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안심하고, 포용하고, 신뢰하며, 활력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이는 정의와 평등, 개인 자율성과 사회적 유대감 등 서로 길항관계에 있는 '사회적 가치'가 잘 구현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이 넘치되, 각자도생 하지 않고 서로 신뢰하며 잘 뭉치는 곳, 체제의 규율과 일관성이 뚜렷하되 생활세계를 질식시키지 않는 곳, 활력 있는 시민사회의 도전이 체제를 기득권에 안주하지 못하게 긴장시키는 곳이 품격 있는 사회다. (296)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잘 진단한 책입니다. 조직생활을 하는 직장인으로,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로 저자의 분석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성장해서 의식주를 걱정하는 단계를 벗어나 '품격'을 논할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품격'보다는 물질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더 가지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익숙해지다보나 경쟁에서 승리한 자에 대한 부러움과, 패배한 자에 대한 멸시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각자도생의 치열함 속에 선진국 수준의 사회에 도달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북유럽과 같이 사회가 개인이 실패해도 된다고 허용하는 사회로 가야 합니다. 경쟁에서 실패하면 회복할 가능성이 낮은 사회에서는 창의와 도전보다는 안전과 무사안일을 택합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습니다. 미래가 우려됩니다. 인구 구조도 불리한데 '품격'을 추구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더욱 암담합니다.
우리 사회는 어려움 속에서 더욱 강하게 단결해서 이를 극복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측되는 미래를 밝게 만들기 위해 저자가 제기하는 '품격 있는 사회'로 가야겠습니다. 국가의 자원을 제대로 안배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위정자들의 역할이 큽니다. 20대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니 앞으로 5년을 잘 이끌어 가길 기대합니다.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공동체의 구속력이 약해지면 고립된 개인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자살이 빈번해지는데 뒤르켐은 이를 '이기적 자살'이라 명명했다. 반대로 개인이 과도하게 사회에 통합되었을 때, 자신이 속한 집단의 가치를 개인의 가치보다 더 중시하게 되어 집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이타적 자살'이라고 했다. 또한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사회규범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무규범 상태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자살을 '아노미적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32)
통계청장을 역임한 오종남 박사가 쓴 책 <은퇴 후 30년을 준비하라>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책에서 저자는 태어나서 30년 공부하고 준비하여 운 좋으면 30년을 뼈 빠지게 일하는데 은퇴한 후 여전히 30년을 더 살아야 하니, 자식들에게 미리 재산 물려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노후를 지혜롭게 준비하라고 했다. (47)
인생에서 실패할 기회를 얻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대부분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자식이 창업한다고 해도 결사반대하기 쉬운데, '실패해도 괜찮으니 무엇이든 해보라'고 등 두드리며 지원할 수 있는 부모만이 중산층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이런 기준으로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62)
대표적인 복지국가, 예컨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가 한국과 다른 점이 바로 신뢰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가 높다. 달리 표현하면 가족에 대한 신뢰와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의 차이, 즉 신뢰격차가 다른 나라들에 비교해 현저히 적다. 그래서 그들은 월급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고 그 세금이 내가 전혀 모르는 약자를 위해 쓰이는 것에 동의한다. 거꾸로 내가 그런 약자의 위치에 처하게 될 때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낸 세금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뢰가 쌓여 있는 나라가 이른바 복지국가다. (81)
대략 지난 200여 년을 돌이켜보면 약 70년씩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정조의 사망 시기가 1800년인데 그때부터 70여 년은 세도정치가 횡행했다. 노론의 일당독재가 지속되다 보니 나라가 바닥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 1876년 개항 이후 70여 년은 극심한 혼란기를 거쳐 식민지로 전락한 어려운 시기였다. 1945년 광복 이후의 지난 70여 년이 그래도 놀랍게 회복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92~93)
해방 후 남북한은 모두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북한은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해서 무상으로 나눠줬다. 한편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조봉암이라는 급진파 농업경제학자를 농림부 장관에 임명해 토지 정책을 시행했다. 그는 지주의 땅을 불하받은 농민들이 추수 이후 분할상환하도록 했다. 이 증권을 가지고 산업을 자본화하는 방식으로 농지개혁을 한 것이다. (118)
사실상 서민은 자기 존재를 대단히 비하하는 표현이다. 본래 서庶는 특권층이나 귀족과 대비되는 일반인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첩에게 난 자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당들은 모두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소리 높여 외친다. 모든 국민을 중산층으로 만들겠다고 해야지 왜 서민 운운하는 비하적인 표현을 쓰는 것일까? (125)
이런 역설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허쉬가 제기한 물질재material good와 지위재 positional good의 차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물질재란 한마디로 의식주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경제 성장 초기에는 물질재의 공급이 늘어날수록 체감하는 효용이 매우 크다. (...) 반면 지위재는 나의 효용이 같은 것을 요구하는 타인들의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위치가 더 중요하다. (...) 주변 환경에 의해 내 지위가 결정되는 것, 이것이 지위재다. 문제는 성장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물질재보다 지위재가 훨씬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지위재로는 교육과 직업이 있다. (127~128)
스위스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Status Anxiety>에서 지위 불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중세에 농사를 짓던 농민들에게는 현대인과 같은 불안감이 없었다. 그들은 평생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열심히 농사지으면 열심히 한 만큼 소출이 나오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었고, 자연과의 관계에서 만족을 느낌녀 되었다.
