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시간>을 읽으며 잊고 있던 한 사람을 기억에서 호출했다.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잘 몰랐다. 1988년 청문회 때 날카로운 독사와 같은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그의 자살은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노란색으로 물든 행렬은 그가 남긴 자국의 선명함을 보여줬다. 궁금했다.
<운명이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인이 되기 전의 삶과 정치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대통령으로서의 고뇌가 담겨 있고 마지막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섭섭함이 드리워져 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이전과는 달리 언론과 검찰을 이용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들의 자율적인 자정을 기대했다. 대단한 용기다. 언론과 검찰은 그를 물고 늘어졌다. 대통령이 바뀌자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는 모든 책임을 지고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이야기가 막바지로 가면서 검찰이 자신의 주변인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가하는 심리적인 압박이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세속적인 욕망보다 큰 꿈을 쫓았다. 돈과 권력에 대해 욕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건전하게 활용하면 자신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정계, 학계, 법조계 및 의료계 등 소위 일반 국민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지나치게 추종한다. 청문회에 올라오는 인물들이 부동산과 자녀에 대한 이슈로 낙마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청렴한 사람이 드물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매력이 있다. 고졸이면 어떤가. 왜 사람들은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온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다. 한 분야에서 프로가 돼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를 두고 학력 가지고 운운했던 검사들은 내세울 게 학력과 검사라는 직업밖에 없는 거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허울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거다. 그런 사람은 외모를 보고, 재산을 보고, 집의 크기, 차의 브랜드를 보고 우쭐해한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결과물이자 대표선수다.
그들에게 자신이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살아봤는가 묻고 싶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이 타인의 작은 실수나 부정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하다.
국민을 위해 붓을 놀려야 하는 언론인들이 권력자들과 결탁하고, 언론사주를 위해 아부하는 모습은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정의를 바로 세우라고 준 권력을 자신들의 조직을 위해, 일신의 부를 쌓기 위해 사용하는 검찰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변해야 한다. 왜 검찰개혁을 논하겠는가. 자정이 안되니 메스를 드는 거다.
두툼한 바인더로 열 권이나 되는 주문서를 만들었다. A4지로 300쪽 정도 분량이었다. 그다음에는 서류도 없이 받아 적게 하면서 다섯 시간에 걸쳐 설명했더니 프로그래머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어 오면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확인했더니, 이 사람들이 나를 만나는 것 자체에 겁을 먹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일정, 인명 정보, 자료와 회계를 전부 통합했다. (132페이지)
이 부분은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무엇을 해도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청문회 준비를 밤새워했다는 이야기도 그 사례다. 무엇을 하든 일단 시작하면 열정을 가지고 하는 사람이었다. 변호를 해도 열정을 다해서 하고, 불의에 대해서 싸울 때도 열정을 다했다.
그것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여러 번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자신의 모습을 다듬어갔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실수도 했지만 상황에 따라 언행을 가려서 할 정도로 나라의 대표자 자격을 보여줬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미국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일수록 더 그랬다.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국민들이 대통령 후보가 미국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것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이런 것에 휘둘려 일도 없이 사진 찍으려고 미국에 가는 것은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 방문을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루었다. (187)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서 남북한이 하나 되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지금까지 왔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미국에 빌붙어서 굽신거리는 대한민국이 시작되었다. 많은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미국 유학을 갔다. 그리고 돌아와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었다.
마음이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로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분위기를 타파해야 한다는 그의 몸부림이다. 대한민국은 주권국가다. 이제는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모두가 당당해야 한다.
보수 세력은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하다. 이념적으로 튼튼하게 결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공동의 이익에 근거를 둔 네트워크를 감성적 네트워크로 재조직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어느 지역 어느 집단에서나 돈 많고 권력 있고 지위 높은 사람은 거의 다 보수의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다.
