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이란 제목 자체가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서 유발되는 호기심을 이끌었다. 저자가 성공회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어서 과학에 대한 종교의 반격과 같은 내용을 내심 기대했다.
책 표지에 이미 저자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라고 의도를 언급했다. 도킨스가 지은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유전자 중심으로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는 신선한 생각에 감탄했었다. 그래서 저자가 도킨스의 책 내용에 대해 종교인 입장에서 비판을 가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저자 김기석의 입장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었다.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 생활을 했던 입장에서 돌이켜 보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다.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신앙심, 혹은 믿음으로 포장해서 받아들이는 정도를 언급했다. 지금도 많은 교회나 신앙인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창조과학회의 입장과 문자주의적 해석 노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준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나 해석의 타당성이 있다면 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합리적 태도다. 성서가 쓰여진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억지로 해석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보여준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신의 기원'에 대한 부분이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응답이다.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고 독자들에게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2부와 3부는 책의 제목과는 거리가 있고 어려운 내용이라서 권하지는 않는다. 1부만 충분히 흡수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의 내용 중에서 다시 보고 싶은 부분을 아래에 담았다.
이 시대의 교회와 성직자들이 예수의 본래 가르침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실상 성직자만의 잘못도 아니다. 많은 한국교회에서는 영향력 있는 평신도들이 성직자들에게 유형무형의 압박을 가하여 예수가 선포한 하늘나라의 사회적 의미를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은혜로운 말씀만 해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는데, 사실은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협박이다. 그들은 목회자에게 월급을 주는 위치에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말 안 듣는 목회자를 쫓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41페이지
수십 명의 우주 비행사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체험담을 <우주로부터의 귀한>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다치바나 다카시에 따르면 상당수의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서의 체험이 계기가 되어 종교인이 되었다고 전한다.-66페이지
불행의 본격적인 시작은 영국의 모순된 중동 정책에 의해 싹트게 되었다. 이 지역을 통치하던 영국은 1915~1916년 독일 점령하의 아랍인들에게 독일에 저항함으로써 영국에게 군사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대가로 팔레스타인 독립을 약속한다. 이른바 맥마흔-후세인 선언 Macmahon-Hussein Declaration이 그것이다. 모순되게도 1917년에는 유대인들에게 장차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하는 발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을 발표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문제 중의 하나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의 독립국가 설립 요구였다.
미국 내 영향력 있는 유대인들의 로비가 상당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승전국들은 아랍 국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립국을 세울 수 있는 땅을 달라는 유대인들의 요구에 대안을 제시했다. 그리하여 1947년 유엔은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하여 56%를 이스라엘 영토로 할양하는 결의를 통과시켰고.(중략)-72페이지
현대의 열려있는 이슬람 작가 타리크 알리는 그의 역사소설 <술탄 살라딘>에서 과거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와 문화와 사상에 너무도 관용적인 종교였음을 보여주면서, 오늘날 호전적인 이슬람 신앙은 마호메트의 가르침, 본래의 이슬람 정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74페이지
나는 그 제작자들이 종교적 동기, 즉 기독교를 위한 선교를 위해 그런 장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1세계가 가진 오리엔탈리즘, 즉 제3세계에 대한 문화적 인종적 우월주의의 한 그림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는 도킨스의 종교 비판에서도 군데군데 오리엔탈리즘의 희미한 그림자를 감지하곤 한다.-76페이지
왕과 지배자들을 위한 노역에 온 평생도 모자라 대를 이어 온몸을 바치도록 가르치는 이집트 제사장들의 신은 거짓 우상이니 이제는 그것들 앞에 머리 숙이지 말고 참 하나님 야훼만을 섬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십계명의 우상숭배 금지 규정의 본질이다.-79페이지
우상숭배 금지 규정의 참 뜻을 모르고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무조건 다른 종교의 상징들을 파괴하라는 명령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달을 가리켜도 손가락만 보면 진리는 영원히 찾을 수 없다.-81페이지
문자를 보지 말고 텍스트의 배후에 있었던 컨텍스트와 사건의 본질을 읽어야 한다. 이 말은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들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문자주의에 얽매인 근본주의 기독교 신자들 그리고 어쩌면 본인 자신도 믿지 않으면서 자신의 세를 불리고 돈을 벌기 위하여 열성신도들을 양산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오늘날의 거짓 설교자들을 향한 말이다. -85페이지
다윈의 진화론이 출간된 지 1년 후인 1860년 옥스퍼드에서 열렸던 영국과학진흥회에서 사무엘 윌버포스 주교는 나중에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칭을 얻었던 토마스 헉슬리가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발표를 끝내자 조롱하는 말투로 이렇게 질문했다고 전해진다. "당신의 말대로 인간이 원순이 선조로부터 진화했다면, 당신의 원숭이 조상은 부계 쪽이요, 아니면 모계 쪽이요?"
