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광화문광장에서 들었던 노래를 떠올려 봅니다. (9~10페이지)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한영애, <조율>, <한영애 1992>
유튜브에서 이 노래 <조율>을 들어봤다.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함께 강산애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도 들었다. 고3 학생들에게 위로와 힘을 더해주는 장면이었다. 노래는 가사와 소리로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조율>의 가사에서 진실을 외면하며 살고 있는 우리를 진단하고 하늘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율 한번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그런 길이 있다면 몇 번이고 부탁하고 싶다.
아무런 가치나 신념이 없고 누구의 편도 아니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기회주의자들, 그중에서도 최악으로 꼽히는 조제프 푸셰에 대한 츠바이크의 설명을 떠올린다.
"어느 도박판이든 아무래도 좋다. 왕국의 판이든 제국의 판이든 공화국의 판이든 상관할 바 없다. (중략) 권력에 달라붙어 핥고 뜯어먹기만 하면 된다. 어떤 찌꺼기 권력이라도 그것을 물리치는 도덕적, 윤리적 힘을 결코 갖지 않을 것이며, 자부심이나 긍지 같은 것을 갖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중략) 누가 무엇을 주는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속에서 어떻게 승리하고, 나에게 이익이 되고 내 몫을 챙길 수 있는가가 문제인 것이다."(88)
조제프 푸셰란 인물을 알게 되었다. 1759년부터 1820년까지 살았으니 우리나라의 정약용(1762~1836)과 동일한 시대를 살았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과 반동 그리고 나폴레옹의 부침이 이어지는 시대였다.
루이 16세의 처형, 로베스피에르의 혁명과 처형 그리고 나폴레옹 1세 때의 경찰장관 등을 거친 푸셰는 츠바이크가 설명한 모습 그대로의 삶을 살았다. 자신만의 신념과 추구하는 가치가 없이 오로지 생존하기 위한 기회만을 추구했던 삶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안정된 시대다. 자신만의 사명과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검찰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굉장히 경직되어 있는 조직이다. 기회주의가 만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욕망하고 성취하고 욕망하고 성취하고... 인생의 사이클이 그뿐인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자기 걱정, 자기 생각에만 몰두하고 자기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는 그들. 그들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사람들이라 타인의 처지와 관점 따위는 염두에 둘 여지가 없다. (95)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인식이 강할수록 자기 관점에 매달리는 한편 타인의 관점으로부턴 멀어지고, 인간관계에 대한 지각과 판단이 흐려진다. (101)
나 자신부터 성찰하게 되는 글이다.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이들에게 검소함을 가르쳤다고 하지만 배달음식을 배달료를 선뜻 내면서 시켜 먹는 것을 보면 한 끼 식사 몇 천 원을 아끼기 위해 저렴한 편의점 라면이나 김밥을 먹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내 마음속에도 욕망이 있지만 남을 누르고 비방하며 거짓으로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일도 없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고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는 자들이 정의의 칼을 쥐어든 검찰이라면 걱정이다.
그들의 속사정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 정도로 곪아있으니 검찰을 거쳐 정치판으로 들어가 국회의원이 되어 국민 알기를 개 돼지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 총장에게 검찰 조직의 위세와 위상은 곧 자신의 프라이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나와바리'는 바로 검사들에게 재산 축적의 원천이다. 그래서 변호사 개업을 목전에 둔 검찰 간부들은 검찰 개혁에 결사 항전할 수밖에 없다. (111)
그리고 검찰이 진짜 마피아와 닮은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오메르타'라는 침묵의 규율이다. 조직의 비밀을 외부에 발설한 자에게 피의 보복을 하는 것이다. (112)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검사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니 한심하다. 자신과 조직만을 바라보고 살고 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공감 능력과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
권력과 돈에 점점 눈이 멀어진다. 갈라파고스에 사는 생물체가 탄생한다. 검찰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피아처럼 밖으로 드러내면 집단으로 비난한다.
결국 조직에서 멀어져 전관예우에서 멀어질까 두려워하는 거다. 똑똑한 사람들이 검사가 되어 비굴한 자들이 되고 바보가 되는 조직처럼 보인다. 줄을 잘 서야 일을 덜 하면서도 승진하는 조직이다. 지나칠 정도로 똘똘 뭉쳐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조직이다.