게다가 보수 세력은 인구가 많은 영남을 장악하고 있다. 큰 신문사, 큰 기업의 소유자, 큰 연구소를 모두 보수가 장악하고 있다. 법원, 검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은 그 본질적 속성상 보수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중략) 학술원과 각종 학회, 지식인 사회도 보수가 압도적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보수의 나라인 것이다. (204)
우리 사회를 꿰뚫어 본 말이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보가 힘이 있어야 한다. 개개인의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해야 한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이런 정치인에게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은 땅 많이 가진 사람, 돈 많은 사람, 힘 있는 사람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순조롭게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참여정부는 보유세 제도를 적당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확실하게 했다. 그래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격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220)
헨리 조지의 토지세를 지지한다. 토지에 대해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자.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금을 낼 수 있는 자들이 가지면 된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보유세를 적당하게 부과하자.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살고, 그 세금으로 청년 복지를 지원하자.
직업과 주거의 안정을 지원하자. 나라의 미래를 위해 청년 세대가 살만한 나라,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어른들이 어른다워야 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만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언제 만족할 것인가?
민주주의 교과서가 말하는 그대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력을 운용하려 했던 나의 선택이 어리석었던 것일까? 아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더라도, 영구집권을 하지 못하는 한 언젠가는 마찬가지 수모를 겪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항변할 자격조차 없었을 것이다. 국세청과 검찰에게 당한 수모보다 더 아프고 슬픈 것은, 올바른 이상을 추구한 행위를 어리석은 짓으로 모욕하는 세태, 그런 현실을 보는 것이다. (276)
원칙대로 국정을 운영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퇴임하고 나서 평화롭게 고향마을에서 농약 없이 벼농사를 지으며 지역을 위해 살고자 했다. 그러나 새로운 정권과 그 하수인들은 늘 그랬다는 듯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란 명목으로 검찰은 고발에 대한 조사의 명목으로 전 대통령을 바닥까지 내려가게 했다.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나. 우리의 정치 수준, 국세청의 수준, 검찰의 수준을 보여준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의 태도와 김학의 성접대 사건을 조사하는 태도에 검찰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검찰개혁을 지지하게 되었다.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 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복잡한 인과관계를 가진 것인데, 언론이 효과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 대통령과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과 시민단체의 주장도 언론이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외면해 버리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 된다. (280~281)
대통령이 되어도, 국회의원이 되어도 언론의 권력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보수와 언론이 결집하면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돈의 힘이 개입하는 것이다. 견제할 수 있는 언론이 있어야 한다.
언론을 감시할 수 있는 시민의 힘이 커야 한다. 과거에는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이 진실이자 유일한 정보 소스였다. 하지만 이제는 디지털 시대가 되며 다양한 정보 소스가 등장했다. 유튜브를 보며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을 보는 위험이 커졌다는 사실은 인지했다. 유튜브가 권해주는 채널이 취향과 유사한 것들 일생이라서 그렇다.
언론의 힘, 붓의 힘은 세다. 그렇기에 언론이 잘못된 권력과 어우러지면 국민은 힘이 든다. 깨끗한 언론으로 나아가고, 공평한 언론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중략)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332)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자가 도덕적으로 상처를 입고, 자신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을 때, 상황이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역풍이 계속될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해 보게 되는 부분이다. 한때는 대통령이었지만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꿈을 꾸었는데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처지가 무척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 봉하마을 분향소에서도 서울역 분향소에서도, 사람들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울까? 왜 저렇게들 우는 것일까? 국민장을 치른 엿새 동안 봉하마을에만 100만 명 넘는 조문객이 왔다. (345)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사진을 본 적 있다. 자신을 대변해준 정치인, 노력했던 정치인, 누구보다 깨끗하게 실천하려 했던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붙인 자들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결국 심판의 칼을 악인 역할에게 드리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들을 선출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언론이 장난을 쳤기 때문이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이다.
이 책 <운명이다>는 제목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 안타까운 12년 전의 죽음이 나를 감상에 빠지게 한다. 현재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듯해서 더 빠져드는 책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