좌중의 폭소가 가라앉을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린 헉슬리는 "인간만이 지닌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지성을 이런 식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천성이라면, 나는 기꺼이 인간이 아닌 원숭이 조상을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소"라고 응수했다고 전해진다.(중략) 그 뒤로 1년 동안 영국 타임지에서 지면으로 전개된 두 사람 간의 진화-창조 논쟁 역시 과학자 그룹의 대표인 헉슬리의 승리로 끝났다. -91페이지
한국의 평화사상가이자 토착적인 기독교 신앙을 추구했던 함석헌은 일제 강점기 하의 선각자로서 민족의 고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민족사를 연구하였다. 그의 사상적 밑거름은 스승 유영모로부터 영향받은 동양철학과 민족얼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평화를 추구하는 그리스도 사상이었다. 평생을 기독교 신앙인으로 살아온 그였지만 자연과학에 담긴 진리 추구의 정신에도 심취하여, 만일 신앙과 과학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차라리 과학을 택하겠노라고 대담하게 밝힌 적도 있다.-97페이지
따라서 나는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 있어, 반드시 사회경제학적 관점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구체적 현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과학과 종교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01페이지
만사가 그렇듯이 종교도 긍정적인 역할이 있고 부정적인 역할이 있다. 과학도 마찬가지로 이기의 도구일 수도 있고 파괴의 도구일 수도 있다. 그 판단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것이 인간의 자유와 해방과 진리와 도덕 그리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꽃피우도록 기여했는지, 아닌지로 판단할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모든 종교는 사악하지 않다. 모든 철학과 과학과 사상이 그러하듯이. 좋은 놈이 있는가 하면 나쁜 놈이 있다.-106페이지
진화론은 하나의 과학 이론이지만, 창조론은 엄밀한 의미로 과학 이론이 아니라 창조에 관한 신앙 고백이다. 창조 신앙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이 세계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스스로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존적인 것이며, 둘째 이 세계는 본질적으로 선하며 질서 정연하며, 셋째 하느님은 세계의 주권자이시며 스스로 자유롭고 초월적인 분이시다"라는 것이다.-109페이지
다윈의 <종의 기원>의 주된 내용은 생명이 변이를 낳고 환경 속에서 선택되고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기제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지, 그것에 담긴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을 두고, 신앙적 입장에서 과학에 뛰어들어 성서에 어긋나는 과학은 잘못된 과학이라며 싸움을 벌이는 성서적 문자주의의 입장이나, 반대로 그 형이상학적 의미를 추려서 신학에 뛰어들어 너희가 말하는 신의 창조 따위는 폐기해야 한다고 조롱하는 입장 모두 무리한 시도인 것이다.-111페이지
지구의 오랜 역사와 환경 속에서 변이와 자연선택은 특정한 목적 없이 생명의 복잡성을 설계한 '눈먼 시계공'이라는 것이 다윈주의가 생명의 설계자와 목적성을 인정하지 않는 논거이다.-113페이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인류고고학적 증거들은 어린이를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인신 제사의 풍습이 고대 인류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히브리 성서는 오랫동안 구전되어 온 신화와 설화들은 야훼 신앙의 세계관과 인간관에 따라서 재구성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가 양으로 대신했다는 이 이야기는 당시 고대 사회에서 일어난 두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을 반영한다.-115페이지
양자 세계가 보여 주는 물리 세계의 불확정성과 카오스계의 불예측성 때문에 이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고전적 실재주의를 더 이상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142페이지
현대 분자생물학의 생명관은 우주를 하나의 정교한 기계로 이해하고자 했던 뉴턴-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생물의 세계로 확장한 것이다. 즉 생명을 DNA에 따라 조작되는 기계로 파악하는 것이며, 다양한 생물체들의 모습과 행태를 유전자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것이다.-23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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