정계로 진출하는 단계처럼 많은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국민의 대변인 행세를 하는 자들도 있다. 그들을 두둔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왜일까. 자신에게 정의보다 가까운 이득이 있길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갈라파고스에는 오랜 세월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진화 과정을 밟아온 독특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검찰 조직, 이곳이야말로 갈라파고스다. (138)
금수저, 흙수저는 일반 국민들에게만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법을 집행하는 검찰 조직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중략) 이렇듯 검찰 내에서도 흙수저와 금수저가 있고 차별과 불공정이 존재한다. (148~149)
의사나 검사를 싸잡아서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법의 권력, 생명의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금융지주 회장의 자녀는 성실하지 못한 검사여도 징계가 느슨하다.
반면에 검찰의 내부를 살짝 밖으로 드러냈던 흙수저는 징계를 받는다. 검사의 세계에도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이 있다는 게 놀랍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분위기가 농화 되고 있고 언젠가는 곪아 터지는 때가 올 것이다.
김학의 사건의 수사단장을 맡은 여환섭 단장은 그 당시 참 착잡했을 것 같다. 검사의 직무 관련 범죄를 수사하다 검찰 내 천덕꾸러기가 된 조희진 전 검사장, 양부남 검사장을 목도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검사들에게는 국민을 배신하는 대가는 크지 않으나 조직을 배신하는 대가는 크다. 여환섭 단장이 나중에 혹 김학의 사건을 뭉개거나 말아먹어도 힘없는 국민은 SNS에 욕이나 한 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말이다. (153)
김학의 성접대 사건을 또렷이 기억하고 지켜보고 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명백해 보이는데 검사들의 눈에는 정의가 아닌 조직이 먼저인 것 같다. 해외로 도피하려는 것을 잡았는데 그의 죄가 아닌 그 절차를 문제 삼는다.
언론이 장단을 맞춘다. 뻔뻔하게 접대를 받았으면 죄에 대해 벌을 받으면 된다.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비디오가 공개되었을 때 이제는 벌을 받겠구나 싶었는데 여기에도 이런저런 변명이 나온다. 그의 말로는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오래된 관행이다. 검사가 퇴직하고 변호사로 개업하면 개업 직후 1년 이내에 평생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고 회자되는 이유가 전관예우에 따라 승소율이 높아지고 특히 첫 사건은 무조건 승소하기 때문이다. 또 그 변호사가 정계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으니 검사들 간의 상명하복은 철저할 수밖에 없다.(200)
나의 가장 소중히 지니인 것이 사법시험, 사법연수원 성적 혹은 그로 얻게 된 지위인 사람들은 이렇게 초라하다. 타인과 비교하거나 타인을 억압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훌륭함을 드러낼 뿐이니. 하지만 인생의 품위란 것을 지키는 방법은 그게 아닐 터다.(248)
좋아하는 시가 있다. '천둥'이라는 제목으로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어보았느냐"라는 짧은 시다. 김홍영 검사의 죽음과 관련해서 모 방송국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줄곧 그 시를 떠올렸다.(334)
마른 번개가 쳤다.
12시 방향이었다.
너는 너의 인생을 읽어보았느냐.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어보았느냐.
-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시인, 문학동네, 2014년
그 사건은 고위공직자의 동생이 저지른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이었는데 그게 벌써 세 번째 음주운전 적발이었다. 삼진아웃제에 따라 음주운전만으로도 구속감이었던 데 더해 인명사고 후 도주까지 한 피의자에 대해 부장은 불구속 결정을 했다. 이처럼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는 하나같이 타인을 처벌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법률의 적용과 집행은 외부를 향한 것일 뿐 본인들은 거기에서 제외되고 법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361)
반동의 시대에 쓰러져간 불행의 끝판왕인 칠레의 대통령 아옌데는 쿠데타군이 쳐들어오는 최후의 순간에 대통령 경호대를 내보낸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소총을 들고 최후까지 저항하다 살해당한다.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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