는 쪽이 당당할지도 모릅니다. 어두운 시대엔 비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자가 바로 한국의 글쟁이들일 것입니다. - 권정생(80.12.1) (210)

권 선생님 편지 보고, 그렇게 돈이란 걸 잊어버릴 수 있는지, 참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끊어 버리는 데서 아동문학의 정신이 싹트는 것이라 봅니다. 오늘날 우리 아동문학이 왜 이렇게 형편없이 저질이 되고 난장판이 되고 있는가, 결국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돈과 명예에 집착하고 있고, 입신출세식 삶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 이오덕(82.10.12) (245)

시몬 베유도 그랬어요. 노동자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프랑스의 반골시인 랭보가 스스로 노동자가 될 수 있었던 용기도 단순한 반항적 기질의 소산은 아닐 것입니다. - 권정생(83.5.30) (269)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남보다 유리하고 편한 인생을 사느냐는 마음뿐입니다. 정말 인간에게 고등교육이 필요한지 교육에 대한 회의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권정생(84.12.28) (306)

제가 그토록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래도 잃지 않는 한 가지 오기는 자신의 값어치를 지키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값어치를 너무 헐하게 내던지고 맙니다. 왜 그토록 고귀한 자신을 물건처럼 상품으로 만드는지 안타깝습니다. - 권정생(85.4.11) (307)

행복이라는 환상을 떨쳐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 잘산다는 인간들, 선진국, 경제대국 이런 것 모두 야만족의 집단이지 어디 사람다운 사람 있습니까. - 권정생(85.10.19) (311)

병원은 자꾸 겁이 납니다.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집니다. 그리고 육식보다 채식이 훨씬 낫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훨씬 좋은 것이지요. 굶주림만 없다면 가난해져야만 해요. - 권정생(85.11.4) (315)

고야는 인간을 당나귀로 혹은 산양으로 묘사하면서 전쟁과 억압 장치와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했어요. - 권정생(86.2.12) (316)

요새 와서 저도 세대 차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의 심각한 고민이란 정신적 고민보다 물질적 고민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들 시대에는 가난 자체가 오히려 정신적 힘이 되어 주었고 훨씬 건강했습니다. - 권정생(90.9.3) (345)

자연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을 어떻게 보나 하는 문제가 되고, 그것은 그대로 문학관이 됩니다. 문학을 한다고 하는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뜻밖에도 아주 사람답지 못한 천박한 자연관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이오덕(02.11.22) (360)


독서습관542_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_이오덕&권정생_2017_양철북(220312)


이오덕과 권정생 @ 경북 안동 일직교회 앞 (출처: 국민일보)

■ 저자: 이오덕(1925~2003)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무 살에 경북 부동공립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1986년까지 마흔두 해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서른 살이던 1954년에 이원수를 만났고, 다음 해에 <소년세계>에 동시 '진달래'를 발표하며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기 위해 아동문학 평론을 하기 시작했고, 1976년 '부정의 동시' 평론으로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이오덕은 1973년 1월 18일에 아동문학가 권정생을 찾아갔다. 어른, 아이 모두 권정생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 권정생을 세상에 알렸고 평생을 권정생과 마음을 나누는 동무로 지냈다. 

 

■ 저자: 권정생(1937~2007)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46년에 한국으로 왔다.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안동 일직에 터를 잡고 평생을 조탑 마을에서 지냈다. 전쟁과 가난으로 스무 살에 결핵에 걸려 홀로 아프게 살았다.

1967년 '강아지 똥'으로 등단했고,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다. 이 작품이 신문에 실리고 며칠 뒤 이오덕이 찾아왔다. 권정생은 이오덕을 만난 뒤 "선생님을 뵙고부터 2, 3개월마다 한 번씩 찾아 주시는 것으로 사람 사이의 고독만은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이오덕의 정성으로 권정생의 동화가 출판되기 시작했고 권정생은 죽을힘을 다해 동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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