그러나 근대는 조직사회라 할 수 있다. 근대에는 조직 내 경쟁이 중요해졌는데, 이러한 경쟁은 일종의 토너먼트 경기와 같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얼마나 더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하느냐, 더 높은 연봉을 받느냐가 중요해졌다. 이러한 경쟁은 능력주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그 결과 나의 지위가 내 만족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질투감이 생긴다. (129~130)
대학교육이 졸업 이후 삶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뛰어난 능력과 기술과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에 대학을 가는 것인지, 아니면 대학을 가지 않으면 마치 조선시대에 양반이 되지 못해 신분적인 차별을 받았던 것과 같은 사회적 차별이 두렵기 때문에 가려는 것인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131)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해진 이유는 지위재를 둘러싼 경쟁이 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력 기준은 계속 상승하는데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고졸자들이 하던 일을 이제는 대학원 졸업자들이 하겠다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다. 온 국민이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132)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사용한 아비투스 habitus라는 개념은 그와 같은 계급 구조화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포착한 것이다. (...) 오랜 기간 일정한 계급적 지위에 머물게 되면 그에 어울리는 문화적 습관이나 취향이 굳어져서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투만 봐도 그가 어느 계급 소속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주장이다. (137)
박태준은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설립한 포항제철과 일생을 같이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피와 희생의 대가로 사업을 벌이는 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철학으로 구체화했다. 그 지향은 애국주의, 행동은 무소유로 드러났다. (150)
공화 또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공화는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니까 '개인의 자유를 기치로 하는 민주'도 중요하지만 '함께 잘사는 일로서의 공화'도 중요하다는 것이 민주공화국의 뜻이라 하겠다. (156)
재난연구자들은 스위스 치즈 모델을 예로 든다. 재난은 수많은 사전 경고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음 그림처럼 스위스치즈 모양의 방호벽에 뚫린 구멍을 위험요소라고 할 때, 여러 장을 덧대면 위험은 급속히 줄어든다. (174)
젊은 층의 사회적 태도는 서구 못지않게 탈물질화되었다. 탈물질주의 post-materialism는 경제성장이나 튼튼한 국방 프레임에서 벗어나 평등한 사회, 소수의 발언권에 대한 존중, 양성 평등, 환경의 지속가능성, 다문화에 대한 존중 등을 주장하는 사고다. 반면 노인 세대의 태도는 지극히 물질주의적이다. 부국강병과 질서유지를 우선시하고, 범죄를 소탕해 국가질서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
정의로운 사회는 그 사회의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 (244)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잘 발달된 복지 제도가 실패한 사람도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한다. 만약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끝까지 발휘하려 한다. 실패해도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경쟁의 치열함으로 따지면 우리 사회가 아주 심한 편이지만, 그 경쟁의 실상을 보면 모두 창의성이나 혁신과는 거리가 먼 위험회피 경쟁이라는 것, 이것이 사회의 품격과 연관해서 살펴보아야 할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점이다. (255)
■ 저자: 이재열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한국의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를 그리는 사회학자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소장, 미래기획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원장을 맡고 있다.
저자는 다른 나라, 다른 시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찾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품격'의 부재에 있다고 밝힌다. 나아가 물질적으로 성장하는 것보다 '품격'을 높여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진단한다.
저서로는 <경제의 사회학>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는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가치> <아시아는 통한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한다> <아픈 사회를 넘어> <기업시민의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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